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거리 말고 시내 면세점이나 제주도 특급호텔에도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는 넘쳐난다. 이런 좀 ‘비싼’ 곳에서 만나게 되는, 특히 젊은 유커들의 외양은 흔히 생각하는(혹은 기자의 못난 선입견이 그려내는) ‘중국인’ 관광객의 그것과는 딴판이다. 입성, 얼굴 표정, 매너까지 세련되고 당당한 경우가 많다. 물론 지갑을 여는데도 인색하지 않다. 모든 유커들을 ‘인해전술’이나 ‘규모의 경제’의 대상 쯤으로 보기는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해가면서, 13억 인구라는 수평적 측면의 매력에 더해 고급 소비재의 블랙홀이라는 수직적 측면의 장점도 부각되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춘제(春節·설) 연휴기간 500만명의 유커가 국제선 비행기를 탔는데, 선호 여행지 1위는 우리나라였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위시한 한류의 영향이 컸다. 이 기간 소위 대박을 터트린 곳도 많았다. 그러나 올해 춘제 기간 ‘유커 유치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일본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갑이 두꺼운 유커들을 대거 유치한 덕분에, 일주일의 연휴 동안 유커가 일본에서 쇼핑으로 쓴 돈만 1조원이 넘는다는 자료가 나왔다. 저(低)엔 현상과 비자 완화 등 일본 정부의 공세적 유치전략이 한 건 크게 터트린 셈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일본 상품과 서비스가 가진 품질과 안정성이다. 메이드 인 저팬의 우수한 품질에 그 나라 사람들의 몸에 밴 친절, 신뢰도가 함께 어우러진 결과라는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혼마에 다테마에’는 중요치 않다. 손님의 입장에서, 친절이 꼭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야 할 필요는 없다.
유커들의 ‘핫 스팟’으로 떠오른 서울 광장시장에서 얼마 전 겪은 일이다. 한 눈으로도 세련돼 보이는 유커 젊은이 대여섯명이 모여앉아 해산물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아서인지 어눌한 우리말이지만 보통 우리나라 손님들보다 오히려 더 의젓하고 예의 바라 보였다. 그러나 주인 할머니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일인당 2만원, 일행 전체로는 10만원이 넘는 돈을 받으면서도 전혀 고마운 기색이 아니었다. 천진난만하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등 뒤로 “어묵 국물만 공짜로 축내고 간다”는 볼멘소리를 해댔다. 요즘 같은 ‘엄동설한’에 시장 좌판에서 10만원이 적은 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 젊은이들이라면 다시는 그런 볼썽사나운 대우를 받으면서 돈을 쓰고 싶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류도, 비자정책도 아니다. 진정한 관광 인프라는 안전함, 친절함, 그리고 믿음직함이다. 우리와 비교한 일본의 물가 수준이 터무니없이 높았던 시절에도, 그곳 여행길에 들른 상점이나 식당에서 지갑을 여는 것이 그렇게 거리끼는 일은 아니었다. 내 입성과 무관하게 제공되는, 가장 친절한 웃음과 보디랭귀지를 즐기는 것도 좋았고, 내가 지불하는 만큼의 ‘돈 값’은 한다는 믿음이 전제됐기 때문이다. 한류니 중국인의 대일감정 악화니 하는 호재가 사라진 후에도 우리나라가 그 정도의 매력있는 여행지로 남아있게 될지는, 솔직히 확신 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하나. ‘돈을 벌기 위한’ 친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원래 ‘친절한 민족’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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