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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처럼 ‘알아서’ 눕는 공정위를 어찌할꼬? 신고인 불복절차 마련 등 5대 개혁과제 주장 나와

기사입력2015-04-08 14:1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삼성전자 서초사옥 ©중기이코노미

지난 2009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전자의 납품단가 강제인하 사건에 대해 무혐의 의결을 했다. 조사관은 “(하청업체가) 구조조정, 급여 삭감, 복리후생 축소 등의 노력으로 더 이상 원가인하 여력이 없음”, “100% 삼성전자 납품 회사의 대다수(4개 업체 중 3개)가 1월 시행한 납품가 인하로 적자가 될 것으로 예상” 등 삼성전자 내부보고서를 확보한 뒤 이를 근거로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2012년 8월 공정위는 삼성전자에 하도급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과정에서 기본과징금 45억7900만원 중 65%를 감면한 16억원만을 적용했다. 조정과징금 부과 단계에서 최대 감면 몫인 50%를 감면한 상황에서, 부과과징금 부과 단계에서 근거 제시 없이 추가로 30%를 더 감면해준 것이다. 의결서 본문에서는 “형식적인 동의조차도 없었다”고 지적했으면서도, 과징금 부과단계에서는 “형식적이나마 동의가 있었다”며 과징금을 감면해줬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가 7일 개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한계와 대안 점검 토론회’에서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김형민 부소장은 이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이렇게 공개된 의결서에서 명백히 피심인에게 유리한 처분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해도, 이에 대해 개선할 수 있는 제도는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 김성진 변호사는 토론회에서 공정위의 5대 개혁과제로 늑장행정, 실효성 없고 피해구제와 무관한 나홀로 행정, 불투명 행정, 독점 행정, 자의적 행정 등을 꼽았다. 자의적 행정은 앞선 삼성전자에 대한 자의적인 봐주기식 일처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불투명 행정의 경우, 최근 공정위는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요구를 외면하다 패소하기도 했다. 지난 3월 대법원은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 결과 공개요구 소송에서 경제개혁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앞서 경제개혁연대는 2010년 11월 공정위에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의 원 데이터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고, 공정위가 비공개 처분 결정을 하자 2011년 2월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을 법원에 제기한 바 있다.

농심의 판매장려금 지급약정서 <자료=참여연대>

늑장행정도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지난 3월 공정위는 농심에 대해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를 이유로 과징금 5억원 부과와 시정명령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와 민변민생경제위원회, 경제민주화네트워크, 농심특약점협의회 등은 논평을 통해 “농심의 불법·불공정 행위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이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이 사건을 통해 ‘을’들의 눈물과 아픔을 세상에 알린 신고인들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닦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농심으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소매점에 판매하는 특약점들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농심의 판매장려금 정책이 판매목표강제, 거래상지위 남용, 가격차별 등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고 공정위에 신고한 것은 지난 2012년 7월19일의 일이었다. 공정위 결정이 나오기까지 무려 2년7개월이 걸린 것이다. 참여연대 등은 논평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신속한 조사와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바람에 어느 신고인은 농심본사 앞에서 목숨을 건 단신을 진행했어야 했고, 또 다른 신고인은 농심과 거래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쌓여 결국 농심과의 거래가 어쩔 수없이 중단되고야 말았다”고 밝혔다.

김성진 변호사는 토론회에서 “(공정위는) 신고 사건의 처리 최종시한을 서비스헌장에서 원칙적으로 2개월 이내로 하고 있고, 처리시한을 넘길 경우 신고인에게 그 이유를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개월의 처리시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고, 2개월을 넘겨 조사를 해야 할 때 그 사유에 따라 잠정처분을 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국정감사 자료를 근거로, 2010~2013년간 공정위의 신고접수부터 처분일사이 평균 소요기간을 분석한 결과 직권인지는 52일, 신고는 79일, 인터넷 신고는 122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공정위에 상정돼 과징금, 시정명령 등의 조치를 받은 안건은 신고가 평균 327일, 인터넷신고는 294일, 직권인지는 160일가량 처리기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성진 변호사는 공정위 결정에 대한 신고인의 불복절차 마련이 필요하다며 “공정위 내부에 무혐의 결정에 대한 재심위원회 등을 두거나 공정위의 신고사건 무혐의 처분에 대해 신고인이 행정소송을 통해 다툴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심사관의 자의적 행정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인원이 다수가 되어 심사관 등의 부당 또는 불평등한 조사행위에 대한 당부를 판단하는 조사평가위원회의 도입, 사건의 처리 절차에서 ‘심의절차종료’의 삭제, 조사 후 신고인에 대한 만족도 조사시행, 민사소송을 이유로 한 조사중단의 원칙적 금지 등의 개선방안 도입을 검토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