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실시권 무등록 대항제도, 무효심결 예고제도, 특허취소신청제도….
특허청이 특허법 개정안을 추진하며 만지작거리는 카드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성격이 짐작되는 경우도 있고, 상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땅띔도 못할 것들도 있다. 특허청은 이 개정안을 오는 6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통과가 빠르게 진행되면 내년 하반기부터 새로운 제도들이 시행될 수 있다.
개정안 내용 중에는 통상실시권자가 등록없이도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무등록 대항제도’ 도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특허권자 A에게서 B가 특허의 일정내용에 대한 실시권리를 계약을 통해 넘겨받았을 경우, A가 특허권을 C에게 양도한 뒤에도 B가 통상실시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문제시될 수 있다. 현행법은 이 경우 B가 통상실시권을 특허청에 등록한 경우에만 C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등록하지 않은 경우에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어, C가 원할 경우 실시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통상실시권 무등록 대항제도 개요
<자료=특허청>
특허청은 그러나 “등록 시 통상실시권 내용이 공시되어 영업비밀 노출 우려가 있고 등록 절차도 번잡해 실무상 등록을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시사업보호를 위한 통상실시권 등록비율도 1.3%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기업 간 통상실시권 계약은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만큼 일일이 등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한국과 달리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지는 별도의 등록 없이 통상실시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특허청은 B와 같은 통상실시권자가 이 권리를 별도로 등록하지 않아도 계약사실 증명만으로 추후 C처럼 특허권을 양수받은 자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는 법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통상실시권 등록절차가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통상실시권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곤란할 수 있다는 반대의견에 따라, 특허청은 계약사실의 증명 용이성을 위해 등록절차는 유지하기로 했다.
무효심결 예고제도 개요
<자료=특허청>
더불어 특허권자가 무효심판에서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수 있도록, 무효심결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될 때 이를 예고하는 제도도 도입이 추진된다.
현재 특허권에 대한 무효심판이 청구되면, 특허권자는 특허의 문제점을 수정해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는 정정청구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법상 정정청구는 특허무효심판 초기에만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시기에는 특허의 무효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방어수단인 정정청구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해왔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심판관의 최종 결정 전에 미리 무효 이유를 적은 무효심결 예고를 통지하고 기간을 정해 특허권자에게 정정청구 기회를 추가로 부여하기로 했다. 다만, 지연 방지를 위해 무효심결 예고통지는 1회로 한정할 예정이다.
유사한 제도를 가진 일본의 경우, 무효심결 예고제도를 통해 무효 가능성이 있는 사건의 약 16%가 구제되고 있다. 특허권의 법적 안정성이 그만큼 강화된다는 의미다. 특허청은 “무효이유를 미리 받아본 후 정정을 청구할 수 있게 됨으로써 무효사유 해소 가능성이 높아져 특허권자의 권리보호가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허취소 신청제도와 무효심판의 차이점
<자료=특허청>
이밖에 하자 우려가 있는 등록특허를 조기에 재검토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을 추진중인 ‘특허취소 신청제도’의 경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심사관 1인당 연간 실질심사건수는 일본에 비해서는 50%가량, 미국에 비해서는 3배가량 많은 수준이다. 특허품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이유다. 심사처리기간 단축으로 출원공개 전의 특허결정 비율도 급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발명 공개 후 시민들이 특허심사에 참여하는 기회도 축소되고 있다.
이에 따라 특허청은 하자 우려가 있는 등록특허를 재검토하고 조기에 특허를 취소할 수 있는 새로운 공중심사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누구나 등록공고 후 6개월까지 특허취소 이유를 제공하면 심판관이 등록특허를 재검토해 하자가 있으면 조기에 특허를 취소할 수 있도로 규정했다. 누구나 등록공고 후 6개월까지 특허취소 신청을 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특허·간행물에 근거한 신규성·진보성 등에 한정한다. 심리는 취소신청이유를 종합·정리한 뒤 시작된다.
특허취소 신청제도는 기존의 특허무효심판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무효심판제도는 당사자 간 분쟁해결을 위한 ‘당사자계’인 반면, 새 제도는 특허심사 강화를 위해 특허청을 상대로 심사결과의 재검토를 묻는 ‘결정계’ 제도다. 신청인 역시 무효심판은 이해관계자이지만 특허취소 신청제도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무효심판은 신청 시 무조건 심리가 시작되지만, 새 제도는 심리 개시 여부를 특허청이 판단해 진행한다는 차이도 있다.
특허청은 통상실시권 무등록 대항제도 등을 포함해 총 18개 제도개선과제를 개정안에 담았다. 지난해 8개월간 정책연구용역을 진행했고, 11월과 12월 두 달간 기업체·연구기관·대학의 특허담당자와 변리사 3512명에게 의견을 물어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공청회 이후에도 입법예고기간은 오는 28일까지 특허청에 제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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