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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바닥이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미술관

미술관으로 들어온 재난 ㊦바닥이 갈라진 콘크리트 미술관 

기사입력2018-01-06 11:57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우르스 피셔의 당신이 공사장을 연상시키는 인공적 재난을 전시공간에서 구현했다면, 콜롬비아의 여성 작가 도리스 살세도는 자연적 재난을 미술관으로 끌어왔다.

 

살세도는 2007년 영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터빈홀(Turbin Hall)에 대지진의 흔적을 전시했다. 터빈홀 입구에서 미세하게 시작하는 콘크리트 전시장 바닥의 작은 금은 점차 깊고 넓어지며 지그재그로 축구장보다도 더 긴 터빈홀을 갈라놓았다. 마치 진짜 지진이 일어나서 바닥이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균열 작업은 작가의 계획 아래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설치작업이다.

 

이 작업의 제목은 쉽볼렛(Shibboleth)’으로, 구약성서의 사사기에 나오는 단어다.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한 단어로, 성경에 의하면, 에브라임 사람들이 sh(ʃ)의 발음을 다르게 하는 특성을 길르앗 사람들이 이용해 에브라임인을 찾아내 죽였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 때문에 쉽볼렛은 외부인을 구별해낸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살세도의 쉽볼렛은 단어의 의미를 비춰보면, 입구에서 미세하게 갈라지던 것이 점차 명확하게 갈라지듯이, 처음에는 구별되지 않았던 것이 점차 명확히 구별되는 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살세도는 이러한 균열이 근대화 과정에서 제1세계가 제3세계에 가했던 무시와 말살, 차별 등 근대성의 감춰진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틈은 제1세계와 제3세계와의 간극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작품이 설치된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저무는 대영제국 시대의 유산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더욱 큰 울림이 있다.

 

도리스 살세도, ‘쉽볼렛(Shibboleth)’, 2007, 테이트모던 미술관 터빈홀, 영국<출처=위키피디아>

 

하지만 이런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를 생각지 않고도, 전시 장면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무려 167m의 길이가 되는 거대한 금을 보고 놀라지 않을 관람객이 있을까. 중층적인 사유를 통해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간극을 떠올리기 이전에 아마도 관람객들은 마치 재난의 현장을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거대한 틈을 따라 관객들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경계를 뛰어넘기도 하고, 어두운 틈 사이에 손을 넣어 균열을 매만졌다. 관람객의 부상을 우려해서 미술관 측은 경고판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첫 한 달 동안 15명이 다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관람객에게 전시장에 들어온 재난은 유희의 대상이었을까? 재난을 재현한 미술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분명 우르스 피셔의 당신, 도리스 살세도의 쉽볼렛도 재난을 유희하기 위해서 작품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품이 주는 생경함과 당혹스러움, 충격을 통해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일깨우고, 말로 표현 불가능한 거대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주 지진과 포항 지진을 겪으면서 이러한 작업을 다른 의미로 바라보게 된다. 두 작업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며, 자연재해의 피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포항 지진으로 피해를 본 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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