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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작가 셋 모이면 ‘돈’, 사업가 셋 모이면 ‘예술’ 얘기

Life is pain.ting…레지던시 풍경 #7. 자린고비 

기사입력2018-07-10 16:29

레지던시 기간 동안 신던 양말을 스튜디오에 그대로 벗어 두었다.

하루의 피로는 고스란히 양말에 담겨 죽은 물고기처럼 쌓여갔다.

(중략)

그 수고들은 영정이 되어 우리를 내일로 자꾸 밀친다.

파도가 끝나는 곳에는 내일 죽은 물고기가 서둘러 쌓여있다.(김윤아 작가노트, 자린고비 2018)

 

<제공=김윤아 작가>
지난 몇 달 동안 입주 작가들 대부분이 밤샘 작업을 하고 쉼 없이 전시를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한 전시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는 타이틀로 무사히 오픈했고, 오프닝을 위해 마련된 작가 소개와 식사를 마쳤다.

 

전시 오픈 전보다 조금은 여유 있는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개인전 일정이나, 또 다른 그룹전 준비로 작업을 쉬지 않고 이어나가는 작가들, 혹은 입주기간이 끝나가면서 나를 포함한 몇몇 작가들은 다른 레지던시 공간으로 이사를 위해 조금씩 짐을 싸거나, 입주작가 프리뷰 전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6월에 입주할 공간의 프리뷰 전시를 위해 진행 중이던 회화 ‘sweet tongue/227.3x181.8cm’를 마무리해서 출품하려고 작업을 시작했으나, 작가 개인마다 주어지는 전시공간이 1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을 뒤늦게 재단으로부터 전해 듣고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결국 소품을 준비해야 하건만 작업 성격상 소품 작업이 거의 없기도 했고, 기존 작품 중 소품에 해당할 만한 작업이 있긴 해도 프리뷰전의 성질과 맞지 않아 구상 중이던 작품 사이즈를 대폭 줄여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천안과 김해를 오가며 작업을 하고 전시를 준비하며 5월은 점점 더 납작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작가 셋이 모이면 얘기를, 사업가 셋이 모이면 예술을 이야기 한다 했었나.

 

6월의 초입, 작가 몇몇이 모여 근황을 주고받는 저녁식사 내내 작업 이야기는 제쳐두고 이번 전시에 아티스트 피는 받았는지, 얼마를 받았는지, 재단에서는 무얼 지원해주었는지, 그 곳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어떤지, 매달 창작비 지원이 있는지, 공과금은 내는지, 공과금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등의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일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작업실 운영비와 재료비로 꼬빡 털어 작품을 했던 작가 한명은 젓가락으로 밑반찬을 분주하게 입에 가져다 넣으며 말하길 그래도 이번엔 아티스트 피 20만원 받았고, 운송도 해줬어라고 말했다.

 

<제공=김윤아 작가>
나 역시 새로 입주하게 될 공간의 계약 내용 중 작품기증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고(공과금도 낸다), 주로 용접작업을 하는 한 작가는 모 업체로부터 작가 홍보를 해줄 테니 금속 스탠드를 제작해서 20만원에 판매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갓 하나를 만드는데 하나 당 작게 잡아도 열흘이 걸리는 작업을 작품으로써의 가치는 차치하고서라도 목수들 하루 일당 15만원(최소한)만 해도 열흘이면 150만원이라며 그것도 거푸집 만드는 가격은 뺀 거라고 이야기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또 다른 작가는 초대 개인전 공모에 붙었건만, 운송은커녕, 리플릿조차도 작가 개인 부담 이었다며 그러면서 작품 팔리면 5:5라는 계약은 아무래도 잘못된 거라며 웃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대부분 이런 현실들을 즐겁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물론 이미 너무나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현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들의 말미에는 농담처럼 나부랭이라서 그래라는 말을 종종 하며 눙치곤 하는데 작가들만큼 고학력자가 많은 분야도 드물 것이다. 어지간하면 죄다 유학파 아니면 석박사들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앓는 소리 한번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작업을 했으니 전시는 해야겠고, 전시를 하려면 시스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매끈하게 미끄러져 가는 것이 옳다고(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작가 작품을 허락도 없이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해서 문제를 제기했다가 외려 까다로운 작가가 되어 재단에서 벌이는 사업에 늘 초대 받다가 언젠가부터 제외되기 시작한 모 작가나, 한창 미투 논란이 있었을 때 분명한 피해자임에도 성추행 논란 작가가 되어 전시할 기회가 전혀 없어졌다는 누구누구 이야기들을 전해 듣곤 하다 보면 개인의 경험의 축적과 더불어 공허함에 휩싸이게 되곤 했다. 혹은 반갑지 않은 패배감이 들거나.

 

난 이러한 삶의 경험치가 쌓여 섣불리 초월하거나 통달하여 허허롭고 싶지 않다. 정말이지 아주 작고 사사로운 일이라 치부되는 것들에 집착하고 사활을 걸어 삶이 어찌 치닫는지 잊은 채 흐르길 바란다.

 

부디 이 공허함과 싸우는 일에 지치지 않길 바란다. 버터처럼 아무 요철없이 부드럽게 잘려져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미끄러지듯 녹아들지 않을 거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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