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리스트가 사실일 것이라는 응답과, 야당도 성 전회장의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응답이 모두 80퍼센트를 넘겼다. 여야와 인물을 불문하고 정치, 혹은 정치인에 대해 국민 대부분이 불신과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시점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해외 면책특권 등을 보장하는 ‘외교관 여권’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 알려지며 공분을 샀다.

지난주 서울신문 보도에 의하면 안홍준 의원 등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자신들 국회의원을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여권법 개정안을 지난달 3일 제출했다.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 규정을 법률로 상향조정하자고 해 놓고는, 그 밑에다가는 신규발급 대상으로 자신들 국회의원을 끼워넣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을 썼다. 외교관 여권 소지자는 경범죄 처벌과 같은 각종 사법적 특권 및 비자면제를 누릴 수 있고, 공항의 VIP 의전 등 상대국의 극진한 대접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떡 벌어지는 혜택이 있다보니 그 발급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4부요인과 그들의 배우자 및 27세 미만 미혼자녀 등으로 한정돼 있다. 안홍준 의원 등의 발의안대로 법률이 개정되면 수백명 국회의원들과 그들의 가족들까지 4부요인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되는 셈이다.

안홍준 의원은 이에 대해 “외교상 필요한 것이지 특권 차원의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한 모양인데, 이는 심지어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반향을 얻지 못했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은 지난 23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벌인 안홍준 의원의 ‘해명’이다. 그는 성완종 리스트로 긴박하게 돌아간 이날 총회 석상에 올라서는, 비자를 급히 받을 수 없어 중국 일정을 놓친 적이 있다는 회고담까지 곁들이며 “외교관 여권 발급은 외교를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지 절대 특권을 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역시 반성은 없었다. 이와 별도로 그는“외교관 여권이 국회 외통위원에게만 발급돼 일반 의원들과 ‘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라는 해명도 늘어놓은 모양이다.

가뜩이나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가 공염불에 그친 것도 마뜩잖은 판에, 좀더 부지런 떨면 될 일을 이유랍시고 들먹이며 특권을 더 달라고 떼쓰기를 하는 형국이니 국민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여기에 안 의원의 ‘해명’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성완종 리스트로 정치인들의 구린내나는 행태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절망하는 이 시점에, 반성이랍시고 외통위 의원들에게 발급된는 외교관 여권을 폐지하자고 해도 모자랄 그 시점에, 그는 ‘형평성’ 운운하며 한 술을 크게 더 떴다. 내년 20대 총선까지 기껏해야 1년남짓 남았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 적어도 그때까지만이라도 몰염치와 후안무치를 걷고 ‘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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