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정작 좋은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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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비엔날레…정작 좋은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 Life is pain.ting #55. 벤치

기사입력2022-07-11 10:08

김윤아 작가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베니스는 일정 내내 완벽한 날씨였고, 낭만적이고, 여전히 수많은 여행자들로 붐볐다. 코로나 이후 조금은 한적한 도시를 상상했으나, 자가 격리가 없어지고 해외여행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덕분인지 좁은 골목골목 많은 인파로 붐비고 활기가 가득 차 있었다.

떠나기 전에 몇몇 지인들로부터 들은 정보 혹은 뇌피셜에 의하면, 코로나 여파로 비엔날레 기간 동안 물가가 몇 배는 올라 있을 거라는 둥, 숙소비용도 예전과 달리 만만치 않을 거라는 말들을 포함해 일주일만 머물러도 최소 500만원은 소요될 거라는 둥, 많은 부담스러운 말들이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물가는 관광도시로 잘 알려진 만큼의 체감정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본섬 근처에 유일하게 비치가 있는 리도섬에서 하루를 여유 있게 보내고 다음날 비엔날레로 향했다. 붐비는 티케팅 부스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내 수많은 나라에서 온 많은 작가들과 미술관계자, 미대 학생들과 관광객이 뒤섞인 특유의 활기 때문인지, 대형전시에서 자주 보게 되는 코스프레를 방불케 하는 화려하고 눈에 띄던 패션들 때문인지 지루함이 밀려올 틈이 없었다. 티켓은 한번 들어가면 중간에 나올 수가 없어서 식사와 커피는 내부에서 전부다 해결해야 했는데, 경험상 시중 물가보다 몇 배는 비싼 가격에 맛없는 커피를 사먹어야 할 게 뻔해서 큰 텀블러에 커피를 준비해 갔다.

수많은 작품들을 하루 종일 보는 일에는 늘 미열을 동반한 두통이 따랐다. 예전에 휘트니 비엔날레에 갔을 때도, 메트로폴리탄이나 구겐하임에서도 이랬다. 일종의 직업적 의무감, 혹은 직업병 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보는 걸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중간중간 파빌리온 밖에 마련된 벤치나 잔디 위에서 쉬기도 하고, 식사도 했지만 두 눈은 갈수록 뜨거워졌고 나중엔 몇몇 파빌리온은 포기하고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전시는 비엔날레답게 스펙타클한 작업들이 많았고, 일명 군대식 작품들(같은 형식의 작업이나 같은 것들을 수천 수백개로 제작해 설치한)과 영상작업들이 많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실제와 같은 모습을 재현한 극사실 작업들과 관객이 냄새나 촉감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작업들, 연극 무대식의 공간연출 작업, 고발성 다큐멘터리 작업물들과 올해 주목을 받은 미국 파빌리온의 도자작업, 그리고 가상공간을 체험하는 관객조차 작업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는 VR 작업과 연출 그리고 페인팅 작업들.

전화기로 쉬지 않고 촬영하는 수많은 인파와 장비를 단단히 챙겨와 무거운 가방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카메라에 담고 있는 이들, 단체로 견학 온 미대 학생들(아마도)의 까랑까랑한 소음과 두 세 걸음마다 입을 맞추는 연인들과 전시장을 기어 다니던 아기들과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쁜 엄마와 작업 하나하나를 오랫동안 멈춰서서 흡사 천천히 움직이는 조각상처럼 보이는 관객들과 알맞기도 하고 어찌보면 포악한 균형감을 이루면서 그야말로 완전한 비엔날레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전시 없음’ 이라고 쓰인 러시아 파빌리온이 눈에 띄었다. 아무튼 파빌리온 내부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관람해야 해서 밖으로 나오는 것과 동시에 다들 마스크를 벗고 숨을 돌렸다. 나 역시 한 두 번의 파빌리온을 돌고 나오면 아무 빈 곳이나 찾아 주저앉아 마스크를 벗고 숨을 돌렸다.

이상했다. 이토록 많은 관객들을 비싼 경비를 치르게 하면서까지 불러 모으고 기꺼이 이 많은 인파 안에서 두 다리가 퉁퉁 붓도록 걷다 서다 하게 만드는 대단한 작품들을 본 것인데도 밖으로 나와 초록 잔디와 풍성한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어지러움과 두 눈에 스며든 온갖 이미지들이 씻겨 나가는 청량한 기분을 느꼈다.

직업 때문인지, 작업을 온전히 즐길 수만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혹은 대형전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전형적인 방식에 대한 식상함 때문인지 오로지 즐겁게 보고 잔향을 느낄 수 있는 작업물을 만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혼자 하는 질문들이 오고가다 보면 너무 많은 시각적 정보와 함께 피로해 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감은 두 눈의 피로가 조금 풀리면 눈을 뜨고 아무 생각 없이 풍경 속 아무 곳에나 시선을 내려 두었다. 아침부터 주변 쓰레기통을 부지런히 비우고 있던 베이지 톤에 형광 오렌지 컬러의 띠가 둘러진 반소매 자켓을 입고 있던(아마도 비엔날레 기간 동안 고용되었을) 중년의 여자가 벤치에 앉아 뒤로 젖힌 몸을 두 팔로 지탱한 채로 관람객들의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보고 있다. 벤치 아래에는 여자가 수거한 쓰레기들을 담은 반투명한 대형 흰 비닐봉지와 기다란 집게가 기대어져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일어나면 나도 일어나야지 생각했다. 왠지 그녀라면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쉬다가 딱 알맞은 시간이 흐르고 일어날 것만 같았다. 괜히 그렇게 작정하고 나서 나도 덩달아 몸을 젖혀 고개를 돌려 시선을 이리 저리 옮겼다. 좀 전에 미국 파빌리온에서 만난 두세 걸음마다 입을 맞추던 연인이 건물 모퉁이에 걸터앉아 이번에는 좀 더 길고 편하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단체로 견학 온 듯한 학생들은 삼삼오오 잔디에 앉아 샌드위치나 각종 샐러드를 음료와 함께 들이키며 사진을 찍고 찍히면서 일정한 간극을 두고 커다란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그 즈음 여자가 일어났고, 나도 일어나서 다음 파빌리온으로 향했다.

그렇게 전시장을 두세 개 돌고, 밖으로 나와 숨을 둘리고 다시 전시를 보는 방식은 마감 시간을 딱 맞춰 끝났다. 결국 단 한 곳의 파빌리온만 입장하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으나 충분했다. 아니, 이미 과했다.

함께 했던 동료 작가가 나가서 저녁식사는 기똥차게 맛있는 걸 먹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도 좁은 골목에 앉아 와인 한잔 곁들이며 즐길 수 있는 코스 요리 생각이 간절했다. 돈이 부족해도 한 번의 식사정도는 근사하게 하고 싶었고, 비엔날레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같이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해가 길어진 계절 덕분에 곧 저녁식사 시간인데도 날은 밝았고, 덕분에 아직 하루가 많이 남은 것 같은 시간적 두둑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꽤나 긴 시간을 걸어서 제법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아냈고,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식사를 거의 마칠 때 즈음 되어서야 하늘색이 조금 짙어졌고, 노랗게 가로등이 켜졌다. 그 시간까지 정작 오늘 하루종일 본 비엔날레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서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채 동료 작가에게 물었다.

“나는 중간중간 밖에 나와서 벤치에 앉아 있는 게 그렇게 좋더라. 비싼 돈 들여 전시 보러 왔는데 말야.”

친구는 이제 막 켜진 가로등 어디쯤에 시선을 두고 대답했다.

“정작 좋은 건 밖에 있기 때문 아닐까”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