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레진코믹스를 차단한데서 불원한 논란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참에 한국사회에서콘텐츠 비즈니스를 영위할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명확히 정하는 논쟁이 촉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소한 관료들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콘텐츠 창작자 또는 콘텐츠 비즈니스 기업들이 사업상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시민적 자유까지 제약받는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대한민국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료웹툰서비스 기업 레진코믹스의 사이트가 불시에 차단된 것은 지난 3월24일이다. 이 과정에서 방심위가 법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결국 당일 3시간 만에 차단조치는 풀렸다. 상세한 내용은 3월30일 기자수첩의 ‘방심위 차단에 맞선 레진코믹스의 유쾌한 대응’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이 사태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다. 연합뉴스는 12일자 “‘레진코믹스법’ 발의에 시끌…표현의 자유 논란 확산” 기사에서, 이 사태를 계기로 발의된 이른바 ‘레진코믹스법’에 반대의견이 폭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입법예고 시에는 관련 법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데, 통상 의견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가장 많다. 가끔 특정 이해관계자의 주목을 받는 법안에 수십건의 의견이 댓글로 달리는 경우를 볼 수 있는 정도다. 그런데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광진 의원 등이 발의한 이른바 레진코믹스법 두 건에는 의견이 1만건 이상 달려있다. 내용은 “반대한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레진코믹스법이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말한다. 레진코믹스의 차단 이후인 3월26일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의원 등이 발의했으며, 3월31일부터 4월9일까지 국회 입법예고 시스템에서 입법예고가 진행됐다.
주요내용은, 현행법의 모호한 부분을 구체화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포털사이트 사업자에게 ‘음란한 내용’이나 명예훼손 등의 정보를 취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접속차단 등 시정조치도 내릴 수 있다. 개정안은 ‘음란한 내용’을 구체화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관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명예훼손·공포심 조장 등의 사유는 삭제해, 문제를 당사자간 절차에 의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도 포함됐다.
방심위가 시정요구를 할 수 있는 대상은 불법정보로 한정하도록 하고, 시정요구 중 접속차단을 완전 접속차단과 성인이 아닌 자에 한정한 접속차단으로 세부화하며, 시정요구 시 그 사유와 이의신청 방법에 관한 사항을 밝히는 등 절차도 가다듬었다.
사실 법안 내용만 놓고 보면 왜 반대의견이 이례적으로 많이 달렸는지 이유를 가늠하기기 쉽지 않다. 설마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유통을 자유롭게 해달라는 의견은 아닐 것이다. 차단대상이 너무 협소하다고 생각된다면, 범위를 넓히자는 의견을 내면 그만이다. 이 법안을 덜컥 반대해 버리면, 아무 기준없이 모호한 법규에 의해 정부가 자의적으로 접속차단하는 현행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제출된 의견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동일한 이름으로 수 차례 의견을 작성한 사례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반대한다는 글 다수가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현할 뿐, 왜 반대하는지에 대한 언급조차 없어 의중을 파악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이 있다고 인터넷을 통한 입법예고와 의견수렴 절차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 한계나 문제점이 있더라도 입법 과정에 시민들이 관여하는 절차는 있어야 한다.
다만 콘텐츠 제작자나 콘텐츠 기업이 법을 준수하고도 자의적인 잣대에 의해 비즈니스상 손해를 입거나 시민이면 누구나 가지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는 일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되니, 법절차를 구체화하고 가다듬는 일은 필수적으로 진행될 일이라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내용에 대해서 역시, ‘음란한 내용’이라는 모호한 구절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구체화하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어떤 내용이 포함될지는 시민들의 논쟁에 의해 결정되면 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의회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만들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니 불평한 일은 아니다. 레진코믹스 사태가 이대로 묻히는 것보다는, 논란이 커지기를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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