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열린 2015 소비자 정책 포럼 모습   ©중기이코노미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소비자의 영향력이 커지자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로 몸살을 앓는 중소기업도 함께 늘고 있다. 2013년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중소기업 20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블랙컨슈머를 경험했다’고 답한 기업은 전체 응답자의 70.9%나 됐다. 특히 한 달에 6차례 이상 블랙컨슈머를 경험하고 있는 기업도 15.3%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블랙컨슈머는 악성을 뜻하는 블랙(black)과 소비자란 뜻의 컨슈머(consumer)를 합친 말이다. 기업을 상대로 구매한 상품에 대해 보상금 등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18일 서울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소비자 정책포럼에서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블랙컨슈머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진 바는 없으나 보통은 ▲기업의 약점을 공격하는 소비자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며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 ▲하자나 결함제품에 대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 등으로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랙컨슈머가 보통의 소비자와 가장 구별되는 점은 기업에 직접 보상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보통 일반 소비자들은 소비자 관련 기관을 통해 민원을 제기한다. 이미지 훼손 등을 우려한 기업이 과실여부와 상관없이 블랙컨슈머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최무근 중소기업중앙회 공제고객지원부장은 “많은 중소기업들이 귀찮다거나 영업장이 시끄러워지는 게 싫다는 이유로 블랙컨슈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있다”며 “이같은 기업의 태도 때문에 블랙컨슈머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2013년 대한상의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83.7%는 소비자의 악성 클레임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답했다. 법적 대응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응답은 14.3%에 불과했다. 기업이 부당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이유로는 기업 이미지 훼손 우려(90.0%)가 가장 많았다. 고소·고발 등 상황 악화 우려(5.3%), 업무방해를 견디기 어려워(4.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해 최 부장은 “대기업들의 경우 블랙컨슈머에 대해 더 이상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고소나 고발 같은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줄여나가려는 추세다. 기업 스스로 잘못된 소비자의식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라며 “중소기업도 혹시 불이익을 받을까 눈치 보며 이들을 받아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블랙컨슈머 발생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대다수가 인력난과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어 대기업처럼 전담 변호인이나 법률 자문팀을 따로 두기 어렵다. 이에 대해 최 부장은 “얼마 전 노란우산공제 지원을 받는 중소업체 70여곳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업체들 대부분이 블랙컨슈머 발생시 사장이 직접 나서거나 지인을 통해 해결한다고 답했다”며 “담당자를 배치하고 적절한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컨슈머 대응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는 것”이라며 “민원인을 달랜다는 이유로 상담자가 사과하고 나면 회사의 과오를 인정하는 꼴이 돼 버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합리적인 보상원칙을 마련하고 일관성 있게 대응하라 ▲소비자와 통화할 때는 그 내용이 모두 녹취당하고 있다고 느끼며 통화하라 ▲가급적 통화내용은 모두 녹취하라 ▲어려운 약속은 피하고,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이행하라 ▲증거제시를 요구하라 ▲절대 담당자의 감정을 표출하지 마라 등의 대응요령을 제시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블랙컨슈머와의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방법은 형사고발 등 법적인 조치라는 의견도 나왔다. 변웅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소비자 문제행동을 법적인 조치로 해결하는 것은 악성 소비자의 행동이 극단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컨슈머의 문제행동 유형을 ▲초기 비대면 접촉단계(1단계) ▲대면접촉 단계(2단계) ▲대외전파 단계(3단계) 등으로 구분하고 각 상황별로 적절한 조치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블랙컨슈머 문제 행동별 법적 검토 예시

<자료=법무법인 율촌>   ©중기이코노미

먼저 초기 비대면 접촉단계란 블랙컨슈머의 초기 행동 유형으로, 업무를 마비시킬 정도로 접촉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화를 반복적으로 하거나, 전화를 끊지 않는 행동, 음란사진, 혐오사진 등을 발송하거나 여성 직원에게 성적인 발언을 하는 등이 이에 해당한다. 변 변호사는 “이같은 행동은 업무방해죄 등으로 고발할 수 있다”며 “이때 ‘반복적’이란 기준은 전화의 경우 한 달 반에 450여회 정도가 판례로 나와 있다”고 말했다.

대면접촉 단계는 주로 모욕을 주는 행위를 통해 나타난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거나 전달한 보상금을 던지는 등의 행동이 이에 속한다. 변 변호사는 “이들은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이때 불특정 다수의 기준은 가족 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모르는 사람이 6명 이상일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블랙컨슈머가 직원에게 욕 등 경멸적 감정을 표현을 했다면 모욕죄가 성립되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면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외전파 단계에서 블랙컨슈머는 회사 건물이나 주변 외벽 등에 현수막을 걸거나 회사 홈페이지에 지속적으로 불만 글을 게시하는 등의 행위를 한다. 변 변호사는 “이때는 그 내용이 설령  사실이더라도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수 있다”며 “그러나 그 수준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이거나, 다른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무죄로 판명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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