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싸고 삼성과 엘리엇간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포이즌 필(Poison Pill) 제도를 문의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3일 ‘상장 활성화를 위한 상장사 제도합리화 과제’란 보고서를 발간하고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2009년 법무부가 도입하려 했던 포이즌 필 도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기획재정부에 2차 규제 기요틴 과제로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을 법제화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재계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이들의 주장인만큼, 포이즌 필이 대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제도임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한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신주를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총 100주의 주식을 발행한 A기업이 있다고 해보자. 이 기업의 현재 소유주는 40주의 주식을 가진 상태고, 나머지 주식은 수십 명의 소액주주가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업을 원하는 B가 소액주주들의 주식 중 41주를 사들이는데 성공한다면 A의 의사결정권은 B에게 넘어간다. 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이즌 필 규정이 있다면 A가 미리 새 주식 40주를 더 발행해 자신에게 호의적인 세력에게 이를 싼 값에 팔 수 있다. B에 대항해 지분방어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매수기업 입장에선 매수시도를 좌절시키는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어 포이즌 필이란 말을 쓴다.

포이즌 필은 그러나 기존 경영진의 소유체제를 공고히 하고, 정상적인 M&A를 저해한다는 부작용도 있다. 특히 대규모 신주발행은 주가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돼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M&A를 시도하는 매수자뿐 아니라, 소액주주 및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대해서도 ‘독약’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

때문에 포이즌 필 도입여부는 늘 논란거리다. 2009년 법무부가 한국형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2010년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야당과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먹튀형 M&A로부터 기업과 주주를 보호하고 기업이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투자·생산 활동에 전념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도입 취지를 밝혔으나 반대 측은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에 악용될 수 있다”고 맞섰다. 경영권 승계 등을 놓고 우리나라 대주주 일가들이 벌여온 역사를 생각하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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