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세상’ 되지 않도록 어딜 향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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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무심한 세상’ 되지 않도록 어딜 향해야 하는가 플랑드르 농민화가 피터 브뤼헬의 ‘이카루스의 추락’

기사입력2023-05-14 00:00

북유럽의 저지대 나라들은 아이러니합니다. 땅이 물보다 낮아서 밀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쓸모없는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면 절망적이지만, 풍차를 돌려 동력을 만들고 수로가 뱃길이 되어 교통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만큼 희망의 땅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1400년대에 수로가 곧 무역길이 되어 전성기를 맞이한 이 지역에서 얀 반 에이크는 플랑드르 미술시대를 열었습니다.

◇종교개혁 불똥이 튄 플랑드르=그러나 얀 반 에이크같이 위대한 화가의 자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플랑드르 지역이 부르고뉴 공국령이 되었기에 벨기에의 브뤼헤와 브뤼셀 지역이 발전할 수 있었지만, 1494년 합스부르크 가문에 귀속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비교적 이 지역에 호의적이었던 초반과 달리 합스부르크가문의 스페인 공국이 통치권을 넘겨 받으면서 정치적인 갈등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1517년 일어난 종교개혁의 불똥이 이 조용한 나라에 튀어버린 꼴이었습니다. 플랑드르 지역의 남쪽(지금의 벨기에 지역)과 북쪽(지금의 네덜란드 지역)은 종교적인 자유와 억압 사이에서 이 시기부터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북부지역은 개신교의 교리를 자유롭게 받아들였으나, 카톨릭 국교를 가진 스페인과 가까운 남부지역은 스페인의 종교적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촉발한 16세기 종교개혁은 인간이 죽어 누릴 수 있는 구원은 오직 신의 권한이니, 우리는 현실에 더 충실히 살아가자는 생각을 담고 있었기에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사후세계에 대한 막강한 보장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카톨릭 교회는 사람들에게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한 이 생각을 지우기 위해 스페인의 군대를 이 지역으로 보내 감시의 칼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피터 브뤼헬 ‘이카루스의 추락’, 1560년,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

◇안트베르펜의 화가, 브뤼헬=이 무렵, 예술가들은 혼란한 현실에서 내 편과 남의 편을 결정하지 못하고, 히에로니무스 보쉬처럼 현실 도피적 세계로 빠져 들거나 닥치고 조용히 생명없는 종교화 제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인지 벨기에 지역인지조차 알 수 없는 브뤼헬 동네에서 태어난 피터 브뤼헬은 예술의 중심지인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화가의 길에 몰두했습니다.

농민화가라 불리는 피터 브뤼헬(Pieter Brugel)은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서 가장 번영했던 도시 안트베르펜에서 판화와 그림을 배웠습니다. 스승의 딸과 결혼하게 될 만큼 신임을 얻고 있었고, 드물게 얻을 수 있는 이탈리아 미술여행의 기회도 거머쥐었습니다. 브뤼헬의 아들들과 손자까지 유명 화가가 되면서 브뤼헬 가문을 뼈대있는 화가 집안으로 성장시킨 성공한 화가입니다.

그러나 피터 브뤼헬의 이러한 화려한 이력과 달리 소박한 농민을 모델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정치적인 혼란기에 버려진 시골의 농민들을 애정어린 시선에 담아 소박한 생활에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는 그림들은 따뜻한 정서와 현실의 삶에 대한 냉소적인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화가의 초기 작품 중 유명한 ‘이카루스의 추락’은 벨기에 왕립미술관 브뤼헬의 방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나무패널에 그려진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합니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왕은 무엇이든 잘 만드는 명장 다이달로스를 총애합니다. 그러나 그는 괴물 미노타우로스 때문에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미궁에 갇히게 되죠. 솜씨 좋은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루스와 탈출하는데 한가지 경고를 날립니다.

밀납으로 붙인 날개이기 때문에 태양 가까이 절대 날지 말라고 말이죠. 이카루스는 하늘을 훨훨 날며 새처럼 자유로워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더 높이 날아오르려 태양을 향해 날개짓을 하다가 깃털의 밀납이 녹아 추락합니다.

헛웃음을 칠만큼 작고 초라한 이카루스의 추락 장면 부분 확대.

◇보이지 않는 이카루스의 추락=피터 브뤼헬이 그린 ‘이카루스의 추락’은 언뜻 보면 그림속에서 이카루스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한가하게 소를 몰고 밭을 가는 농부가 제일 눈에 띕니다. 먼 하늘을 무심히 쳐다보는 양치는 목동과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무역선들이 그려져 있죠. 대체 이카루스는 어디 있는가. 그림 오른쪽 아래 고개를 숙이고 낚시에 몰두하고 있는 남자 앞에 물에 거꾸로 빠져 버둥거리는 다리가 보입니다. 펄럭거리는 새의 깃털이 물가에 흩어집니다. ‘에게 이게 이카루스야?’ 하고 헛웃음을 칠만큼 작고 초라한 이카루스의 추락 장면.

브뤼헬은 왜 이렇게 이상한 구도로 그림을 그렸을까요? 이런 구도가 주는 브뤼헬의 속내는 사람들의 무심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카루스는 자신을 과신하는 어리석음으로 추락하는 운명에 쳐해집니다. 그리스 신화의 이 주제만으로도 피터 브뤼헬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카루스의 추락이 주는 흔한 메시지를 넘어, 누군가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운명이 닥친다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숨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카루스가 추락할 때 살려달라 소리치고 발버둥거리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은 그림 속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주목을 끌지 못합니다. 밭을 가는 농부는 오늘도 변함없이 제 밭을 가는 일에만 열중하고, 양치는 목동은 오늘도 변함없는 평화에 정신이 멍해져 살아갑니다. 심지어 코 앞에서 남자가 추락하는데도 낚시꾼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낚시에 열중이죠.

피터 브뤼헬은 남 일에는 상관도 하지 않고 나의 일상에만 몰두하는 인간의 무심함, 보이는 세상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누군가의 발버둥과 고통이 비명지르고 있다는 풍자가 아닐까 합니다.

벨기에는 맥주와 초콜릿, 와플만 먹으러 오는 듯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면, 인생사의 축소판처럼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그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내 삶이 추락하지 않도록 과용을 부리지 않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기도 해야 하지만 무심한 세상이 되지 않도록 나의 눈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도 생각하며, 조용히 미술관을 빠져 나옵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 ‘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