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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볼모로 슬그머니 銀産분리 풀자고? 정부 TF서 “완화” 의견 나와…임종룡 “규제검토 필요” 거들어

기사입력2015-04-17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상반기 중 미국에서 런칭 예정인 페이스북메신저 기반 금융서비스. 핀테크가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자 정부는 전문가로 구성된 T/F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자료=‘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 세미나’ 자료집>

지난 1월부터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입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한 태스크포스팀(TF)에서 은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실제로 제기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6일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 세미나’에서 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전문가 TF 논의 결과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기존 은행에 적용하는 은행법을 적용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면서도, “현행 은행법에 의하면 은산분리 원칙으로 인해 ICT 기업들의 참여가 어려울 수 있으니 이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역시 세미나에 앞선 축사에서 “그동안 당연하다고 또는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제도와 관행들을 정비해야 한다”라며, “그동안 견지해왔던 은산분리 규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산분리란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행 은행법은 은행의 주주구성에 대해 제한을 두고 있는데, 이는 은행이 산업자본의 사금고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이 모두 은산분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은산분리가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뜨거운 감자로 자리잡게 된 것은, 설립시 ICT관련 기업들의 참여를 허용해줘야 한다는 의견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1995년 미국에서 최초로 설립됐으며 이후 영국과 일본, EU 등으로 확산됐다. 영업점 없이 대부분 업무를 ATM이나 인터넷을 통해 운영하는 은행을 말하는데, 설립 초기에는 완전 무점포 형태 위주로 이뤄져 있었으나 이후 물리적 시설을 보완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증가하게 됐다. 은행서비스를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인터넷뱅킹과는 법적으로 구분되는 개념이다.

최근 일부 언론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은 참여를 배제하기로 정부방침이 정해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업무는 개인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매금융으로 제한하기로 했다고도 전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위해 합리적 수준의 은산분리완화 방안 등을 강구 중이나,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바 없다”고 서둘러 선을 그은 바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정부안은 오는 6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전자 측은 금리나 수수료, 접근성, 서비스 종류 측면에서 소비자 효용이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은행 진입 확대에 따른 과잉공급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은행간 경쟁촉진과 IT 활용도가 증가될 것이라며 기대를 표하는 한편에서는 설립 초기 수익모델이 취약할 경우 발생 가능한 부실화와 경제가 휘청거릴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어떤 법령으로 규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서 연구위원은 TF 논의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전문성을 반영한 특별법을 만들자는 의견은 해외사례가 없다는 점이 약점으로 제기됐다고 전한 후, 결국 기존 은행과 같은 은행법을 적용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고, 이와 함께 은행법 상 은산분리 완화 여부가 이슈로 제기됐다고 밝혔다.

국가간 인터넷전문은행 소유구조 비교

<자료=‘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 세미나’ 자료집>

해외사례를 보면, 인터넷전문은행이 처음 시작된 미국은 은산분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소유구조에 대해 기존 은행과 동일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비금융주력자가 인터넷전문은행을 소유한 경우는 없다. 대부분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 등 비은행 금융회사들이 설립해 운영중이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ICT기업 자본의 참여를 배제할 경우 혁신적인 서비스 제공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일본의 경우 반대측 의견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서는 은산분리 원칙의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은 법적인 규제가 없음에도, 2차대전 이후 비금융주력자의 은행소유를 허가한 적이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비금융주력자의 소유를 허가하는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은행과 비은행 금융회사, 비금융주력자의 합작으로 설립되고 있다.

EU의 경우 은행 주주구성에 대한 명시적 제약이 거의 없는 상황이며,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일반은행과 동일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은행 등이 사업부 형태로 인터넷전문은행의 독자 브랜드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위해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하는 데는 반대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롯데그룹 대외협력단이 “관련 규제완화 및 제도가 확정되는 대로 연말까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하자 시민단체인 경실련이 당장 들고 일어났다. 경실련은 성명서를 통해 이 계획이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금산분리원칙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을 방지해 총수일가의 사금고화 방지, 금융회사의 리스크 완화, 경제력 집중 폐해 등을 막기 위한 매우 중요한 제도”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경실련은 또 “정부의 핀테크 활성화 정책으로 인해 롯데뿐 아니라 재벌 산업자본들은 우리경제의 중요한 원칙의 하나인 금산분리 원칙 등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며, “경실련은 롯데그룹 뿐만 아니라, 재벌그룹들의 금산분리 완화 시도 등 경제력 집중 폐해를 초래하는 행위들에 대해 철저한 감시와 저지활동을 할 것임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은산분리 완화 추진이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반대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