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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다발성 경화증은 ‘업무상 질병’이다”

대법원, ‘상당인과관계’ 입증책임 완화해 산재 첫 인정 

기사입력2017-10-10 06:00
이동철 객원 기자 (leeseyha@inochong.org) 다른기사보기
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산업재해보상보험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다. 다만 산재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사고발생 또는 질병 그 자체가 해당 근로자의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업무상 사유에 따른 사고 또는 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가 아픈 것이, 내가 하는 일 때문이라는 것을 근로자가 입증해야 한다.

 

입증책임과 관련 업무상 사고의 경우에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예컨대 작업도중 발생한 추락사고의 경우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 입증이 필요치 않고, 중량물을 운반하다 허리가 삐끗한 경우에도 퇴행성질환 등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입증책임에 대한 근로자의 부담은 크지 않다.

 

문제는 업무상 질병인데, 자신의 질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근로자 스스로 찾아내서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작업과정에서 사용하거나 노출되는 유해물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근로자가 자신의 질병과 유해물질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외 반도체생산과 같은 첨단사업현장 등에서는 새로운 원료 또는 유해화학물질과 작업공정 그 자체가 영업비밀로 보호되기도 한다.

 

이 경우 근로자의 질병과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요소 등 관련정보를 사업주가 제공하지 않으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는 불가능하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질병판정을 받은 근로자들과 삼성전자 사이에 산재인정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고 장기화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 다발성 경화증 산재요양 불승인처분 취소청구 사건

 

최근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근로자가 신경계질환인 다발성 경화증발병후 산재를 신청한 사건에서 상당인과관계입증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청구기각한 원심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환송조치했다. 대법원은 지난 829다발성 경화증 산재요양 불승인처분 취소청구사건에서 입증책임완화 법리를 인용, “원고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발병·악화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상당하다며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대법원 2017.8.29. 선고, 20153867).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을 통해 유해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직업병의 경우,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근로자의 입증책임을 덜어주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입증의 정도수준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증명될 필요는 없고, 산업재해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의 유해요인 유무,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해,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른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으면 족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증책임완화 법리다(대법원 2004. 4.9. 선고, 200312530. 대법원 2008.5.15. 선고, 20083821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원고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중인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천안 LCD공장에서 모듈공정중 LCD패널 검사작업을 담당했는데, 재직중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다. 원고는 증상이 악화돼 20072월 퇴사했고, 20089월경 대학병원에서 다발성 경화증 확진판정을 받았다.

 

20107월 원고는 자신의 질병인 다발성 경화증이 업무상 질병이라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승인을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산재신청을 불허했다(요양불승인 처분).

 

최근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근로자가 신경계질환인 ‘다발성 경화증’ 발병후 산재를 신청한 사건과 관련, 첨단산업분야에서 발생하는 직업병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 여부에 있어서 법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원고가 검사작업을 하면서 이소프로필알코올이라는 유해화학물질을 13~4회 가량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소프로필알코올이 원고에게 직접 미치는 노출 정도나, 그 밖에 인접한 세부공정에서 발생해 원고에게 전파·확산되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정도를 측정·조사하지는 않았다.

 

반도체 조립공정에서는 원고가 담당하는 업무 외에도 부품조립 과정에서 납땜이 이뤄지고, 조립후 LCD패널을 고온에서 가열해 성능을 검사하는 에이징(ageing) 공정에서 화학물질이 열분해해 부산물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해당 공정이 원고의 작업 바로 앞 공정이었던 만큼 이 과정에서 위험에 노출되었을 수 있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처분에 불복, 원고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소송과정에서 원고가 직접 자신이 작업과정에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고용노동부에 삼성전자 천안·아산공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진단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와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했다.

 

고용노동부가 원심(1) 법원에 제출한 산업안전·보건진단 결과 보고서에는 공정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의 현황 및 개선방안 작업환경측정 현황 및 개선방안, 안전검사 실시 현황 누출시 물질배출처리 시스템 현황 보호구 지급 현황과 개선방안 근로자 건강관리 현황과 개선방안 등에 관한 정보가 빠져 있었다. ‘영업비밀에 해당하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가 이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원고는 자신의 질병을 초래한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얼마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는지 입증이 곤란해졌다. 결국 원심은 원고가 주장하는 작업환경상 개별 위험요인들의 위험 노출 정도가 높지 않아, 원고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발병·악화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원심판단이) 상당인과관계 입증책임 완화 법리를 오인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상당인과관계 판단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원심판단이 상당인과관계 입증책임완화 법리를 오인했다고 지적했다.

 

작업환경상 개별 위험요인들의 위험 노출 정도만을 고려해 상당인관관계를 부정한 하급심 판단에 대해 대법원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이외에도 대법원은 원고가 입사 전 별다른 건강상의 이상이 없었으며, 다발성 경화증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이 없는 상태에서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상당기간 근무하던 도중 우리나라 평균 발병연령(38)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만 21세에 해당 질병이 발병한 점 다발성 경화증의 직접 발병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유기용제 노출, 주야간 교대근무, 업무상 스트레스, 햇빛노출 부족에 따른 비타민D 결핍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원고의 경우 약 43개월의 근무기간 중 계속 주야간 교대근무로 햇빛노출이 부족해 비타민 결핍이 예상되며, 컨베이어벨트로 움직이는 LCD패널을 시간당 70~80개씩 검사해야 하는 높은 노동 강도의 작업으로 과로와 업무상 스트레스가 컸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원고의 질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했다.

 

원심의 심리가 미진했다는 점도 비판했는데, 대법원은 원심이 원고가 근무하던 사업장과 전체 LCD사업장이나 삼성전자 전체 사업장에서 다발성 경화증 발병 건수, 동종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 대비 다발성 경화증 발병 비율, 발병 근로자의 연령대 등에 관해서도 심리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했다.

 

첨단산업분야에서 발생하는 직업병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 여부에 있어서 법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의가 있다. 이번 판결로 법원이나 근로복지공단이 행정실무나 재판실무에서 희귀질환의 경우,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전향적으로 인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한 근로자의 직업병에 대해 하급심에서는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완화해 산재를 인정한 사례는 있었지만, 대법원에 상고 제기된 사건들 중에서는 이번 판결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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