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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핵심협약 비준 안되면…EU 對韓 무역제재

OECD 국가 중 ‘결사의자유’ 협약 미비준…韓·美 양국뿐㊤ 

기사입력2019-05-27 16:42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노사관계를 노동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결단이 나왔다. 정부는 노동계의 오랜 숙원 중 하나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로 결정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2일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비준 4개 핵심협약 중 3개 협약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991년 노태우 정부, 당시 ILO에 가입한 이래 한국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절차를 진행해왔다. 핵심협약이란 ILO 총 189개 협약 중 ‘결사의자유’, ‘강제노동금지’, ‘아동노동금지’, ‘차별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8개 협약을 말한다. 현재 ILO 187개 회원국 가운데 144개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이 핵심협약 전체를 비준·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ILO에 가입한지 28년째인 한국은 지금까지도, 8개 핵심협약 중 제87호·제98호(결사의자유), 제29호·제105호(강제노동금지) 등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번에 정부가 비준절차를 진행하겠다는 핵심협약은 제105호를 제외한 나머지 3개 협약이다. 제105호 협약은 노동자가 정치적 견해 표명 등을 이유로 제재를 받을 경우 강제노동을 금지한 협약이다. 정부가 이번 핵심협약 비준 결정에서 제105호 협약을 제외한 이유는, 분단상황에 따른 국가보안법 존재 등 한국의 형벌체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105호 협약도 반드시 비준·이행해야만 노동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물론 국회도 알아야한다.

ILO 등 국제기구와의 약속은 당사자가 국가인 만큼 협약비준을 위해서는, 먼저 당사국이 입법부터 수행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다. 그러나 지금 여야가 상호 비난하는 등 국정사안을 놓고 첨예하게 대치하는 현실에서 先입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정부가 비준과 입법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결정한 배경이다. 이에따라 정기국회 전후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싸고, 노사간·여야간 논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모쪼록 ILO 협약의 성공적인 비준을 위해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노사는 물론 정당 간 긴밀한 협력으로 무난히 처리되기를 희망한다.

ILO 창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에 적극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사안이 ‘노동존중’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어서다. 또 30·50(국민소득 3만달러이상·인구 5000만이상) 선진그룹에 가입한 한국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통해 노동선진국으로 진입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특히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성과를 내지 못하자, ‘노동존중’이란 당초 대통령 공약에 맞춰 정부 주도의 비준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간 정부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상호 양보와 타협을 모색해 왔지만, 민주노총의 불참 등으로 지난 20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도 종료됐다. 이제 정부가 중심이 돼 각계 의견을 수렴해 법안과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서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정이다.  

국내 정치현실 이외 국외상황 역시 ILO 핵심협약 비준을 향한 정부의 움직임을 가속화시켰다. 유럽연합(EU)은 ILO 핵심협약 미비준을 이유로 한국정부에 대해 ILO ‘분쟁해결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사상 최초로 이뤄진 이번 유럽연합의 결정으로, 한국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계획 및 일정 등을 유럽연합에 제출해야한다. 만약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 한국정부가 유럽연합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무역제재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한다. 최근 EU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는 중국을 상대로 반덤핑관세 부과기간을 연장했던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ILO 3개 핵심협약이 비준되면 한국의 노동조건이 어떻게 개선될 것인가. 우선 노동계의 숙원인 ‘결사의자유’ 협약은 노동자와 사용자 구분없이 자발적으로 단체의 설립과 가입, 자유로운 대표자 선출과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결사의자유 협약 전체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과 한국 두 나라 뿐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우리헌법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보장했지만, 현행 노동관계법은 노동조합의 설립과 가입의 자유 등 결사의자유를 제한했다. 정부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결사의자유를 제약하는데, 하나가 노동조합 설립시 사실상 허가제인 노조설립신고제를 운용한다. 다른 하나는 노조 가입대상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특정 노동자에 대해 헌법이 보장한 결사의자유를 제한한다.   

노조설립신고제는 노조를 설립할 때, 정부기관에 신고해야만 노조로서의 법적 자격을 부여하고 보호하겠다는 제도다.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하는 등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받는 신고제 자체가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함으로써 노조설립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또 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주체를 제한하기 위해 현행법은 노조를 설립할 수 없는 노동자를 설정해 규제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택배기사나 학습지 교사처럼, 기업에 고용돼 임금을 받는 노동자임에도 마치 자영업자처럼 취급받는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쉽게 말해 노동자면서 그것의 본질인 노동자성을 부정당하는 아주 이상한 ‘유체이탈식’ 악법이다. 

또한 지금의 노동관계법은 원칙적으로 해고자나 실업자는 노조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 자유로운 노조결성을 방해한다. 어디 이것뿐이랴! 심지어 공무원·교원·소방관인 노동자는 공공분야에 근무한다는 이유 하나로 노조활동이 제한적으로 허용되거나 금지된다. 이 모두가 ILO가 권고하는 결사의자유에 배치되는 악법으로, 그간 노동계의 지탄을 받아왔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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