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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바다와 맞서 싸운 예술가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현장에 몸을 던지다…윌리엄 터너㊦ 

기사입력2020-11-15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영국이 자랑하는 국민화가 윌리엄 터너는 어릴 적에 정규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운영하던 이발소에 온 손님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이렇게 재능을 발견한 터너는 화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판화가와 제도공, 건축가의 조수가 되어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골의 풍경에 매료되어 전원 풍경화를 그렸는데, 사람들이 그 풍경화를 무척 좋아했고, 그 작품들을 판매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됐다. 그래서 왕립 아카데미 학교에 입학해서 정식적으로 그림을 배울 수 있었고, 전람회에 출품한 작품들이 호평을 받으면서 점점 미술계에서 인정받게 됐다. 급기야 젊은 나이에 왕립 아카데미의 교수까지 된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술계에서 인정받은 자신의 화풍에 안주하지 않고, 자연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자연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현장에 몸을 던졌다.

 

이런 그의 일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67세의 나이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다를 체험하기 위해 떠난 일이다. 그는 폭풍우로 출렁거리는 겨울 바다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서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증기선 에어리얼에 탑승했다. 그 배를 타고 가다 폭풍우가 치자 그것을 관찰하기 위해 선원에게 배의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어 달라고 했고, 67세나 되는 늙은 나이에 무려 4시간이나 갑판 돛대에 묶여 눈보라와 사투를 벌이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겨울 밤바다를 관찰했다. 이 경험은 1842눈보라-항구를 떠나는 증기선이라는 놀라운 작품이 됐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 당시에 너무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그림을 본 그 당시 어떤 미술역사가는 터너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어떤 미술비평가는 비누 거품과 석회 반죽뿐인 작품이라고 혹평을 퍼붓기도 했다.

 

윌리엄 터너, ‘눈보라-얕은 바다에서 신호를 보내며 유도등에 따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 나는 에어리얼 호가 하위치 항을 떠나는 밤의 눈보라 속에 있었다’, 1842, 캔버스 위에 유채, 91.5×122cm, 영국 테이트 컬렉션.

 

그럴 만도 한 것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다와 그곳을 항해하고 있는 증기선이 있어야 할 텐데, 그림을 보면 바다와 배의 형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뿌옇게 그려져 있다. 어디가 바다고, 무엇이 파도며, 어디가 하늘인지, 증기선은 있는 건지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림은 마치 추상화처럼 회색과 녹색, 갈색의 붓터치가 화면 안에 가득히 어지럽게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파도에 흔들리는 증기선의 굴뚝에서 갈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이고, 은색의 창백한 하늘도 느껴지며, 비를 잔뜩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검은 구름도 보인다. 성난 파도가 거대하게 일어나고, 소용돌이치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느껴진다.

 

터너는 이런 말을 했다. “이해받기 위해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장면이 어땠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폭풍우의 정확한 장면을 세세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우, 거칠게 출렁이는 겨울 밤바다의 느낌을 그리길 원했던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해 혹평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빅토리아 시대 유명한 영국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그림이 그려진 다음 해에 출간한 현대 화가들(1843)’이란 책에서 이 그림을 여태까지 그려진 바다 그림 가운데 바다의 움직임과 엷게 낀 안개, 빛을 가장 장엄하게 표현했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터너는 이 일화 외에도 눈사태가 난 곳을 찾아가고, 눈보라 치는 겨울 산을 넘고, 증기기관차의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일들이 전해진다.

 

젊은 시절의 평탄한 길에 안주하지 않고, 예술을 향한 뜨거운 집념으로 그린 그림이 사랑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과 예술을 향한 열정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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