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에서 열린 이메일 해킹 무역대금 사기 대응방안 세미나   ©중기이코노미

그런데 보름 뒤 B사가 박씨에게 사기를 당한 것 같으니 경찰에 신고하라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깜짝 놀란 그는 예전에 받았던 메일을 확인했고, 자신이 받은 이메일이 B사의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박씨는 “B사의 계정에서 소문자 i를 대문자 l로 슬쩍 바꿔 버린 탓에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커가 B사의 이메일과 유사한 형태의 메일 주소를 사용해 사기를 친 것이다.

해커조직이 기업의 이메일을 해킹해 거래처인 척하며 결제대금을 가로채는 이메일 해킹 무역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 44건(피해액 40억원)이던 이메일 무역사기는 지난해 71건(피해액 60억원)으로 1년 만에 약 61%가 늘어났다. 올해는 6월까지 접수된 사고건수가 61건에 이른다. 한국무역협회에서 지난 26일 열린 이메일 해킹 무역대금 사기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홍성진 경위는 “이같은 신고 건수는 해외 수사기관에 공조가 요청된 것만 집계한 것이라 실제 피해 건수는 훨씬 많다”며 “보통 이메일 무역사기는 경찰에 신고를 해도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많은 피해기업들이 아예 신고를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 경위에 따르면, 해커의 이메일 무역사기는 크게 3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1단계는 이메일을 이용해 무역업체의 업무용 컴퓨터를 악성코드에 감염시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해커는 이력서, 대출안내, 거래제안 등 기업이 흥미 있을 법한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다. 이때 메일을 열어보면 해당 내용이 첨부파일 형태로 들어 있다고 쓰여 있고, 이를 열어볼 경우 PC에 악성코드가 자동으로 설치된다.

이후 해커는 악성코드를 이용해 자신이 해킹한 기업의 이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탈취, 해당 메일을 감시한다. 그리고 그 기업의 거래업체와 비슷한 형태의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앞으로의 사기를 준비한다(2단계). 이때 해커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거래업체의 이메일 주소 글자를 재정렬하거나 알파벳을 한두 글자 더하거나 빼는 것이다.

이메일 변경 예시

<자료=경찰청 사이버안전국>

해커는 이렇게 생성된 유사계정을 이용해 두 기업 간에 주고받는 업무용 이메일을 가로챈 뒤, 이를 중간에서 오랜 시간 중개한다. 쉽게 말해, A와 B 기업 사이에 직접 오고가야 하는 메일을 ‘A기업↔해커↔B기업’ 형태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협상이 대금결제 단계에 이르면 결제은행 계좌번호가 포함된 견적송장 등의 문서를 위조하는 식으로 돈을 빼돌린다(3단계).

이에 대해 홍 경위는 “얼핏 보면 허술해 보이지만, 많은 기업들이 이런 사기 수법에 속고 있다”며 “그런데 이같은 무역사기는 송금액을 돌려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 범죄가 주로 외국의 해커조직에 의해 이뤄지다보니 피해금을 돌려받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홍 경위는 “범인을 잡기 위해선 현지 수사당국과의 사법공조가 가장 중요한 데, 외국 경찰들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며 “예전에 법무부가 영국에 은행계좌 주인을 알아봐 달라는 공문을 보낸 적이 있는데 1년 반 만에 회신이 왔다. 미국 FBI의 경우엔 5억원 미만의 사건에 대해선 아예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메일 해킹을 막기 위한 예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에 대해 이광식 한국인터넷진흥원 선임연구원은 “비밀번호는 8자리 이상으로 문자와 숫자, 기호를 섞어 만들고, 이메일 상의 링크는 출처가 불분명할 경우 클릭하지 않는 등 개인적으로 네트워크 보안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뻔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해커가 막강한 네트워크 장비를 가지고 공격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이 연구원은 개인 컴퓨터의 보안 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로 15가지 점검사항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윈도우 자동업데이트를 설정했는가 ▲바이러스 백신 소프트웨어를 자동 업데이트로 설정했는가 ▲자료를 정기적으로 백업하고 안전하게 보관했는가 ▲화면보호기를 설정했는가 등이 제시됐다. 그는 “이중 ‘그렇다’는 대답이 10개 미만이라면 회사 보안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해킹이나 정보유출 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고 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컴퓨터 보안 사항 체크리스트

<자료=한국인터넷진흥원>

홍 경위는 피해방지 요령으로 이메일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메일 무역사기의 대부분이 상대방의 이메일을 무조건적으로 믿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계좌변경 요청이 있으면 전화로 바뀐 계좌가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메일 로그인 기록도 꾸준히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홍 경위는 “이메일 로그인 후 로그인 내역 페이지에 들어가면 해당 아이디의 최종 접속 시간과 국가를 확인할 수 있다”며 “이때 말레이시아나 중국, 나이지리아 등에서 접속을 시도한 것으로 나오면 이메일 해킹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미 이메일 무역사기를 당한 경우엔 법무부가 제공하는 해외진출 중소기업 법률지원 서비스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변호사, 변리사, 외국법자문사 등 총 150명으로 구성된 법률자문단이 해외 진출 중소기업의 무역거래, 해외투자, 지식재산권 보호 등에 대해 무료로 상담해 준다. 상담 범위는 ▲계약서, 협약서 등 각종 서류 검토 ▲회사 설립 정관 검토 ▲지식재산권 분쟁 대응방안 등 법률자문 ▲현지 법령·사법제도 해석 및 적용에 관한 자문 등이다. 신청방법은 법무부9988중소기업법률지원단 홈페이지(www.9988law.com)의 사건접수 페이지 내 국제사건 항목을 이용하거나 법무부 국제법무과(02-2110-3661)로 전화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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