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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가 판 치고, 혐오조장 극에 달한 온라인

초기의 희망을 회복할수 있을까…포스트-온라인 시대의 예술⑩ 

기사입력2018-10-05 16:08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무선 온라인과 더불어 급속도로 퍼진 SNS(사회관계망서비스, Social Network Service)는 삶의 모습을 많이 바꿔놓았다. 이제 우리는 일상처럼 SNS에서 친분관계를 쌓고, 자신을 자랑하며, 서로의 정보를 교류한다.

 

하지만 익히 알려졌듯이 SNS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 욕망의 분출구로 온라인이 사용됨으로써 현실에서는 통용되기 힘든 폭력성과 기괴함이 SNS에 난무하고 공유되기도 한다. 또한, SNS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선택적 드러냄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상의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온라인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 사이에 큰 괴리를 만들어낸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사람이 현실에서 도피해 온라인의 환상적인 자아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SNS는 과연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2011년 에드 포니예스(Ed Fornieles, 1983~)가 실행한 페이스북 프로젝트는 이러한 측면에서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학창시절’=영국의 젊은 예술가 에드 포니예스는 2011학창시절(Dorm Daze)’이라는 흥미로운 페이스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대학생활에 대한 가상의 페이지를 개설하고, 그곳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만 한 후,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참여자들이 글이나 사진 등을 올려 각자의 캐릭터를 구축하게 했다. 참여자들은 포니예스의 최소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이 이야기들이 교차하면서 재미있는 대학생활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페이스북에서 일종의 관객 참여 퍼포먼스가 벌어진 것이다.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한 이 프로젝트에서 참여자들이 올리는 이야기들은 대학시절의 실제 상황도 있었고, 지어낸 허구의 내용도 있었다. 또한, ‘월가 점령 운동’(Occupy Wall Street, OWS)과 같은 그 당시 사회적인 문제도 내용으로 등장했다. 이렇게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가운데, 실제 감정과 꾸며진 감정이 상호작용하며 점점 이야기는 증폭되고 가속화됐다.

 

이로 인해 참여자들 사이의 온라인 관계가 친밀해졌다. 하지만 현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는 이야기는 결국 그들의 실재 삶과 동떨어져 있는 낯선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에드 포니예스, ‘학창시절(Dorm Daze)’ 전시장면, 2011, 페이스북 이미지, 영상, 텍스트 등<출처=www.carlosishikawa.com>

 

SNS라는 가상공간은 자신의 삶을 꾸밀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허구라고도 할 수 없다. 그 까닭은 허구를 창조해내는 데에도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형태나 습관, 생각들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 환경이 허구를 창조하는 순간순간 침입해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허구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도 단순히 연기나 게임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허구적 내용이라도 그 속에는 현실의 자아가 내뿜는 숨결이 감돌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포니예스의 학창시절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연기하듯이, 혹은 게임하듯이 그곳에 글을 올리고,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현실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과거로부터 축적된 기억을 가진 참여자는 현실의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뒤틀거나 재조합해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때문이다.

 

포니예스의 학창시절이 흥미로운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참여자의 허구가 만들어내는 게임과 같은 이야기가 여전히 현실의 영역에서 존재한다는 사실.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미묘하게 움직이는 서사의 전개는 참여자들을 더욱 강하게 끌어들이고, 서사를 가속화시킨다. 왜 이렇게 될까? 어쩌면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온라인 공간의 가상성에 강하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듯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기에 가상의 서사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포니예스의 학창시절프로젝트에서 전개된 이야기들은 피드백 루프 속에서 실제적이고 흥미롭게 증폭해 나갔다.

 

숙취 II’, 현실에 재현된 온라인 심리=포니예스는 2011년에 런던에 있는 카를로/이시카와(Carlos/Ishikawa) 갤러리에서 숙취 II(Hangover part II, 2011.11.11.~12.17)’라는 전시를 개최했다. 이 전시가 중요한 것은 페이스북 프로젝트 학창시절에서 형성된 서사를 바탕으로 현실 전시공간을 꾸몄기 때문이다.

 

에드 포니예스, ‘학창시절(Dorm Daze)’, 2011, 페이스북 웹페이지 장면<출처=rhizome.org>

 

그는 학창시절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수집한 사진, 텍스트, 등장인물 등을 숙취 II’에서 물리적인 실체로 재현한다. 온라인의 가상성이 현실공간에서 실체를 얻어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포스트-온라인시대의 온라인 미술이 형체를 얻어 오프라인에 등장하는 일련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가상성이 가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물리적 공간에 물질성을 얻으며, 가상과 현실의 교란을 창출하는 포스트-온라인 시대 예술의 모습을 보인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숙취 II’에서, 포니예스는 학창시절에서 수집한 내용물을 조각, 설치, 및 영상으로 전시공간에 펼쳐놓는데, 그것은 일상적인 현실의 타임라인을 비집고 들어와 온라인의 어둡고 폭력적이며, 기괴한 심리적 측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것은 온라인이 현실공간에 등장했을 때, 단순히 온라인의 가상성과 현실의 물질성 사이에 놓여 있는 형식적인 이분법을 드러내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이 지닌 심리적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더 깊은 층위로 우리를 안내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변하면서 가상성이 물질성을 얻는다는 단순한 형식의 변화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 형식적 변화의 층위와는 다른 층위의 심리적 측면, 즉 욕망의 분출구처럼 사용되는 가상세계에서, 그곳에서만 드러냈던 어둡고 폭력적이고 기괴한 심리적 측면을 현실에서 버젓이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일상의 현실세계에서 은폐되었던 이 심리적 측면은 만질 수 있는 촉각적 실체로 전시공간에 놓여있음으로써 그것을 보는, 혹은 만지는 우리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다.

 

모두가 평등하게 발언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온라인 초기의 유토피아적 가정들은 포스트-온라인시대에 들어서면서 뒤집혔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여성(남성)혐오가 극에 달하고 마녀사냥’, ‘신상털기가 온라인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악플은 현실에 영향을 미쳐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온라인이 유토피아는 아님을 우리는 현실에서 보고 있다.

 

포스트-온라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초기 온라인이 우리에게 주었던 유토피아적 희망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포스트-온라인시대의 미술은 그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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