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과 안이함으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초동대응에 실패한 보건당국이 이번에는 그 불똥을 저소득층 환자에게 옮기고 있다는 질책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5일 서울 을지로의 국립중앙의료원을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 지정하면서, 다른 질환으로 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모든 환자들이 퇴원하거나 병원을 옮겨야 할 형편에 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립의료원이 일부 저소득층, 혹은 특수질환 환자들에게는 의료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대체불가능한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에 의하면 이 병원을 이용하는 상당수의 환자들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저소득층인데, 정부의 이송조치에는 치료비 부담 완화에 대한 내용이 없다. 결국 많은 환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치료를 그만둘 갈림길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등 특수질환 환자들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부담으로 대안적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이들 환자들에게, 국립의료원 퇴출은 곧 치료중단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 병원에서 치료받던 에이즈 환자 13명 중 2명은 의료비 부담으로 정부가 연계한 종합병원에서 퇴원했다. 일부는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으로 이송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 직업이 없어 경제적 부담이 심한 가운데서도 10만~40만원의 앰뷸런스 이송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복지부와 지자체가 정한 진료시설만 이용할 수 있는 노숙인들 역시 메르스 유탄에 속절없이 스러지고 있다. 국립의료원을 쫓겨나 다른 병원 전원도 거부당하는 문자 그대로 ‘홈리스’로 전락하게 됐다는 것이다. 늑장대응으로 화를 키운 보건당국이 이번에는 ‘대책 없는 메르스 대책’으로 죄없는 환자들의 의료권을 박탈한 결과가 된 것이다.
초동단계에서는 안이하게 대응하다 사회문제화되면 그때서야 허겁지겁 호들갑을 떠는 정부 당국의 아마추어 행태는 이번에도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이 TV 화면에 비치는 메르스 대책에만 골몰하는 이면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저소득층과 특수질환 환자들은 심각한 건강권의 훼손을 감내하고 있다. 메르스의 후폭풍은 이 질환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서둘러 급조하다시피 내놓는 메르스 대책만큼이나, 그 이면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까지 세심하게 고려하는 ‘대책다운 대책’을 보건당국은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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