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부터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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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대통령부터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 사과할 건 제대로 사과하면 되지, 왜 일을 벌려가며 무리수 두는가

기사입력2022-11-23 14:38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왕이 지배했던 시대, 임금의 허물은 수치스러운 일도 나무랄 일도 아니라는 ‘군왕무치(君王無恥)’ 이념이 불문율처럼 고수됐다. 절대자인 왕은 어떤 잘못도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었으며, 허물을 드러내 왈가불가하는 것이 곧 역심의 증표로 간주됐다. 왕의 말 한마디가 법보다 우위인 세상, 요사이 회자되는 표현을 빌린다면 군왕무치의 억지는 헌법 수호와 같은 말로 통용됐던 셈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군왕무치의 이념은 여전히 횡행한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공식적인 공간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일삼아 반말로 하대하는 대통령, 후보 시절 열차 칸에서 신발을 신은 채 앞좌석에 다리를 올려놓는 행위에서 일찌감치 왕처럼 행세한다는 비난이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대통령의 예의는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이 순방 중 미국 대통령을 비속어를 사용해 비난했다는 논란이 일자, 비속어 사용 대상이 우리나라 야당이었다는 김은혜 홍보수석의 주장도 있었다. 가관이다. 아무리 홍보수석의 그 말이 맞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외교석상에서 보인 행동과 발언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품격을 잃었다.

그러나 사과 대신 응징을 택한 건 대통령이었다. 아세안·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동남아 순방에서 대통령 전용기에 MBC 기자의 탑승을 불허했다. 지난 9월 미국 뉴욕 순방 당시 불거진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관련, MBC 보도에 대해 왜곡 편파 방송이라고 규정하고, 뜬금없이 헌법 수호까지 내세워 탑승 배제를 합리화 했다. 하지만 나토 정상회의 당시 민간인 신분의 여성까지 전용기에 태운 사례에 비춰보면, MBC 기자의 탑승 배제는 국익의 조치라고 보다는 군왕무치의 이념을 흠집낸 보복이라 할 수 있다.

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통령 출근길에 해오던 도어스테핑이 MBC 기자의 질문과 비서관 설전으로 중단됐다. 따라오는 지적은 ‘예의’다. 대통령의 뒷전에 대고 고함치듯 하고, 정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예의다. 여당은 이참에 눈 밖에 벗어난 방송사를 제대로 손보겠다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이게 그렇게 문제될 일인가 생각한다. 정상회담의 비속어 논란,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도어스테핑 중단, 일련의 사건들이 대한민국에서 군왕의 심기 경호가 아니라면 이해되지 않는다. 헌법 수호,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아무리 탄탄한 헌법의 가치와 공정의 이념이라도 예외가 있으면 댐에 구멍이 나듯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잘못을 비추거나 논하는 언론을 적대시 하면서 어떻게 법과 공정이 제대로 발현되기를 바라는가. 숱한 외교적 현안과 국내의 암울한 경제 문제를 뒤로하고,이참에 방송국 하나 정도는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윤석열 정부. 이러려고 정권을 잡았냐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온다.

대통령은 군왕이 아니다. 사과할 건 제대로 사과하는 게 지지율을 회복하고 국정 동력을 얻는 지름길이다. 대통령의 잘못은 물론 김건희 여사와 측근들의 전횡도 바로 잡아야 할 일이지 군왕무치의 이념을 강요해 묻을 일도 아니다.

대통령부터 국민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으면 한다. 언론 앞에서 일상적인 반말과 하대는 불편하다. 방송사를 상대로 상식에도 맞지 않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대통령 자리는 군왕무치의 이념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지금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2022년이다. 대통령이 왕이라고 착각하는 군왕놀이, 유치하고 졸렬하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