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수가 없는 만큼 부부 사이는 일심동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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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촌수가 없는 만큼 부부 사이는 일심동체라는데 바른 정치의 출발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지 되새겨야

기사입력2022-01-27 16:35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가족관계를 촌수(寸數)로 나타내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풍습인 것 같다. 부모 자식 간에는 1촌, 형제간에는 2촌, 부부 사이에는 0촌으로 세는데 촌수는 가족과 친척 사이가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혈연관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부부 사이는 어째서 0촌이라고 정했던 것일까? 촌수가 없는 만큼 부부 사이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듯이, 아예 자기 자신과도 같은 존재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대중가요의 노래 가사에서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고, 거꾸로 점 하나만 떼면 님이 된다고 한 것처럼 부부는 촌수가 없으니, 헤어지면 그만이라는 뜻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은 개인이 결정할 수 없다. 다만 부모의 결합을 통해서 우연히 태어나 살 만큼 살다가 혹은 불행하게 사고를 당해서 본디 자신에게 주어졌던 인생의 여정을 예정보다 단축해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경우도 흔히 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 말고 그 다음으로 중대한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명(明)나라 때 능몽초(凌濛初)의 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에는 결혼이란 살아가는 동안 가장 큰일이라고 해서 종신대사(終身大事)라고 했다.

결혼한 여자라는 뜻의 ‘며느리 부(婦)’자는 여자[女]가 손[又]으로 빗자루를 잡고 청소한다는 뜻을 그린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여성은 집안에서 청소하는 존재 정도로 인식하였다는 것을 할 수 있다.<자료제공=문승용 박사, 출처=漢字演變五百例 참조>

부부가 각자 자신들 부모에게서 태어나 30년 정도 다른 가정환경에서 생활하다가 만나 가정을 꾸미는 것이다. 그러니, 부부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의 차이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질 터인데,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한 집에서 자녀를 낳고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니만큼 결혼을 일생일대의 큰 일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결혼을 통해서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겪고 기회를 잡은 이 가운데 한 사람은 순(舜)임금이 아닐까 싶다. 순임금의 성은 우(虞)이고, 이름은 중화(重華)인데, 고대 중국에서 요(堯)임금과 함께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꼽힌다. 특히 요순임금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아닌데도, 오로지 순의 효행이 뛰어났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되어 순은 요임금으로부터 천하를 물려받았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순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순은 본래 신분이 낮은 일반 백성 출신이었다. 아버지 고수(瞽瞍)는 시각장애인이고, 어머니가 세상을 일찍 떠나자 아버지는 아내를 새로 맞아 아들 상(象)을 낳았다. 아버지는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웠는데, 후처에게서 낳은 아들을 너무 편애해 후처와 함께 계략을 꾸며 늘 순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순은 죽을 뻔한 고비를 지혜롭게 넘겨 언제나 아버지와 계모에게 순종하며 잘 모셨다. 이처럼 순이 효성스럽다는 소문이 퍼져 요임금이 후계자를 물색할 때 누구나 순이 적임자라고 하며 추천했기 때문에 마침내 요임금은 순을 불러와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만한지를 시험했다.

특이하게도 그 시험이라는 것이 자신의 두 딸을 순에게 시집 보내고 아들 아홉을 순에게 보내어 함께 생활하게 해 순이 집안을 얼마나 잘 건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순은 가정생활에서 더욱 근엄했고 두 딸도 평민 출신인 순에게 오만하게 대하지 않으면서 부녀자의 도리를 다했고 요임금의 아홉 아들 또한 더욱 성실해졌다. 다음으로 순이 행정처리도 잘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요임금은 순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중국 거리에서 흔히 보는 포스터다. 문명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풍습을 새로이 세우고 바른 기운을 일으키며 사람들이 서로 화목[和諧]하게 지내야 한다는 내용이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요순임금의 시절이 기록에 의하면 대략 기원전 25세기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대가 워낙 먼 때이다 보니 평민 출신이었던 순이 아무리 효성스러웠다고 해도 요임금이 자신의 두 딸을 시집보냈다는 것이나 아들 아홉까지 순에게 보내어 순이 군주 자리에 오를 만한지를 시험해 보았고, 결국 순이 집 안팎으로 모범을 보여서 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역사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확증할 수도 없고 그들이 살았던 때를 정상적인 고대 국가의 시기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특히 순이 한 집에서 두 아내와 화목하게 잘 지내고 아홉 명의 처남들에게도 모범을 보이는 등 집안을 화목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인품과, 행정처리도 잘 해내는 실력으로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유가에서 이상적인 성군(聖君)이 우선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잘 다스리고 천하를 두루 고르게 한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이상을 실현해 나아가는 전형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군주의 자질 가운데 자기 가족을 얼마나 화목하게 잘 건사하는지를 중시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농경을 위주로 살아가야 하는 자연환경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가족과 이웃이 잘 화합해 힘을 모아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해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원활하게 이뤄진다고 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미 농경사회에서 벗어나 산업사회에 진입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가족 간의 화목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유난스럽게 여야 후보 모두에게 가족리스크가 부각돼 그때그때마다 후보의 지지율이 들쑥날쑥 요동치고 있다. 집안을 화목하게 유지하지 못하면 나라를 온전히 다스리고 세상을 평안하게 할 수 없다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역사가 어제로부터 오늘을 거쳐 내일로 흘러가듯이 우리네 머릿속에 이미 깊숙이 자리잡은 전통적인 의식 또한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여야 후보 역시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