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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Me Too…“이제 홍매화 개화소식을 들었을 뿐”

권력에 의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농락당하는 것 내버려둬선 안돼 

기사입력2018-03-10 08:00
김준모 객원 기자 (gubtree@hanmail.net) 다른기사보기
이제 봄입니다. 아랫녘에서는 벌써 홍매화가 피었다고 하더군요. 이제 곧 꽃을 따라 봄소식도 북상하겠지요. 근처 공원의 산수유나무가 쌀알 같은 꽃망울을 노란빛으로 터뜨리면, 길가의 개나리도 하늘하늘 춤추며 노랗게 물결치겠죠. 담을 넘은 나뭇가지에서 하얀 목련꽃의 탐스러운 자태와 뒷산에 흐드러진 진달래의 고운 분홍빛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몇 해 전 이른 봄, 초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이었을 작은 딸이 동네 산에서 함께 산책을 하다, 진달래 꽃무더기를 보고는 “우리 아파트에 있는 건 하나도 안 폈는데 산에 오니 벌써 많이 피었다”며 신기해하더군요. 아이가 말한 아파트 화단에 심겨진 꽃나무는 철쭉이었습니다. 진달래와 철쭉의 꽃모양이 비슷하니 착각한 것일 테지요. 저는 아이에게 잎이 나기 전에 피는 건 진달래이고, 잎이 달린 다음에 피는 건 철쭉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어디 진달래뿐인가요.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모두 잎보다 먼저 피어나지요. 메마른 가지에 먼저 피어난 꽃들은 잎이 나기 시작하면 꽃잎을 떨구고 맙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따뜻한 봄이 올 텐데, 찬바람이 변덕스럽게 불어대는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참 성질 급한 꽃들인가 봅니다. 급한 성질에 일찍 피어서 마르고 차가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채 피기도 전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그렇게 이른 봄에 꽃이 피려면 겨울이 오기 전에 이미 꽃눈이 여물었겠죠. 다른 꽃들이 활짝 피어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트리는 동안 꽃도 피우지 못하고 뒤늦게 여문 꽃눈은, 그대로 가지에 매달린 채 겨울을 이겨내야 했을 겁니다. 열매도 잎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털어내어도 견디기 힘든 겨울 내내 꽁꽁 싸맨 꽃눈을 지키느라 얼마나 애썼을까요? 긴긴 겨울을 이겨내자마자 꽃을 피우는 매화와 산수유,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꽃들은 너무 일찍 피는 꽃들이 아닙니다. 너무 늦게 피는 꽃들이지요.

이른 봄에 너무 일찍, 아니 너무 늦게 피어나는 꽃들을 떠올리며 미투(#Me Too)운동을 생각합니다. 검찰 내 성폭력 피해자의 용감한 폭로는 문단, 연극계, 영화계로 퍼져나가 정치권에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묵은 악행이 드러난 곳들이 깨끗한 곳이라고 생각했거나 깨끗한 곳이어야 한다고 여겨지던 곳이고, 추악한 가해자로 지명된 인사들 중에는 고매한 인품으로 알려진 이들도 있어 사람들의 충격은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미투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뉴시스>

아직 시작이겠지요. 이제야 겨우 남녘에서 피기 시작했다는 홍매화의 개화소식을 들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드러난 곳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곳이어서 다른 곳들보다 먼저 고발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작 악행이 고질적으로 만연한 곳에서 반복되어온 추악한 폭력의 피해자들은 목소리를 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학교·기업·종교기관·사회단체 할 것 없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 권력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모두 고발에 나설 수 있을 때, 그리하여 교묘히 은폐되어온 고질적인 악행들이 만천하에 드러날 때 먼 남녘의 봄소식은 북상하여 온 산천에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이른 봄에 핀 꽃들은 봄이 온 것 같다가도 다시 겨울이 온 듯, 변덕스러운 꽃샘추위에 채 피지 못한 꽃잎을 날리며 떨어지기도 합니다. 안간힘을 다해 견뎌내 포근한 봄을 맞아도 돋아나는 잎에 밀려 꽃잎을 날립니다. 그렇게 매화와 산수유,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꽃들이 지고나면 철쭉과 라일락, 장미와 아카시아의 계절이 오겠지요.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니까요. 하지만 사회의 이치는 자연의 이치와는 다를 수 있으며 달라야 합니다.  

인간이 사회를 만들어 살면서, 소수의 지배계층이 권력을 독점하여 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회를 이어왔습니다. 인간은 오랜 시간동안 많은 노력을 하여 하늘이 내어 아무도 침해할 수 없다고 하는 인권을 권력의 지배로부터 되찾아왔습니다. 인권이 존중받고 평등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현대 민주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사회의 이치는 피면 피는 데로 지면 지는 데로 내버려두는 자연의 이치와는 달라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농락하는 행위는 현대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악행입니다. 더구나 그 악행이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면 사회는,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들은 악행을 자행하는 추악한 권력을 바꾸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 사회의 기능이며 사회 구성원인 사람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 노릇을 못하여 너무 늦게 미투운동이 꽃피게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먹고살기 힘들고 중요한 일들도 많은데, 미투운동이 다른 중요한 일들을 묻히게 한다고 걱정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경제도, 정치도, 예술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것들입니다. 권력에 의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농락당하는 것을 내버려두는 경제발전과 선진적인 정치, 풍성한 예술이란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권을 농락하는 경제와 정치, 예술이라면 차라리 발전하지 않고 퇴보하는 편이 낫습니다.

미투(Me Too)를 ‘나도 당했다’라고 풀어쓰기도 하지만, 저는 ‘나도 고발한다’라고 푸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미투운동에 나선 이들은, 당했던 이들로 머물지 않고 고발에 나선 이들이니까요. 그이들이 당하는 동안 우리들은 방관자였습니다. 아니, 방관을 하여 악행을 계속하게 도왔으니 조력자라고 할 만합니다. 이제 우리는 고발의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랜 인고 끝에 뒤늦게 핀 꽃들이 지지 않고, 계속 활짝 필 수 있도록 따뜻한 햇살이 되고 촉촉한 빗방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사는 사회는 먼저 핀 꽃들과 이어서 피는 꽃들이 더불어 어우러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꽃, 철쭉, 라일락, 장미, 아카시아…. 온갖 꽃들이 함께 어울려 백화만발한 세상이 우리가 만들어야할 사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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