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은 물론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뽑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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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도덕성은 물론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뽑았는가 선거제도가 민주주의 꽃이 되기 위한 국민의 역할과 몫을 되새겨야

기사입력2022-06-07 10:10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왕조시대에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과거(科擧)시험을 통해서 관리를 뽑았다. 과거(科擧)는 여러 종류의 ‘과목(科)’으로 나누어서 인재를 선발해 황제나 왕에게 ‘올렸다[擧]’는 의미다.

과거제도를 처음 시행한 것은 중국 수(隋)나라 때인데, 당시 문벌 귀족 출신이 아닌 사족(士族) 지식인을 등용하기 위해서 일정한 형식의 시험을 치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지배와 피지배계급으로 구분돼 세습되었던 신분사회에서 지배계급들이 권력을 임의대로 나누어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험을 치러서 능력 있는 인재를 관리로 선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제도가 실시되기 이전에는 일종의 추천제라고 할 수 있는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를 통해서 관리를 뽑았다. 이 제도는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조조(曹操)의 아들인 위 문제(魏文帝) 조비(曹丕) 때 제정된 것으로, 평상시에 인재를 추천받아 9등급으로 나눠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적정하다고 여겨지는 이를 골라 관리로 임명했다. 이것의 폐단은 이미 권력을 쥐고 있던 귀족세력이 자신의 취향과 편의대로 인재를 뽑다 보니까, 이른바 ‘높은 등급에는 미미한 집안 출신은 없고, 낮은 등급에는 문벌이 좋은 집안 출신이 없다(上品無寒門, 下品無士族)’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정한 인재를 두루 고르게 뽑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수나라 문제(文帝)가 전국을 통일한 이후, 귀족들이 권력을 나눠 쥐고 흔드는 구품중정제의 폐단을 없애고 실력 있는 인재를 두루 선발하기 위해 과거제도를 시작했다. 물론 과거제도를 통해서 유능한 인재를 관리로 선발한다는 취지 이외에도 나라 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문벌 귀족들의 권력을 황제에게 당겨오려는 수 문제의 의도도 강하게 반영됐다.

중국 하남성 허창시(許昌市) 조조 승상부(丞相府)에 걸려있는 ‘구현령(求賢令)’이다. 평소 인재 등용에 관심이 많았던 삼국지의 조조가 일찍이 반포했던 것인데, 그의 아들 조비가 제정한 구품중정제는 이후 400여 년 동안 널리 인재 등용제도로 시행됐다. <사진제공=문승용 박사>

하긴 과거시험을 통해서 임용될 이들 역시 문벌 귀족의 자제들이 보통 집안 출신들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컸지만, 그래도 문벌 귀족의 배경이 아니라 실력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해 임용된 이들은 황제에게 의지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보니 나라의 정치권력이 자연스레 황제 중심으로 모여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사법고시나 공무원임용시험 등 여러 방면의 시험을 통해서 선발된 이들이 나라 살림을 맡아 보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각 시도와 기초 단체장들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선거를 통해서 뽑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근본정신에 따라 일정한 나이가 되면 누구나 자기 뜻을 대신해 공직에서 일할 사람을 투표로 뽑기 때문에 흔히 선거(選擧)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영어로 데모크라시(democracy)라고 하는데, 본래 그리스어인 데모스(dēmos, 대중)와 크라토스(kratos, 지배)의 합성어인 데모크라티아(dēmokratiā)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을 한자어로 국민[民]이 나라의 주인[主]이라고 여기는 체계라는 뜻에서 민주주의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나라의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나라에서는 나라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 지자체 단체장을 국민이 직접 뽑는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전제(專制) 통치를 하던 왕조시절에도 나라 정치는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와 관련해 유가의 대표격인 맹자(孟子)는 맹자 진심하(盡心下)편에서 “백성이 귀하고, 조정이 그 다음이고, 임금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라고 했고, 도가의 대표격인 노자가 도덕경 49장에서 “집권자는 자신만이 고집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라고 했다. 또 법가(法家)의 시조인 관자(管子)는 관자 목민(牧民)편에서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 데에 달려 있고, 정치가 망하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데에 달려 있다(政之所興, 在順民心, 政之所廢, 在逆民心)”라고 했다.

서안(西安) 대명궁(大明宮) 박물관에 전시된, 당 태종(唐太宗) 당시 조정의 모습을 재현한 미니어처다. 당 태종은 자신의 즉위를 극력 반대했던 위징(魏徵)을 등용하는 것은 물론 과거제도를 강화해 인재 등용에도 힘써서 ‘정관(貞觀)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사진제공=문승용 박사>

왕조시대 과거제도가 실력을 위주로 인재를 관리로 임용하는 제도라고 한다면, 오늘날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은 국민 대다수의 뜻을 공정하게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 치러진 지자체장 선거와 같이 투표율이 겨우 50%에 불과한 경우에는 50% 이상의 득표율만 얻으면 당선이 되는 것이니, 실제로는 전체 선거권자 25%만의 지지만 받으면 당선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이 국민 대다수의 뜻에 따라 당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광역과 기초 자치단체장과 의원은 물론 교육감 등 한꺼번에 여러 후보에게 투표를 하다 보니 어떤 이가 후보로 나섰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가, 투표하기 며칠 전 집집마다 우편으로 날아오는 후보자들 신상에 관한 소개 몇 줄과 임기 안에 도무지 지켜질 것 같지도 않은 미사여구의 공약사항만 가지고는 그 자리에 어떤 후보자가 가장 적정한지를 판단하기는 현실적으로 더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공직자는 해당 기관 업무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 도덕성을 두루 갖춰야 할 텐데, 오늘날 우리 선거에서는 매스컴에 자주 등장해 유권자들에게 잘 알려진 정치인이라든지, 유권자의 정치적인 색깔과 얼마나 잘 맞는지가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때로는 선거에 나선 이들 가운데 최선(最善)의 후보자가 없다면 차악(次惡)에게라도 투표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뽑힌 당선자라면 임기 동안 나라와 국민 모두를 위해서 공직에 임하기보다는 다음번 선거에 다시 한번 더 당선되기 위해 자신을 뽑아줄 유권자의 얼굴만 살피다가 세월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그런 점에서 선거제도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충동에 따라 좌우되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폐단에 빠지지 않고, 진정으로 민주주의 꽃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나라의 주인으로서 역할과 몫이 무엇인지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