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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좁은 골목 손바닥만한 공간이 잠시 시끄럽던 날

Life is pain.ting…레지던시 풍경 #3.아무 것도 아닌 무엇 

기사입력2018-03-19 15:08

텍스트나 영화 혹은 다큐를 통해서 바라본 190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문화예술 분야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언제나 나를 압도시키곤 했다. 시인과 철학가, 뮤지션들과 진취적이던 컬렉터, 그리고 피부가 그대로 느껴지던 화가들의 작품과 동일한 곡선을 그리던 삶의 궤적들은 다소 러프하고, 끈적거렸다.

 

관계를 통해 구원될 수 없는 본질적 고독이야 그 시절에도 같았겠지만, 지금과는 결이 다른 고독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창작이 아닌 제작이 되는 것을 경계했고, 어제와 같은 오늘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부터 고통을 느꼈고 인식의 확장을 위해 처절했다. 컬렉터는 작가의 작업실로 걸어 들어왔고 동료들의 크리틱은 뜨거웠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에 그리울 것도, 그리울 일도 없겠으나 나는 짙은 땀냄새가 그득할 것 같은 그 거북한 시절이 이상하게 그리웠다.

 

사진으로 혹은 영상으로 담겨진 형상은 언제나 작품을 매끈하게 거세된 상태로 보여준다. 차곡차곡 정리된 포트폴리오는 USB로 담겨져 재단이나 기관에 전달되곤 했다. 작가들은 거세된 작업의 형상 앞에서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작업을 어필해야 하고, 오늘 아침 유난히 차가 막혔던 건지 혹은 어제 고민하다 먹은 야식 때문에 속이 더부룩한건지, 창백한 심사위원들은 심심한 와중에 애써 날카로웠다. 평론가들은 작가들의 작품을 이메일로 전달받고 장문의 알아듣지도 못하는 고급진단어들이 촘촘한 글을 써대는 일들이 빈번했고, 전시가 궁한 작가들은 작업실 밖으로 돌아 정작 작업실에 홀로 떨어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했고 경직되어 갔다.

 

이러한 것들에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다소 촌스러운 일이 돼버리고 말았다. ‘이게 다 비즈니스야. 이 땅에 작가가 뜬다는 게 작가가 작품이 좋아서 되는 거라고 생각해? 어느 정도 이상만 하면 작업은 다 거기서 거기야. 비즈니스가 예술을 만드는 거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잖아?’

 

그 말을 툭 내뱉은 수트에 배어 있는 향이 톰포드인지 크리드인지, 혹은 데오드란트인지.

 

그럼에도. 지난해 재즈 뮤지션 P로부터 연락받았을 당시에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미술관도 갤러리도 혹은 기획자나 어디 재단도 아닌 뮤지션이 작업 보고 연락드린다라는 말은 내게 효용이 없는 일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작업실 선곡(작업 중에 외부 소음을 차단시킬 요량으로 음악을 틀어 놓곤 하는 습관)에 유난히 시간을 쓰기 싫던 날이 있었고 오래전 왔던 P로부터의 메시지를 찾아 그의 음악을 찾아 들었고 나는 곧바로 그에게 연락을 했다. 연남동 어느 골목에 손바닥만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음악과 미술의 콜라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으므로 대개 작업 이야기만 내내 이어졌다.

 

이번 생에 크게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삶의 어떤 재미를 찾기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하농만 연습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그 외의 대부분의 것들에 조금씩 재미가 생긴다고.

 

기타리스트들의 공연은 연주자들이 풍기는 아우라만큼이나 훌륭했다. 그들의 몰입된 모습들과 악기에 자유롭기 위해 수 없는 날들을 짓무르며 연습을 거듭했을 손가락 끝에서 튕겨져 나오는 음악은 최근 나를 짓누르던 알 수 없는 피로를 말끔히 잊게 만들고 있었다.<사진=김윤아 작가>

 

늦은 저녁 짜장면을 시켜먹고 작업실로 돌아와 최근 다시 진행하고 있던 테이블 시리즈 작업을 진행하며 그날 밤은 뜬금없이 패티 김의 초우를 틀어놓았다.

 

다음번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기 전, 그 사이에 나는 지원했던 한 곳으로부터 합격소식을 받았고 다른 한 곳으로부터 1(서류)합격 소식을 받고 면접일정을 알려오는 메시지를 받았다. 지난번 같았으면 면접준비를 하느라 밤새 노트북을 열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거나 글을 만졌을 것이고, 사실 그래야만 했으나 나는 하루종일 의욕이 없었고 엿가락처럼 누워 다시 밤이 오고 멀건 아침이 밝아오는 걸 보며 스스로의 한심함에 몸서리 치곤 했다.

 

와중에 그가 작업실에서 공연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면접 이틀 전날이라 그 날에라도 무언가를 준비해야 마땅했으나, 작업실 한켠에 내 작업을 걸고 싶다는 조심스러운 제안에 그가 고른 작품을 차에 싣고서 2주만의 외출을 했다.

 

차 한 대만 일방으로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을 가진 좁은 골목에 들어서서 뒷좌석에 싣고 온 ‘Time circle’ 페인팅을 꺼내어 들고 작업실로 향했다. 도착한 작업실에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드릴이나 나사 하다못해 망치나 못도 없었다. 음악작업실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작업을 보고 크게 기뻐하는 그는 오늘 공연에 당장 작업을 걸고 싶어 했고, 골목의 작은 선술집 사장님과 부동산 업자분의 도움으로 콘크리트에 구멍을 뚫어 그림을 걸 수 있었다.(말이 이렇지 정말이지 성인 남자 세 분이 달라붙어 구멍을 뚫는 그 과정은 내 생에 처음 보는 진풍경이었다.)

 

9시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즈음 연주자 분들이 도착하고 사운드 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들여다보던 골목의 사람들과 공연소식을 알고 일부러 찾아오신 분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공연 관람료는 만원으로 각출된 수익은 전부 공연자에게 돌아간다. 물론, 공연자 입장에서도 거마비를 제하고 나면 그저 Zero인 셈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공간 운영자인 P 역시 작업실 공연은 Zero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기타리스트들의 공연은 연주자들이 풍기는 아우라만큼이나 훌륭했다. 그들의 몰입된 모습들과 악기에 자유롭기 위해 수 없는 날들을 짓무르며 연습을 거듭했을 손가락 끝에서 튕겨져 나오는 음악은 최근 나를 짓누르던 알 수 없는 피로를 말끔히 잊게 만들고 있었다. 작업실 한켠에 자리잡고 앉아 있자니 그림 거는 걸 도와주셨던 분들과 중간 중간 들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분들도 보였다.

 

2차 공연이 10시 남짓해서 시작할 즈음엔 작은 작업실은 서 있기도 부족할 만큼의 관람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잠깐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부동산 중개업자, 모 방송사 드라마 PD, 본인의 가게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연을 보러 앞치마를 둘러맨 채 서둘러 오셨던 선술집 사장님, 두 눈이 반짝이던 어느 노부부, 노트북이 들어 있을 배낭을 둘러맨 출판업자, 어느 재단의 대표와 그 외 많은 사람들.

 

그 모두가 그날, 그 시각, 그림과 음악과 예술을 그리고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면서 이런 건 처음이라며 꿈꾸는 듯한 특유의 행복한 표정으로 보는 사람마저 저절로 웃음이 나게 하던 빛나던 두 눈을 연신 깜빡이던 선술집 사장님까지. 이렇다 할 조명도 없이 작업을걸었고, 맛있는 음식도 없었다. 근사한 미술관이나 갤러리도 아니었고, 혹은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도 아닌 그저 좁은 골목에 자리한 정말이지 작은 작업실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배불러 했고 누구도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오래 오래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이날은 나의 도록에 실릴만한 전시도 아니다. 물론 그의 이력과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하농을 하루 여덟 시간 연습하며 즐거움을 찾아가던 한 재즈 뮤지션과 최근 오랫동안 준비한 전시가 엎어지고 또다른 공허함으로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던 작가가 만나 서울의 어느 좁은 골목 손바닥만한 공간이 잠시 시끄러웠던 아무 것도 아닌 날이다.

 

그날은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닌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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