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아니면 부모 노릇 하기도 힘든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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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권력자 아니면 부모 노릇 하기도 힘든 세상인가 미래세대 안전과 미래를 위해 법의 공정함과 지엄함이 절실하다

기사입력2023-03-03 17:00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자 아들의 학교폭력 사태를 보면서, 고등학교 학생을 둔 부모로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만에 하나라도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언어폭력과 왕따를 당한다면, 가해 학생이 권력자의 자식이라면, 나는 내 아이를 지켜내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법에 호소해서라도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아들의 잘못을 부모의 권력으로 감추고 힘없는 부모는 피해 학생과 더불어 또 다시 피해자가 돼야 하는 세상, 돈도 권력도 없는 부모는 이런 세상이 무섭다.

지난 2007년 아들이 술집에서 종업원들과 시비가 붙자, 그룹회장인 아버지가 경호원 용역업체 직원까지 동원해서 종업원들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당사자였던 한화 김승연 회장은 사회적 지탄으로 구속이 되기도 했다. 15년이 지난 오늘, 아들을 대신해 권력을 휘둘러 앙갚음을 하고 잘못을 덮으려는 권력자들의 일탈은 여전하다. 경호원 용역업체까지 동원해 아들과 시비를 벌인 종업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한화 김승연 회장,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아들의 잘못을 덮은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자, 법의 정의는 멀고 권력의 횡포는 거리낌이 없다.

권력의 일탈을 감시하고 처벌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과 정치마저도 이들과 한통속이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돈 없고 힘없고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디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가 자괴감마저 든다. 2007년 술집 종업원 폭행사건으로 구속됐던 김승연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풀러났다. 당시 법원은 그에게 아버지로서 부정이 앞선 나머지 사건을 저지르게 됐다며, 선처 이유를 설명했다. 부정을 내세워 폭행에 면죄부를 준 15년 전의 사법부처럼 정치권은 드러난 정순신 낙마자의 일탈에는 이렇다 할 비판조차 찾아볼 수 없다.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철회한 윤석열 대통령은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주문했다. 번지수가 틀렸다. 학교폭력 근절대책이 필요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장에 해야 할 일은 잘못된 인선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와, 학교폭력에 대해 검사인 아버지 권력이 막지 않았는가를 조사·수사하는게 먼저다. 또 권력을 이용한 부당한 개입이 드러난다면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국가 고위직 인선검증 책임이 있는 법무부장관 이하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정순신 낙마자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 의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다 또 과거 사법부처럼 부정 때문에 저질러진 실수 정도로 무마하려는 것 아닐까 의심마저 든다.

과거 조국 전 장관 딸의 여러 의혹을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인 정경심 교수의 수사와 처벌이 공정과 정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강변했던 윤석열 정부,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의 낙마로 모든 게 해결된 게 아니다. 조국 전 장관 딸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겠다던 정부라면, 정순신과 아들 때문에 고통받은 직접 피해자들의 고통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동급생에게 숱한 폭력을 행사한 아이가 부모의 권력으로 잘못을 감추고 일류 대학으로 진학하고 피해자는 대학 진학조차 포기하는 사회, 법의 정의나 공정의 시대 이념과는 양립될 나쁜 사회악습이다.

정순신 아들은 약자의 아들들을 폭행했고, 정순신 낙마자는 권력의 힘으로 약자 부모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윤석열 정부, 잘못된 인선에 사과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또 정순신 낙마자의 패행을 제대로 밝혀 법의 정의와 공정의 다짐을 증명해야 한다. 권력자가 아니면 부모 노릇 하기도 힘든 세상, 내 아이의 안전과 미래는 어디에 의탁해야 하는지 답답하고 참담한 나날이다. 법의 공정함과 지엄함이 절실하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