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을 늘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문에 기업들이 앞다퉈 정규직 전환비율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독려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전환지침을 변경하라는 국가인권위의 권고에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 정부시책을 발 빠르게 따른 기업들은 이제 박 대통령의 발언과 고용노동부의 행태 사이에서 눈치만 보게 생겼다.
이처럼 어이없는 사태는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고용노동부장관 및 교육부장관에게 현행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지침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면서 발생했다. 교육부는 일부 수용입장을 밝혔으나, 고용노동부가 불수용 결정을 내린 것이다.
권고 내용은 상시지속근로에 대한 판단기준을 완화하고, 전환예외사유를 축소하며, 간접고용근로자도 무기계약직 전환대상에 포함되도록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지침을 개정하라는 내용이었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인권위의 권고가 사회적 공감대 형성 여부, 국가재정에 미치는 영향, 민간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을 감안해 신중히 검토할 사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교육부는 상시지속업무에 1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근로자들을 무기계약직 전환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어 인권위 권고를 일부 수용하는 상황이며, 간접고용근로자를 무기계약직 전환대상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정부의 정책방향에 맞추어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고용노동부의 이같은 입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규직 전환 독려발언과 정면으로 엇갈리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열린 제4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체회의 자리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독려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공공부문부터 철저하게 솔선수범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속적이고 상시적으로 하는 일은 반드시 정규직으로 한다는 목표를 갖고 그 실적을 공공기관 평가기준의 중요한 항목에 포함시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인권위가 지침 개정을 권고한 이유 역시 공공부문의 선도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공공부문이 기간제법 및 파견법의 입법 취지에 따라 상시지속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는 관행을 확립하는데 보다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미 정부의 시책에 발맞춰 정규직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 이마트와 신세계 등이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진행했고, 금융권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다수 진행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역시 간접고용 형태의 비정규직들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잠정 합의했다. 정부시책에 발맞추고자 서두르는 기업들이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기업들을 규제해야 할 고용노동부에서 인권위 권고를 불수용하겠다고 밝혔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민간에 미칠 파급효과를 이유로 들었는데, 그렇다면 대통령 발언은 사회적 공담대도 형성되지 않은 내용으로 민간에 부당한 파급효과를 강요했다고 해석해도 되는 문제인지 모르겠다. 혼란에 대한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는지 고용노동부에 있는지 엄밀히 가리고,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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