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소설가 신경숙씨가 일본 소설의 일부분을 베껴 썼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씨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글에서 신경숙의 작품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표절 의혹을 받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

표절 여부는 작가 본인만이 알 일이나 일단 여론은 싸늘한 편이다. 신경숙 작가가 베껴 쓴 것으로 보인다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개인적인 이력도 차가운 반응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 소설가다. ‘가면의 고백’, ‘금각사’ 등은 한국에도 번역서로 출간돼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작품 자체보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생을 마감해서다. 미시마 유키오는 극우 성향의 민족주의자로 1970년 일본 자위대의 각성을 외치며 대중 앞에서 할복자살했다. 일본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번에 표절 의혹이 불거진 ‘우국’은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을 예견하는 듯한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남성은 ‘천황 군대 만세’라는 유서를 남긴 뒤 할복자살하는 과정을 아내가 지켜보게 만든다. 아내 역시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하는 것으로 작품이 끝을 맺는다.

신경숙의 작품 ‘전설’을 펴낸 창비 출판사에서는 작품의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들어 표절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창비는 17일 발표한 공식입장에서 “’우국’은 성애묘사가 두드러지는 남성주의적 판타지로 볼 수 있는 단편이고, 신경숙의 ‘전설’ 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뛰어난 작품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솜씨 있게 다뤘다” 면서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신경숙 작가의 묘사가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주장에도 논란은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다. 당초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응준 소설가는 신경숙의 표절은 한국문단에서 공공연히 알고 있던 사실로 내부고발자가 될까 두려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신경숙 표절에 대한 한국문단의 시치미와 은폐가 표절사건들에 단호한 처벌을 내리지 않게 하는 악행을 만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