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 앞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한 감동을 준 작품은 또 어떤 그림일까?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열렬히 사랑했다는 그림.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미술작품만으로 채운 ‘채플’을 헌정 받은 화가. 갑작스런 자살로 뉴욕을 뒤흔든 화가 등 많은 에피소드를 지닌 미국 색면추상의 대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작품이 국내를 찾았다. 보험평가액만 2조5000억원으로 역대 가장 높은 보험평가액을 갱신하고, 국내 블록버스터 역사상 한 갤러리(워싱턴내셔널갤러리)에서 유례없는 작품을 반출했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상 마크 로스코의 유명세는 세계미술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에서 이미 검증되었다. <오렌지, 레드, 옐로> 작품이 경매에서 7750만달러(현재 한화시세로 약 850억원)에 낙찰되고, 1950년 작인 <화이트센터(장미빛 위의 노랑, 핑크, 그리고 라벤더)>는 7280만달러(현재 한화시세로 약 800억원)에 낙찰(2007년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후 경매에 나온 현대미술 작품 중 최고가)되는 등 세계미술시장의 슈퍼급 컬렉터가 좋아하는 블루칩 작가이다. 이렇듯 로스코는 세계 미술계에서 최상의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그럼에도 한국대중에게는 여전히 생소하다. 색면추상이라는 장르도 낯설다. 그렇다면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로스코의 그림에 미술인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작품의 어떤 힘이 관객을 매료시키는 것일까?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

마크 로스코-Untitled 1949

로스코가 작품에서 주목한 것은 ‘어떻게’라는 형식적 문제보다 ‘무엇을’이라는 내용적 측면이었다. 어떤 기법과 방식으로 그릴 것인가라는 기술적 문제 보다는 언제나 정신적 문제를 우선시 했다. 아무런 형태도 없는 거대한 색면추상을 미술관에 전시하면서 고민한 것은 관객에게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였다. 그 결과가 ‘숭고’이다. 숭고는 우리의 지각 범위를 넘어서는 넓은 범위에 맞닥뜨렸을 때 느끼게 되는 불편함, 두려움, 공포, 충격이자 인간을 압도하는 수학적 크기나 역학적 힘이다. 로스코는 인간이 시각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서 작품 앞에서 느끼는 숭고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로스코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팽창성과 수축성을 지닌 점이다. 마치 ‘자연과 인간’, ‘생성과 소멸’, ‘양과 음’ 등과 같이 모든 극단의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들을 팽창과 수축이 공존하는 화면으로 상징화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의 발현은 감상자의 몫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주체적 감정에 의해 감지될 수 있다. 로스코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색채나 형태와 같은 조형적 요소보다 작품이 품고 있는 내재성, 즉 인간의 감성이었다. 실제로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감상자가 그림을 통해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기를 바랐다. 심지어 종교적 힘으로 느껴지질 원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감상자와 관련한 나름의 목적과 목표를 세운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어떤 태도와 방법으로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기도 한다.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45cm의 거리를 두고 감상하기를 원했다. 사실 이 거리에서는 로스코의 작품 전체를 한 번에 감상할 수 없다. 화면 일부분이 망막을 차지할 뿐이다. 그런데 이 거리야말로 감상자가 자신의 작품에 담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힘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라고 말한다. 작품 앞에서 색채의 개별성이 사라지고 융합된 색에서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로스코는 감상거리뿐 아니라 작품을 거는 위치도 중시했다. 그는 작품을 높게 걸기보다 낮게 배치하는 것을 원했다. 관객과 작품이 소통하는 이상적 거리는 작품을 거는 위치와도 직결된다고 믿었다.

로스코 작품 앞에 선 사람들 오열해

마크 로스코-White Center 1950

별거 중인 아내와 아이를 염려하면서도 정작 과거처럼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을 한탄했고, 그토록 갈망하던 미술계의 정상에 섰을 때 정작 불안감과 외로움에 더 힘들어했다. 자신의 예술작품에 대한 평판에 유독 민감했고, 자신의 명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동시대 모든 화가를 경쟁대상으로 삼을 만큼 지독한 자기방어적 화가였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작가의 작품은 모두 ‘평범한’ 것으로 여겼다.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미술관과 미술상, 비평가 등과 의견대립이 잦았다. 특히 많은 비평가가 그의 작품을 기존의 미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려 할 때마다 충돌을 일으켰다. 결국에는 과대망상이 깊어지고 쉽게 자제력을 잃었다. 항우울증제의 심각한 중독에 시달리던 고통의 끝이 자살이었다. 그가 자살 후 이룬 것이 있다면 자신의 이름을 세계미술사에 남기고 싶었던 열망이다.

그런데 로스코가 죽은 후 그의 마지막 작품은 자살을 암시한 작품으로 유명세를 탔다. 마치 동맥(대동맥류가 발병하여 고생했었다)을 그어 자살했던 모습과 작품이 오버랩 되어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는 감상이 뒤따랐다. 절망의 끝에서 자살을 선택한 로스코는 깊은 외로움을 느꼈을지 모른다. 로스코는 색면추상을 통해 예술작품이 어떤 형상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감성을 얼마든지 자극할 수 있고, 그 존재 가치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품에 견주어 절대 가볍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로스코 작품만으로 채워진 세계 유일의 ‘로스코 예배당’에서 많은 사람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흘린 에피소드는 단지 흥미를 끌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많은 사람이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열광하는 것은 어느 화가도 쉽게 도달하지 못했던 인간의 모든 감정(슬픔, 고독, 두려움, 좌절 등)을 숭고의 세계로 끌어 올리려 한 그의 절실했던 마음에 감동한 화답이 아닐까.[글=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jpda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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