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 쇼 특유의 촌철살인, 혹은 빈정거림 가운데 정점이라 할 그의 묘비명(墓碑銘)이다. 가정법과 전치사의 해석을 놓고 다른 해석이 분분한 중에도,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주절(主節)의 유쾌함과 선명함 앞에서는 엄지를 치켜세우고 만다. 묘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던 사자(死者)가 고개를 돌리며 던지는 “내 이럴 줄 알았다”라니…. 

 

원전이 던지는 신선함에 상관없이, 한 해 마지막 달력을 넘기며 이 말을 되뇌는 이가 많을 것이다. 굳이 새 대통령과 그가 풀어 놓을 경제정책 보따리가 아니더라도, ‘아무려면 지금보다야 낫겠지’라는 역사에 대한 낙관에 스스로 분발을 주문하는 각오를 뒤섞으며 힘차게 달력을 걸어 올린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2013년 대한민국 경제에 희망의 징후는 없었다. 청년실업·부동산 침체 등 장기적·구조적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고, 동양·STX 등 기업들의 몰락이 줄을 이었다. 한화·SK·CJ·효성 등 재계 총수의 유죄판결 및 구속에 이어 쌍용건설 법정관리 신청까지 우울한 소식의 연속이었다. 

 

국내외에서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으면서도 ‘아베노믹스’의 닻을 올려 새 동력을 탐색중인 일본과, 연방정부 셧다운을 겪으면서도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으로 양적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미국과는 극명한 대비를 보이고 있다. 셰일가스나 비트코인처럼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슈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한 해였다. 

 

중소기업 분야는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대통령이 강조한 ‘손톱 밑 가시’는 그 자체로 화두가 됐고, 독일과 이스라엘의 경우를 들며 ‘히든 챔피언’ 열풍이 불기도 했다. ‘창조경제’와 ‘경제 민주화’에 희망을 거는 이들도 많았고, 남양유업 사태는 불공정 거래 개선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강화, 공정위 전속 고발권 폐지, 일감 몰아주기 과세와 같은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버겁다. 전임 대통령 재임 5년을 관통한 ‘낙수 효과’는 엉뚱한 지점에서 빛을 내며 용도폐기됐다. 대기업 실적부진의 충격파를 온몸으로 받아낸 ‘협력사’들이 추풍낙엽이 됐고, 수출 중소기업들은 엔저와 중국 경기에 속을 끓여야 했다. 한국은행 발표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3~4월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3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연초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정했던 교수신문이 연말 마감 사자성어로는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를 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칫 그 자리에서 화석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를 ‘선언적 개념’의 성찬 위에 정작 먹을 것은 별로 없던 한해였다. 1년이 다시 흘러 내년 이맘 때 ‘내 이럴 줄 알았다’고 탄식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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