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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지역화폐

발행·운영·관리 책임…지자체에서 ‘시민’으로 무게중심 옮겨야  

기사입력2020-06-30 09:35
양준호 객원 기자 (junho@inu.ac.kr) 다른기사보기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는 지역사랑상품권, 즉 지역화폐가 정책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하에서 쓰러져 가는 지역경제를 어떻게든 살려내기 위한 정책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지역화폐는 이전에 비해 더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지역 활성화와 함께 경제위기를 지역 차원에서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써 지역화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지만, 그간 국내에서 지역화폐에 대한 개념적 이해는 그다지 풍요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역 소비 활성화의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또 도입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정책적 경로의존성을 고려하면, 지역화폐에 대한 ‘경도된’ 이해는 충분히 납득될 수 있다. 

먼저, 지역화폐와 원화와 같은 법정화폐(국가화폐)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한다. 현금통화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이자가 붙지 않으나, 그것을 저축해 예금통화 형태로 보유하면 이자가 발생한다. 은행은 대출에 대해 예금이자보다 높은 이자를 징수해 이익을 올리고, 중앙은행은 금리조정·예금준비율조정 등의 금융정책을 통해 경기 및 물가를 컨트롤한다. 원화와 같은 국가화폐는 외국환시장에서 달러·엔·유로 등 타 외국통화와 교환된다. 그 때 적용되는 환율은 늘 변동한다. 달러·엔·유로 등과 같은 주요 국가화폐는 국내 유통뿐만 아니라, 국제무역 결제·대외 장기투자·국제적 투기거래에도 사용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국경을 초월해 유통된다. 즉 국가화폐는 초국적 성격을 갖는다. 

이와 같은 국가화폐와는 달리 지역화폐는 지방자치단체, 시민들의 임의단체, NGO 등이 자신들끼리 자유롭게 발행해 운영·관리하는 화폐다. 지역화폐의 발행·운영·관리상의 비용은 운영단체와 참가자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또 지역화폐는 자유롭게 정해진 일정 지역 내에서만 유통되는데, 이는 지역화폐가 지역 밖으로 유출되지 않고 그 안에서만 순환함으로써 지역내 경제거래를 활성화시킨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역화폐는 원·달러·엔·유로 등과 같은 국가화폐로 환금할 수 없다. 이는 지역화폐의 지역내 순환의 안정성을 보증하기 위해 필요한 룰로 작용한다. 만약 환금 가능하다면 지역화폐는 국가화폐로 환금되고, 지역화폐가 지역 밖으로 누출돼 유통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 하에서 쓰러져 가는 지역경제를 어떻게든 살려내기 위한 정책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지역화폐는 이전에 비해 더 큰 주목을 받게 됐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국가화폐와 달리 지역화폐는 그것을 수중에 아무리 많이 쥐고 있어도, 또 계좌를 통해 보유하고 있어도 이자가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그 가치와 잔액이 저절로 늘어나지 않는다. 국가화폐(일반적인 화폐)의 경우,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으면 이자가 붙지 않지만 예금으로 보유하면 이자가 발생한다. 그러나 지역화폐는 어떤 형태로 보유하더라도 이자가 붙지 않고, 되레 그 가치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또 국가화폐와는 달리, 지역화폐에는 화폐 그 자체를 사고파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역화폐는 투기대상이 될 수 없다. 지역화폐는 국가화폐와 달리 은행에 의해 ‘신용창조’되는 화폐가 아니다. 지역 시민 또는 단체가 그 필요에 맞춰 발행하는 화폐이며, 보다 안정적이고 자립적인 경제성장을 가능케 해주는 모의화폐다. 지역화폐 중에서는 이자가 제로(0)를 넘어 아예 마이너스인 것도 있다. ‘감가화폐(열화화폐)’로 불리는 지역화폐는 화폐가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한다. 예를 들어, ‘스탬프 부 지폐’의 경우, 일정 기간(1주일) 별로 일정 액의 인지(스탬프)를 지폐 뒷면에 붙이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는다. 인지 비용은 화폐를 수중에 보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보유세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세계 주요 도시에서 지역화폐의 이자를 마이너스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불황에 대한 불안감이나 비관적인 예측으로 인해 개인과 기업은 화폐를 저축으로 돌리면서 소비하거나 투자하지 않는다. 결국 소비와 투자의 위축을 초래해, 이로 인한 불황은 보다 심화될 수밖에 없다. 불황과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을 의미하는 이른바 ‘디플레이션 스파이럴’에 빠지게 된다. 

지역화폐의 마이너스 이자는 이와 같은 ‘불황과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위에서 언급한 ‘스탬프 부 지폐(감가 지역화폐)’를 도입하면, 사람들은 화폐 감가를 피하기 위해 수중의 지역화폐를 가능하면 빨리, 즉 법정화폐보다 먼저 사용하기 때문에 소비가 크게 촉진된다. 결국 시민과 단체가 자유롭게 또 자주적으로 발행·운영·관리하는 지역화폐는 경제적 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 일종의 ‘모의화폐’다. ‘유통권역’을 제한 또는 지정해 돈의 ‘가치증식기능’ 즉 ‘자본으로서의 기능’을 배제한 모의화폐는 지역내 경제활동 간의 연결성을 강화해 준다. 아울러 경제거래를 자극시켜 지역의 경제적 자립 정도를 높이는 역할도 수행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토대로 국가화폐와는 다른 지역화폐만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시민들과 단체에 의한 자유발행과 운영비용의 공유다. 둘째, 한정적인 유통권역을 갖고 국가화폐로의 환금이 불가하다는 사실이다. 셋째, 무이자 또는 마이너스 이자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지역화폐 특징을 고려해 지역화폐가 갖는 의의 역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시민과 단체에 의한 자유발행 및 운영비용 공유를 특징으로 하는 지역화폐는, 경제사회 근간에 있는 ‘화폐’가 자신들만의 공유물이고 또 자신들이 직접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게 해 준다. 따라서 지역화폐는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화폐, 즉 민주주의적인 화폐로 규정할 수 있다. 

둘째, 한정적인 유통권역 및 국가화폐로의 환금 불가를 특징으로 하는 지역화폐는, 지역 밖으로 유출되지 않고 그 내부에서만 유통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외부의 불안정한 금융시장의 영향으로부터 지역경제를 방어해 순환형 경제를 구축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지역화폐가 지역에서만 사용되고 그 내부에서 돌고 돌아 지역 밖으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을 지키고 지역을 자립시키는 지역주의적인 화폐로 규정할 수 있게 해준다. 

셋째, 무이자 또는 마이너스 이자를 특징으로 하는 지역화폐는, 은행의 신용창조를 동반하지 않고 투기나 축적에는 사용되지 않는 교환매개로서만 기능함으로써, 소비를 자극한다.  따라서 지역화폐는 장기간 예금되거나 축적되지 않고 계속 사용됨으로써, 경제거래를 활성화시키는 비자본주의적인 화폐로 규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지역화폐는 지역내 상점가 및 시가지 경제를 활성화시켜 ‘지산지소(地産地消)’, ‘무배출 시스템(Zero Emission)’을 실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화폐는 NGO와 사회적경제조직 활동을 지원하고 과잉 자본축적과 투기적인 버블을 배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립 순환형 지역경제와 자유롭고 민주적인 지역사회 구축을 위해 지역화폐는 시민, 주민 또는 지자체, NGO가 자주적으로 설계·운영하고, 특정 지역 및 커뮤니티 안에서만 유통되는 이자가 붙지 않는 경제 매개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지역화폐의 탈자본주의적인 기능과 의의에 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지역화폐 발행·운영·관리 책임을 지자체에서 좀 더 ‘시민’으로 그 무게 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 시민의,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화폐가 지역화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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