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마니의 가니메데는 날 어디로 데려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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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그리마니의 가니메데는 날 어디로 데려가는걸까” 고대 로마를 추억하는 베네치아 저택의 놀라운 전시실 ‘안티콰리움’

기사입력2022-08-21 00:00

코로나로 여행길이 막힌 지 2년 째인 지난 2021년 10월2일, 베네치아는 음산한 안개를 걷을 의지를 담아 예술의 밤(Night of Art) 행사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베네치아의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모두 문을 열었던 이 날, 무엇을 골라 봐야할지 행복한 고민 끝에 고대 로마 조각관으로 빛나는 그리마니 저택에서 멋진 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베네치아 그리마니 저택 전경.

산타마리아 포르모자 광장끝에 있는 좁은 운하를 건너 아주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대리석으로 치장된 아치문이 나옵니다. 그 안을 성큼 들어서면 듀칼레 궁전의 황금 계단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계단이 2층으로 이어집니다. 널찍한 2층 중앙복도에는 현대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그림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림을 거꾸로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현대작가의 작품이 저택 깊숙이 숨겨져 있는 고대 로마에 대한 기억을 거꾸로 소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마니 저택은 고대 로마 조각작품들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르네상스 저택으로 공화국의 자랑이었습니다. 1573년 프랑스왕 앙리 3세가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 로마인의 피가 흐르는 베네치아를 보여주기 위해 이 저택의 ‘안티콰리움’을 관람 코스에 넣었으니까요.

그리마니는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3명의 총독을 배출한 명망있는 귀족가문이었습니다. 1521년 안토니오 그리마니가 베네치아의 76대 총독이 되자, 가문의 명성을 위해 낡은 중세 저택을 구입했습니다. 그는 비록 2년 후 사망했지만, 그의 조카들이 이곳을 르네상스 저택으로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삼촌을 기리는 공간을 만들면서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후원자라는 가문의 이미지를 만들어 갔습니다. 총대주교를 지낸 조반니 그리마니(1506~1593년)는 형제들 중 고대 로마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으로 로마 황제의 도무스를 꿈꾸며, 천장 장식에 그로테스크 문양을 그려넣었습니다. 나무로 평평한 천장을 만드는 베네치아의 다른 집과 달리 그리마니 저택에서 우아한 아치를 가진 천장을 볼 수 있는 것도 고대 로마에 대한 그의 열망 때문입니다.

12개의 방들은 특히 천장 장식들이 인상적입니다. 이 곳은 점잖은 인문학자의 흉내를 내기 위해 대리석으로 치장된 벽마다 고대 로마시대의 조각상을 놓았지만, 천장 장식은 고전분위기를 벗어나 그리마니 가문의 현실 감각으로 꾸며졌습니다.

로마의 판테온 천장 장식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안티콰리움의 천장.

가령, 식당의 천장에는 온갖 종류의 고기들이 매달려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꿩, 닭, 칠면조, 생선과 고깃덩어리가 푸른 채소와 함께 그려져 있고, 녹색의 방 천장에는 온갖 종류의 열매가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오렌지와 탐스러운 포도, 복숭아와 붉은 사과, 심지어 옥수수 밭까지 그려져 있어 화려하고 풍부한 먹거리로 유명했던 베네치아인들의 삶을 짐작케 합니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즐겨워지는 그리마니 저택의 천장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안티콰리움’의 천장입니다. 유물의 방이라는 의미의 ‘안티콰리움’은 들어서는 순간, 고대로의 시간 여행을 경험합니다.

작은 문을 통과하면 붉은 꽃잎 모양을 가진 인상적인 둥근 바닥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벽에는 진귀한 고대 유물 석상들이 보석 진열대에 놓여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파리에 있는 티파니 매장에서 보았던 1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진열한 보석함처럼, 우아한 아치 아래 고대 건축구조처럼 보이는 삼각 지붕 공간이 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담길 시간 유물들의 고귀함을 위한 설계입니다.

공간 중앙에서 계속 몸을 돌려 벽면 장식의 아름다움속에 빛나는 고대 유물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면 작은 탄성과 함께 몸이 저절로 멈춰집니다.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을 때의 느낌처럼, 하늘로 뻗은 우아한 천장 사이에 매달린 조각상의 운명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티콰리움의 천장은 분명 로마의 판테온 천장 장식을 그대로 옮겨 온 것입니다. 사각장식 안에 도드라진 꽃문양, 중앙에 뚫린 공간 사이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수 없는 끈 하나가 내려와 있고 젋은 남자의 처연한 조각상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는 마치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그의 등뒤에 펼쳐진 날개는 커다란 독수리의 날개입니다. 신들의 술 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 독수리로 분한 제우스가 가니메데를 납치하는 장면입니다.

신들의 술 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 독수리로 분한 제우스가 가니메데를 납치하는 장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가니메데는 누구나 보면 반할 만큼 잘생긴 청년으로, 아내 헤라의 질투를 받을 만큼 제우스의 사랑을 받습니다. 이 소재는 표면적으로는 동성애적 사랑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해석에서는 달랐습니다. 제우스는 가니메데의 몸을 결코 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신의 사랑은 정신적인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반론한 것입니다.

한편 독수리가 가니메데를 납치하는 모습은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가는 천사의 모습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신의 사랑이 곧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간다는 뜻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예술계에서 이 소재는 너무나 매력적인데, 동성애적인 사랑과 아내 헤라의 질투라는 보다 인간적인 면에서부터 플라토닉한 사랑과 영혼을 데려가는 신의 사랑이라는 종교적인 사랑까지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렘브란트의 ‘가니메데의 납치’에서는 어린 아이를 무자비하게 납치하는 무서운 독수리가 등장합니다. 렘브란트는 가니메데의 얼굴에 잘생긴 미소년의 아름다움이 아닌 공포에 질린 어린 아이의 불쌍한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 그림은 주문자가 어린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주문한 그림이었으며, 죽음에 납치되는 아이의 공포를 통해 죽음을 지켜보는 이들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그리마니 저택의 가니메데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라는 기대감으로 독수리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이 신화는 크레타 섬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합니다. 크레타 섬을 정복한 베네치아는 크레타 섬의 가니메데에게, ‘즐거운 축제의 나라 베네치아로 너를 데려가마’ 하고 대답해 주는 것 같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