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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성’에 관한 오만한 형태들이 ‘자유’를 찾기까지

Life is pain.ting…레지던시 풍경 #8. 성역 

기사입력2018-08-20 10:05

이 땅에서 부대끼고 성장하며 쌓아온 경험치나 자신만의 철학을 갖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인간이기 이전에 이 사회가 여성으로서 요구하는 자세(여성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놓은 요구방식의, 남성성과 마찬가지로)와 그러한 상황에 대한 의문이다.

 

첫 번째 기억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때 즈음이다. 머리카락이 자라 목 뒷덜미에 닿기 시작하면 울며불며 머리를 잡아당겼던 터라 엄마 아빠는 나의 머리를 집에서 바짝 잘라주곤 했다(일명 바가지 머리, 신문지에 동그랗게 구멍을 내서 얼굴을 쏙 넣어 입히곤 부엌가위로 앞머리를 잘라주며 깔깔 웃던 아빠의 모습은 아직도 참 선명하다).

 

처음으로 집단이라는 일종의 사회관계에 던져진 유치원에서 그때의 여아들이 내게 던진 가장 많은 말은 바로 남자애도 아닌데 너는 왜 머리가 짧아 까르르따위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었으나, 끝내 그녀들만의 인형놀이나 공주놀이에 나를 끼워주지 않자 집으로 달려가 펑펑 울며 이제 머리를 기르겠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덧붙이자면 그 후로 내 눈에는 가장 멋져보였던 기타를 든 바비인형을 사서 갔으나, 흑인 바비인형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당했다. 그 때 처음으로 그녀들이 말하는 미의 기준에 흑인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지나 지금까지도 주~욱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이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많다. 딸 셋의, 비교적 열린 사고를 가진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면서는 도저히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

 

여자아이가 칠칠치 못하게”(치마를 입고 흙장난을 치던 내게 지나가는 동네 어른이 던진 말).

넌 보기보다 터프하다”(·고등학교 시절 돈을 요구하는 선생에게 대들던 모습을 본 친구).

그래도 술은 여자가 따라 주는 게 맛있지”(대학시절 강사가 선배의 전시 뒷풀이에서 한 말).

여자 분들은 그냥 2종 오토 신청하시는 게 면허 따기 좋죠”(1종 보통을 따러 면허시험장에 간 날).

거봐. 너도 어쩔 수 없는 여자지”(대학시절 남자친구와 한강에서 데이트하다 날아오는 벌레 때문에 깜짝 놀라는 내 모습을 보고 던진 말. 그 녀석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순간이기도).

 

<사진제공=김윤아 작가>
한번은, 워낙 마르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남사친(남자사람친구)에게 한 녀석이 이 새끼는 꼭 여자 같아. 남자 같은 구석이 없어라는 말을 던지는 걸 옆에서 우연히 듣고 , 남자로 태어난 거 자체가 남자다운 거고 여자로 태어난 거 자체가 여자다운 거지 그 이상 뭘 더 남자가 남자다워야 하는 거고 여자가 여자다워야 하는 건데!?”라고 한마디 했다가 분위기가 싸늘해졌던 기억도 있다.

 

뭐 하여튼 등등.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이나 취향, 혹은 외형까지도 그 우습지도 않은 여성성혹은 여자다움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도덕성이 아닌 취향이나 태도들로 인해 재단되거나 평가받아야 하는 현실에 애석하게도 분노가 쌓이던 나날들이 여름날의 장마철, 우산도 없이 파랗게 걷던 모습으로 남았다.

 

그러한 경험들로 인해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매번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 부딪히는 일이 피곤했고, 정말이지 말할 수 없이 지쳐갔다. 시간이 흘러 대학원 수료 후 무작정 떠났던 한국에 돌아와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지나온 상황이라는 것은 그러한 땅 위에 지어진 그에 딱 알맞은 집이라는 것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평론가, 기획자, 컬렉터 혹은 미술 관계자 등등으로부터 성적인 접촉을 요구 받았거나, 가슴이 크거나 작다라는 평(?)을 들으며 술자리 농담을 듣고 수치심을 느꼈다거나, 그에 대해 항의했거나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가 전시가 엎어지거나, 재단에서 운영했던 사업에서 늘 참여하다가 갑자기 배제되었다는 이야기들을 비슷하게 경험했거나, 동료 작가들로부터 직접 듣거나 전해 듣기도 하는 일, 컬렉터로부터 식사를 제의받아 나간 자리에서 봉변을 당했다거나 하는 일들은 이상하게도 공론화가 되지 못했다. 일부 되었다 한들, 그런 일들은 블록버스터 영화 개봉소식이나 아이돌 가수들의 연애 이슈에 맥없이 사그라들었다.

 

필자의 경우, 일례로 지인의 개인전 오프닝에 참석했다가 뒤풀이에서, 그 지역에서 방귀 좀 낀다는 술 취한 중견작가가 블루스를 추자며 겨드랑이에 팔을 쑥 넣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그 팔을 패대기쳤다가 저 작가는 서울에서 와서 저렇다는 웃지 못할 평을 듣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그러한 일들에 대한 조언들은 이 바닥에서 그런 일 한두 번씩 안 겪은 사람 없으니 알아서 끊을 사람 정리하는 수밖에 없어”, “설령 이런 일들을 발설한다 해도 작가에게 좋을 거 없다. 작가가 작품보다 이런 일로 연루된 이미지가 크게 남아서 갤러리나 관에서도 결국 기피한다니까”.

 

사람들은 어차피 그 작가가 그럴만하게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해혹은 적극적으로 여성성을 어필하는 작가가 되지 않을 바에는 무시해아니면 차라리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어딜 가나 다 똑같다등등이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상황들을 보고, 듣고, 때론 겪기도 하며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남 탓이 아닌 내 탓으로 돌리며 자기성찰을 거듭해야 했다. 말로 할 수 있는 건 말로, 글로 할 수 있는 건 글로, 글로도 말로도 되지 못한 것이 작업이 된다고 했었으나 말로 할 수 있는 것도 말이 되지 못했고, 글로 할 수 있는 것도 글이 되지 못했다.

 

날 것의 감정을 작업에 직접 쏟아 붓지 않는 성향의 나는 그것들을 차창 밖 풍경처럼 스쳐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작업실에서만 생활하는지라 이제는 그럴 일도 없고 또 설령 있다 해도 이제는 알아서 피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간혹 후배들이 좌절하며 말을 걸어 올 때면, 피하거나 무시하거나 덮고 지나왔던 내가 과연 무슨 말을 해 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없다고 본다).

 

세상이 오래 전부터 이미 그래왔으므로 으레 그러려니 지나는 많은 잣대들과 편견, 그리고 성에 관한 오만한 형태들이 자유를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지어 놓은 형태 안에서 미술이라는 사업에 실패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거듭하다가 정작 예술에 실패하고 마는 일들은 계속 될 것이다.

 

자신이 쓰는 모든 재료를 세상에서 구하고 예술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 재료를 옮길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도구로 세상이 주는 재료를 잘 섞어낼 때 예술이라는 성역으로 들어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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