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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술보호법, 기술만 보호하고 사람은 뒷전

“작업환경 유해성 정보를 알아야 직업병을 예방할 수 있다” 

기사입력2020-01-14 18:57

임지운 변호사는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이 시행될 경우 삼성의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에 관한 정부보고서 공개가 불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중기이코노미
 

“반도체 직업병 투쟁의 역사는 알권리 투쟁의 역사와 함께 계속됐다.”

 

14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신창현 국회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산업기술보호와 알권리’ 국회 토론회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활동가인 임지운 변호사는 이같이 말했다. 

 

안전보건진단·작업환경측정 보고서…영업비빌이라 공개 못한다

 

반올림은 지금까지 삼성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유해성을 입증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의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사업 결과 보고서’·‘안전보건 진단 결과 보고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 등을 활용했다. 

 

이상 세 종류의 보고서 모두 반올림이 정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비공개 결정 처분을 받은 보고서다. 또 정부의 비공개 결정 처분에 대해 반올림이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한 끝에 공개된 보고서다. 정보공개청구소송 과정에서 참고인이었던 삼성 측은 이들 보고서에 영업비밀이 담겼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에 반대했다. 이 입장이 받아들여져 일부 내용만 공개된 보고서도 있다. 

 

임지운 변호사는 개정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이 시행되는 올해 2월부터, 이 같은 보고서와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임지운 변호사는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유해물질이 사용된다는 보고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며 “이 같은 사실이 모두 은폐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산업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일부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관리하는 내용을 담았다.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의2(국가핵심기술의 정보 비공개)에 따르면 국가와 정부기관 등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 다만 국가의 안전보장, 국민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임지운 변호사는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의2 조문 후반부 단서조항이 모호해 거의 쓰일 일이 없을 것이라며, 법 시행시 정부의 보고서 공개가 국가핵심기술이란 이유로 불가능해진다고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일부 공장에 반도체와 관련된 국가핵심기술을 가졌다고 인정받은 상태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도 2018년 4월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받았다. 이에 대해 임지운 변호사는, 국가핵심기술 판정제도가 특정 기술에 대한 것인데, 삼성은 특정 문서를 대상으로 핵심기술 판정을 신청했고, 이 신청이 가능하다는 근거규정은 현행법상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보고서 공개 자체를 막을 수 없었다. 정부기관이 작성 또는 보유한 문서의 공개 여부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작업환경 유해성을 입증하는 각종 보고서들이 공개되면서, 국회에서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속속 발의됐다. 이들 보고서 등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정보공개법에도 불구하고 공개를 금지하는 근거조항을 마련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들 개정안 제안 이유 중 눈에 띄는 대목은, 삼성 반도체공장 보고서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명시적으로 거론됐다는 점이다. 2018년 7월10일 자유한국당 곽대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의 경우, 제안 이유로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공장 관련 자료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국가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라며,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된 정보 이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삼성전자 청부입법 

 

또 2018년 11월23일 윤영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 제안 이유에도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공장 관련 자료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국가핵심기술 유출 논란이 있었는데”라는 표현이 나온다. 세간에서 산업기술보호법을 일컬어 삼성전자 청부입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같은 여러 개정안을 하나로 모은 대안이 2019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당시 산업부는 “국가핵심기술 관리 대폭 강화”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지만, 임지운 변호사는 문제되는 독소조항에 대한 내용은 빠졌다고 비난했다. 

 

삼성전자 청부 입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입법안은 사실상 폐기됐다.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환경에 대한 안전보건 진단 결과 보고서 등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기업의 영업비밀 주장은 사전에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2018년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다만 같은 해 12월 법 개정시 영업비밀 비공개 심사제도가 반영됐을 뿐이다. 

 

임지운 변호사는 지금까지 소송 등을 통해 알아낸 자료들에 대해 “공장의 작업환경 유해성을 알 수 있는 아주 일부 자료에 불과하다. 앞으로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직업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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