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잇따랐던 ‘구로의 등대’는 없던 일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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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과로사 잇따랐던 ‘구로의 등대’는 없던 일 됐나 주 52시간제 허물기라니…대체 누구를 위한 “노동개혁”인가

기사입력2022-12-15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난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에 대한 권고문을 발표하고, 정부에 입법·행정조치 착수를 권고했다. <사진=뉴시스>

주 52시간제를 허물고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를 1주뿐만 아니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넓힐 수 있게 하자는 권고안이 나오자 논란이 뜨겁다. 사실상 주 69시간제 도입이 아니냐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권고안을 발표한 연구회나 정부 모두 무리한 초과근로에 따른 과로사 위험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과로사가 잇따라 발생한 넷마블을 “구로의 등대”라고 불렀던 것이 불과 2016년의 일이다. 한 회사에 국한된 문제도 아닌 것이, “판교의 오징어잡이 배” 등 초장시간 근로행태를 비꼬는 다양한 표현들이 존재했다. 일본에서 건너온 “블랙기업”이란 단어는 취업준비생들이 더 잘 알 만큼 심각한 사회적 우려를 낳았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까지 크게 논란이 된 과로사 사건은 결국 2018년 주 52시간제 입법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그런데 2022년에 주 52시간제를 허무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면서, 주 52시간제 입법의 중요한 단초였던 초장시간 근로행태와 그로 인한 과로사 우려가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 점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권고문에는 “근로자 건강권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이란 내용이 한차례 나올 뿐, 과로사나 산재라는 표현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논란의 권고안을 발표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전문가 논의기구로, 경영·경제·법학·의학·사회복지 등을 전공한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따라, 근로시간 제도와 임금체계 개편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모임으로 발족했다.

연구회는 “노사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1주 이외에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선택할 수 있게 할 것을 권고했다. 권고안에는 “근로시간의 총량을 줄이는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의 선순환 지향”을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고용노동부 역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기존의 지향점을 바꾼건 아니라고 다각도로 강조하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허물면 “연간” 근로시간이 줄어들 것이란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입증 책임은 연구회와 정부에 있다.

문제는 주 52시간제를 허물 경우 과거와 같은 초장시간 근로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을 부여”하는 방안을 함께 권고했는데, 이것과 주1회 휴일을 주는 주휴제도를 모두 고려할 때 최대 주 69시간 근로가 가능해진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이 기사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반박문을 통해 “주 69시간의 연장근로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것으로 현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월평균 연장근로가 52시간을 초과하는 사업장은 1.4%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권고안에 따르면 특정 주에 집중근로를 할 경우 나머지 주는 연장근로를 줄이거나 쓸 수 없다”며, “특정 주 최대 근로만을 언급함으로써 연장근로 한도 내에서 노사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권고안의 내용을 왜곡”한다고 했다.

이 반박에는, 연장근로시간을 분기나 연간 단위로 할 경우 집중근로를 수주일에서 수개월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 또,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극단적 상황”에 해당하는 초장시간 연장근로가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찾아볼 수 없다. 2010년대 중반까지 게임업계에서 만연하던 “크런치 모드”라는 대단히 극단적인 초장시간 근로행태는 시사상식사전에도 등재된 바 있다. 주 52시간제를 허물 경우, 크런치 모드가 수개월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권고안은 이에 대해서도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긴 했다. 단위를 분기나 연간으로 할 때는 월간에 비해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을 일정비율(월간에 비해 분기는 90%로, 반기는 80%로, 연간은 70%로) 줄인다는 것이다. 이 또한, 근로시간 전체가 아니라 오직 연장근로만을 비율에 따라 줄인다는 문제점이 있다. 현장에서 법규정을 철저히 지키더라도, 연간 근로시간이 줄어들긴 할지 계산이 잘 서지 않는다.

또한, 장시간 근로가 수주일에서 수개월까지 이어질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당장 올해 10월 SPC 계열사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를 두고도, 밤샘 근무와 연장근로를 배경으로 지목하는 언론보도를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 졸음운전에 따른 교통사고에서 운전기사의 장시간 근로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블랙기업”이나 “○○의 등대”와 같은 흉흉한 단어가 떠도는 모습을 또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게 대체 누구를 위한 “노동개혁”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