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허물기…‘안전장치’는 재계가 반대

프린트

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주 52시간 허물기…‘안전장치’는 재계가 반대 정부 “상반기 입법 추진”…노사 반발에 논란 확산

기사입력2022-12-17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주 52시간제를 허물고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간이나 연간 등으로 확대할 경우 장시간 연속근로의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역시 인지하고 있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를 허무는 근로시간 개편안의 입법을 내년 상반기 중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안전장치에 대해서는 재계가 반대 입장을 밝힌 가운데, 노사 양측의 반발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1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위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연구회 권고안에 대해 “임금과 근로시간 개혁과제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에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영·경제·법학·의학·사회복지 분야 교수들로 구성된 연구회는, 지난 12일 발표한 권고문에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행 1주 이외에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노사의 선택 재량을 넓힐 것”을 권고했다. “산업·업무의 특수성과 근로자 선호의 다양성을 반영해 일하는 방식을 선택함에 있어 노사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라고 목적을 밝혔다.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는 등 근로자 건강권 보호방안을 마련할 것도 권고했다. 여기에 주 1회 유급휴일을 제공하는 주휴제도를 합치면, 1주에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정식 장관은 간담회에서 “권고문에 담긴 과제가 장시간 근로와 임금 저하를 일으킨다는 우려도 있다”면서도, “근로시간 단축, 건강권 보호, 노동의 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개혁과제들이 균형감 있게 제안됐다”고 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근로시간 기록·관리 방안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같은 안전장치에 대해서도 재계가 반대하고 나섰다는데 있다. 노동계가 장시간 근로 확대 등을 우려하며 권고안 전반을 반대하는 가운데, 정부가 마련한 안전장치에 대해 재계의 반대가 집중되면서 입법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제…반대 직면=대표적으로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제가 반대에 직면했다.

연구회의 좌장을 맡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연구회는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뿐만 아니라, 과도한 집중 근로를 방지하고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방안도 함께 제안했다”면서, 첫 번째로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제를 꼽았다. 정부 역시 주 52시간 허물기가 근로시간 연장이 아니라는 취지의 해명에서 이 제도를 거듭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상의는 권고안에 대한 입장에서 “근로시간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 도입을 권고한 것은 근로시간의 자율적 선택권 부여라는 개혁취지가 반감될까 우려된다”고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또, “향후 제도개선에 있어 특별건강검진, 연속휴가 보장, 의무휴일 등 다양한 보호방안 중 노사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제가 재계의 반대를 넘지 못한다면, 주 69시간이라는 상한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근로시간 총량이 동일하다 해도, 장시간 근로의 밀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노동계에서는 “근로일 간” 휴식제라는 안전장치도 헐겁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24시간 내 11시간 휴식제가 아니라서 장시간 노동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부담”…연장근로시간 축소 쉽지 않다=주 52시간제를 허물고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간이나 연간 등으로 확대할 경우 장시간 연속근로의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연구회 역시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을 비례적으로 감축할 것”을 권고하면서, “관리단위가 길어짐에 따라 초래될 수 있는 장시간 연속근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라고 이유를 들었다.

따라서 연장근로시간 관리를 분기 단위로 하면 월 단위의 90%, 반기 단위는 80%, 연 단위는 70%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을 권고했다. 총 근로시간이 아니라 “연장근로시간의 총량”만을 감축한다.

하지만 전경련은 권고안에 대한 입장문에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분기 단위 이상으로 설정할 경우 월 단위 대비 90~70%로 감축하도록 한 점,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에서 연장근로시간을 저축하는 경우 현행 가산수당보다 높은 수준을 적립토록 한 점”에 대해, “기업들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근로시간 유연화의 취지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결국 주 52시간 허물기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근거로 연구회가 내놓은 안전장치의 핵심이 재계의 반대에 직면한 것이다. 게다가 원안대로 입법되더라도, 연장근로시간을 반기나 연간으로 관리할때 수주일 또는 수개월간 집중근로가 가능해진다는 점은 여전한 문제다.

한국노총은 입장문에서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체계가 고착화된 현실, 낮은 조직률(14.2%)로 대부분 사업장에 노조도 없는 현실, 사용자의 업무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현실에서 말뿐인 노동시간 자율선택권 확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집중적 장시간노동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