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기계음과 날카로운 모터소리 가득한 ㈜삼원이앤비 공장 한켠, 식당을 겸한 직원공간에 한 무리의 직원들이 둘러앉아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작업 중 개선사항이 있거나 문제점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여는 작업반장 회의라고 이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경영승계와 산업혁신운동을 시작하며 생긴 소통문화다. 국내외 대형 시설과 기업에 산업용 송풍기를 납품하고 있는 삼원이앤비는 창업자 세대에서 2세대로의 경영승계를 성공적으로 안착한 기업이다. 발전소, 선박, 공장 그리고 대형건물 어느 곳이든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고 공기질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필요한 송풍기를 생산하고 있다.
기술로 인정받은 산업용 송풍기 분야 선도기업
1978년 서울 영등포에서 삼원풍력으로 처음 설립한 삼원이앤비는 1993년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에 송풍기 제조공장을 신축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사명을 현재의 삼원이앤비로 바꾸고 산업용 송풍기 생산에 집중했다. 삼원이앤비는 삼성·대우·현대·SK 등 건설사를 비롯해 엘지필립스·삼성전자·현대하이닉스 등 반도체 공장, 포스코·현대제철 등 제철소에 송풍기를 납품하고 있다. 또 전국의 대형건물과 지하철, 터널에도 송풍기를 공급하고 있다. 서울지하철 6·7·8호선과 인천, 대구, 대전, 부산 등 광역시 지하철에 삼원이앤비의 송풍기가 설치돼 있다. 전국 도로에 있는 터널 50%에는 삼원이앤비 송풍기가 가동되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아 수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는 10년 이상 거래를 하고 있으며 2013년 미쓰비시 중공업으로부터 협력사로서 특별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일본의 신일본제철, 구리모토건설, 영국의 햄워디 컨버스쳔 등도 주요 거래처다. 2014년 삼원이앤비의 영업실적은 235억원. 그중 20%는 해외 수주실적이다.
경영승계와 맞물려 산업혁신운동…절묘한 ‘타이밍’
젊음을 바쳐 일군 회사이기에 창업자인 권혁진 회장에게 삼원이앤비는 자식과 같았다. 권 회장은 기업의 내실과 외양을 키웠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장남에게 가업으로 물려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경영승계는 사실 제게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제약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죠. 당시에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송풍기 분야에 전문지식도 없이 회사경영을 맡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젊은 대표를 직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죠”
경영승계와 산업혁신운동을 시작하며 생긴 소통문화. 작업 중 개선사항이 있거나 문제점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작업반장 회의를 연다. ©중기이코노미
권민석 대표는 2012년 삼원이앤비로 출근하라는 부친의 권유를 받는다. 고민 끝에 권 대표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경기도 시흥의 공장과 서울 영업소를 오가며 현장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중 2014년 협력사인 포스코로부터 산업혁신운동 참여를 제의받으며 경영승계에 속도를 내게 됐다. 산업혁신운동은 대기업과 1차 협력사 중심의 동반성장을 2~3차 협력사로 확대해 중소기업의 생산혁신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때마침 경영과 생산현장 곳곳에서 혁신이 필요했다. 2014년 산업혁신운동과 함께 한 경영승계는 권혁진 회장이 판단한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산업혁신운동은 경영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권 회장은 권 대표가 공장의 혁신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공장을 이끌어가길 바랐다. 생산현장혁신과 경영혁신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현장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 구석구석 손을 대보고 알아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권 대표는 화장실·샤워실·탈의실·식당 등 직원의 회사생활과 밀접한 부분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93년 시화공단에 공장을 설립한 이후 노후하고 지저분해 시설보수가 필요한 곳은 새롭게 고치고 청소가 필요한 곳은 임직원들과 함께 직접 청소했다.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1993년 이곳에 공장이 지어진 이후 처음으로 대수술을 시작한 것이죠. 제가 실천으로 보여줘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강요만 해서는 기존의 관습과 고정관념을 바꿀 수 없었죠”
권민석 대표는 자신의 진심을 현장에서 알아줄 때까지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기이코노미
분진과 폐기물이 하루종일 발생하는 생산현장이다. 평균 근속년수가 15년이 될 만큼 숙련자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안 좋은 습관들도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며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쓰레기도 아무 곳에나 버리곤 했다. 산업혁신운동을 시작하며 2014년 하반기에만 4회에 걸친 대대적인 대청소가 이뤄졌다. 현장직원들에게 청소를 지시만 한 것이 아니라 대표이사를 비롯 모든 임직원이 나섰다. 20년 넘게 묵은 먼지들과 기름때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고농도의 세제를 풀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구석구석 닦아냈다.
35년 세월 ‘묵은 때’ 벗겨내고 현장 속에서 답을 찾다
창업부터 이 회사에 몸담아 온 최상훈 전무는 “당시 바닥을 닦는 세제가 독해 권 대표 무릎이 다 까질 정도였다. 청소 도중 물로 좀 씻고 하자고 해도 ‘이 정도는 괜찮다’며 묵묵히 청소하던 권 대표의 솔선수범이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예전에는 거래처 사람들이나 완제품 검수를 위해 외부사람들이 오면 공장 쪽은 보여주고 싶지 않을 만큼 환경이 안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랑스럽게 공장부터 보여주고 있다”며 “일본 거래처에서도 ‘이렇게 정돈된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라면 믿을만 하다’고 말한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달라진 공장 환경에 직원들이 가장 만족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일단 환경이 깨끗해지고 정돈되니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쁜 습관들도 버렸다. 최 전무에 따르면, 처음에는 ‘젊은 사장이 얼마 못가 지쳐 그만둘 것’이라고 했던 현장직원들도 권 대표를 따라 청소를 하고 깨끗해진 현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선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작업공간과 이동통로의 구획을 정했다. ©중기이코노미
“‘굴러 들어온 돌’이지만 회사를 더 굳건하게 하는 주춧돌이 되고자 합니다. 경영승계를 한 2세 경영자들이 처음 회사에 와서는 이것저것 바꾸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직원들과 마찰이 생기고 오해도 생기게 마련이죠. 하지만 제 진심을 현장에서 알아줄 때까지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서로 나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35년 세월동안 생길 수 밖에 없었던 묵은 때를 벗겨낸 권 대표. 이제 주어진 숙제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것이다.
“송풍기 시장은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국내시장만 바라보고 사업을 하기에는 위험이 큽니다. 그래서 2002년에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해, 앞선 기술력을 갖추고 해외시장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2~3년 전부터 이란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곧 이란시장에 삼원이앤비 송풍기를 수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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