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 마르를 모델로 한 <우는 여자>

한 여인이 울부짖고 있다. 심하게 찌그러진 눈과, 불가항력으로 벌어진 입, 으르렁거리기라도 할 듯이 드러난 치아와, 뾰족뾰족하게 구겨진 손수건, 여인의 손이라기엔 민망할 만큼 앞발 같은 손과, 뚝 떨어지는 눈물, 푸른 꽃 장식을 단 빨간 모자와 화려한 바느질이 돋보이는 검은 예복이 오열하는 여인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피카소의 우는 여자를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피카소의 연인 도라 마르는 스스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못 이겨 날카로운 짐승의 소리를 내지른 후, 뒤이어 고통스럽게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의 고향집에서 날아온 부친의 부고장은 가뜩이나 불안정한 그녀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그녀의 우는 모습 위에 무자비한 폭격으로 삽시간에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의 골목길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울부짖는 모습이 중첩된다. 피카소의 붓끝은 거역할 수 없는 존재의 고통 받는 울음에 닿아 있었다. 그는 여인의 울음 그 자체를 그리려 했다.

피카소는 그의 다섯번째 연인 도라 마르를 모델로 <우는 여자>를 그렸다. 화가이면서 사진가이기도 했던 그녀는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4x7.5m 크기의 <게르니카>를 그리는 3개월 동안 함께 동거하며 그림이 바뀌는 7번의 과정을 낱낱이 기록했다.

<게르니카>를 마치고 난 후 피카소는 다시 그녀를 모델로 <우는 여자>을 잇달아 그렸다. 조국 스페인의 공화정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던 그의 절망감이 그림에 표현되었을 것이다. 피카소가 그린 <우는 여자>의 기하학적 이미지는 큐비즘의 질서를 따라 추상화된 형상이다.

큐비즘의 조형원리는 시점의 다각화와 기하학적 단순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49.7×34.7cm, charcoal on paper, 2013

피카소의 초기 큐비즘은 분석적으로 사물을 조각내어 평면에 나열하는 방식이었다. 그 와중에 사물의 입체성은 점점 정체를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납작하게 분해되었다. 후기의 종합적 큐비즘은 사물의 개체성을 회복하여 구체적인 꼴을 갖추지만 이미 이미지는 한참 왜곡된 후였다.

큐비즘의 조형원리는 시점의 다각화와 기하학적 단순화로 압축된다. 전통적인 원근법의 단일시점은 큐비즘에서 다시점의 시각체계로 바뀐다. 여러 각도에서 본 사물의 서로 다른 면을 같은 화면에 그렸다. 전통적인 시선은 사물의 앞면만을 보여주지만 다시점의 시선은 정면과 측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당대의 과학수준과도 연관이 있다. 전통회화가 뉴턴 물리학에 의존한다면 큐비즘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차용한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3차원 공간을 재현하는 전통회화의 질서에서 벗어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경험한 자연의 시공간을 체계화하는 큐비즘은 새로운 회화공간의 질서가 되었다.

임종 직전까지 자화상 그려

파블로 피카소는 무척이나 왕성하게 활동했다. 157.5cm의 다부진 몸에 번뜩이는 커다란 눈동자를 가졌던 그는 스페인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다. 92세까지 장수했던 그가 남긴 작품은 회화, 조각, 도자기, 판화, 드로잉을 망라해서 총 5만여점에 달했다. 그는 임종을 얼마 남기지 않고도 자화상을 그렸을 정도로 지칠 줄 몰랐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고, 49.7×34cm

“오늘, 어제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고, 내일보다 덜 사랑할거야.” 피카소의 여성 편력은 대단했다. 그는 두 번의 결혼을 포함해서 일곱 명의 각각 다른 여성들과 살았으며 7년, 10년, 20년 간격으로 상대가 바뀌었다. 사이사이에 스쳐 지나간 어정쩡한 경우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다. 피카소의 주변에 있었던 여성들은 그림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만큼 사적인 여성편력을 넘어서는 미학적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도 돌아서면 또 다른 여자를 쫓아가는 피카소를 도라 마르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뾰족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던 그녀는 날카롭게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훌륭한 화가일지 모르지만, 도덕적으로 형편없어!”

애초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야성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피카소는 힘과 열정이 넘쳐났다. 끓어오르는 예술적 열망은 그에게 관조의 미덕을 발휘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손에 거머쥐고 황소처럼 20세기를 돌진했다. 피카소의 마지막 자화상에 그의 눈은 빙빙 돌아가는 나선형의 선으로 퀭하게 표현되었으며 한쪽 머리는 뚝 잘려나가 있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 수분이 줄어들어 두개골과 뇌 사이가 헐거워진다고 한다. 그는 사그라지는 노구를 파고드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했으며 그의 동물적인 직관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번뜩였다.[글=류장복 화가 jangboki@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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