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그대로 인데 용량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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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가격은 그대로 인데 용량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간접 인상 효과…고물가 고육책인데, ‘용량 되돌리기 어렵다’ 우려

기사입력2022-09-17 00:00

정기영 기자 (sksmsskly@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고물가가 계속되며 ‘국민과자’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초코파이는 2013년 이후 9년 만에 가격을 인상했다. 오리온이 지난 15일 전체 60개 생산제품 중 파이, 스낵, 비스킷 등 16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15.8% 인상한 것이다.

또 농심 신라면 1봉지당 판매가격은 편의점 기준으로 900원에서 1000원이 됐다. 밥상 물가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집의 가장 흔한 반찬이었던 시금치도 ‘시金치’가 됐다. 반찬가게에서도 종적을 감췄다. 한 반찬가게 점주는 “시금치 한 팩에 9000원을 받아야하는데, 고깃국보다 비싸다. 누가 사먹겠나”라며, 시금치 반찬이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리온이 15일부터 초코파이를 비롯한 16개 제품 가격을 평균 15.8% 올렸다. 사진은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초코파이. <사진=뉴시스>

◇가격인상은 최후의 보루…슈링크플레이션=고물가로 인해 음식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반찬 양을 줄이거나 리필을 없애는 고육지책을 내놓고 있다. 고깃집에서 같은 값에 돼지고기나 소고기 용량이 줄어든 건 물론 쌈채소 양을 줄이기도 하고 더 이상 밑반찬을 공짜로 리필해주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무한리필’을 간판으로 내걸던 음식점들도 리필 횟수를 제한하거나 리필을 아예 없애는 추세다. 음식가격을 인상하진 않았지만, 용량을 줄이거나 리필을 해주지 않음으로써 간접적인 가격인상인 셈이다.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기업들이 제품 가격은 기존대로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 및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생산해 우회적으로 가격인상 효과를 거두려는 전략이다.

보이지 않는 인플레이션이다. 소비자들은 가격 변동보다는 용량 변화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은 과거 ‘질소과자’ 등의 논란을 낳았지만, 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시대에는 중소상공인·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 되고 있다.

인심이 야박하다고 탓할 일일까. 배달의민족 사장님광장 ‘고객연구소’에서 지난 7월 실시한 관련 설문조사만 봐도 음식가격 변동 보다는 밑반찬을 줄이는 게 낫다는 응답률이 높았다. 배달의민족 이용자들에게 재료비 상승이 불가피한 고물가 시대에 가게가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한다면 어떤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물어본 결과, ▲밑반찬 줄이기 59.8% ▲가격 인상 27.9% ▲메인요리 양 줄이기 7.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10명중 6명이 가격인상보다는 밑반찬을 좀 줄이는 게 낫다고 한 것이다.

얼마 전 서울우유협동조합도 토핑 요구르트 ‘비요뜨’의 용량을 줄이면서 사실상의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최근 비요뜨 초코링의 용량을 약 5g 줄였다. 쿠키앤크림도 용량이 변동된다. 유제품, 유가공품 가격인상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지면서 슈링크플레이션을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우유는 “최근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불가피하게 용량을 소폭 조정하게 됐지만 타사 제품 대비 용량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주요 호텔들도 멤버십에 포함된 식음료·레스토랑 할인 혜택을 없애거나 무료 숙박권을 폐지하는 등의 슈링크플레이션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고물가로 인한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코트라 해외시장뉴스에 따르면, 미국인 리차드 씨는 지난주 마트에서 음료를 사서 마신 후 뭔가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병을 자세히 살펴보니, 용량이 기존에 마시던 32온즈가 아닌 24온즈였다. 가격은 같았지만 병모양이 약간 슬림해지면서 양이 줄어든 것이다. 미국 도미노피자는 최근 미국 전역에서 10개짜리였던 ‘치킨 윙’을 8개로 줄였다. 샌드위치 브랜드 ‘써브웨이’도 치킨랩과 샌드위치에 넣는 고기양을 줄였고, ‘버거킹’도 치킨 너겟 개수를 축소했다.

양이 줄어든 세제(왼쪽)와 시리얼. <자료=mouseprint, 코트라 해외시장뉴스>

◇동일 가격 유지되나 실질적으로 가격 올라=코트라 뉴욕무역관에 따르면, 2022년 7월 미 노동부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대비 9.8%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전월의 11.3%보다 크게 낮아졌는데, 지난 7개월간 10%를 웃돌며 고공행진을 하다 한풀 꺾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처럼 높은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거나 품질을 낮추거나 용량을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많은 기업이 올라간 원자재 가격을 최종 소비자가에 반영할 경우 판매가 감소할 것을 우려해, 가격을 올리는 대신 제품의 용량을 줄이며 슈링크플레이션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84.51컨슈머 다이제스트가 진행한 설문을 보면, 73%의 응답자가 슈링크플레이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소비자단체 컨슈머월드는 최종 소비자 가격에만 집중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기업들은 같은 가격 상품의 디자인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용량만 줄인다고 고발하며, 경험담 제보를 호소했다.

문제는 한번 줄어든 양이 되돌아 오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물가가 안정된다 해도 이미 용량을 줄인 제품이 줄어든 채 그대로 판매가 될 것이고, 앞으로도 슈링크플레이션이 많은 제품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다.

◇반값 치킨 등 ‘갓성비’ 제품 출시도 이어져=한편, 홈플러스는 지난 6월30일 한 마리에 6990원(후라이드 기준)인 ‘당당치킨’을 선보인 후, 8월21일까지 누적 판매량이 46만마리로 하루 1만마리에 가까운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이마트도 기존 9980원에 판매 중인 ‘5분 치킨’을 8월18일부터 24일까지 단돈 5980원에 할인 한정 판매했다. 또 홈플러스는 ‘시그니처 피자’를 기존 4990원에서 반값 수준인 2490원으로 할인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했고, 이마트는 ‘소시지 피자’를 1인 1판 한정으로 5980원에 선보이도 했다.

오비맥주는 가성비를 앞세운 카스 2ℓ 페트를 출시했다. 카스 2ℓ는 1.6ℓ 대비 용량이 늘었지만 용량 대비 가격은 낮췄다. 1.6ℓ 제품은 슈퍼마켓 기준으로 5700원에 판매되는데 반해 2ℓ 제품은 6700원에 판매한다.

롯데마트는 앞서 지난 6월 일반 상품보다 용량은 배 이상 늘리고 가격은 50% 낮춘 ‘대용량 김자반’을 내놓기도 했다. 김자반은 일반적으로 50∼70g 정도의 소용량 상품이 많지만, 롯데마트는 300g 용량으로 기획하고 용량 대비 가격은 낮췄다. 롯데마트는 이 밖에도 일반 과일과 비교해 맛과 영양은 차이가 없지만, 크기가 작거나 외관에 흠이 있는 이른바 ‘못난이 과일’을 ‘상생 과일’이란 이름으로 최대 30% 할인해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