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이코노미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 매체
2020/09/24(목) 00:01 편집

주요메뉴

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프린트
라운지예술을 읽다

나를 등 떠밀었던 시간과 사건이 씨앗처럼 남았다

Life is pain.ting…레지던시 풍경 #10. 씨앗 

기사입력2018-10-15 15:35

지난 무더운 여름 기간 동안 산자락 밑에 자리한 이 곳 스튜디오의 창문 밖으로 수많은 거미줄이 생겼다. 거미줄에는 매일매일 수십 마리의 나방들과 각종 이름을 알 수 없는 곤충들이 매달려 간혹 부는 바람에 죽은 꽃잎처럼 나풀거렸다.

 

거미줄 위에서 당연히 제일 강자였던 거미는 길고 두툼한 대바늘같은 다리로 나풀거리는 꽃잎을 하얗게 돌돌 말아 자칫 땅콩처럼 보이게끔 만들곤 했다. 뉴스에서만 요란했지 실제로는 싱겁기만 했던 장마철이 지나고 늦여름 갑자기 찾아온 폭우가 지나는 동안 나는 종종 창문에 콧김이 서릴 만큼 찰싹 달라붙어 그 모습을 관찰하곤 했다. 동그랗게 말려진 것들은 몇몇 사라졌고 몸통을 잃은 채(먹힌 채) 날개만 남아 있는 것들은 빠르게 특유의 색채를 잃고 검게 변해갔다.

 

10월에 개인전 일정이 잡히거나 다른 여러 그룹전 전시나 아트페어로 분주한 지인들이 나를 포함 많아졌다. 전시가 많은 시월이다.

 

서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전시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지난 몇 달간의 분위기보다는(표면적으론) 활기가 돈다. 물론 서로 아티스트 피 문제나 전시지원 사항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간혹 깊은 숨을 내쉬곤 했지만, 금세 털고 다음 작업에 관한 이야기나 이번 전시에 나갈 작업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를 포함해 지인들조차 대부분 홀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지독하게 외로워지다 못해 고립감마저 엄습하면 일부러 가장 먼지 같은 이야기를 화두로 삼으며 통화를 하곤 했는데, 그 빈도수가 잦아진 데에는 전시를 앞두고 중압감과 헛헛함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해서 또는 늘 달고 사는 불안감을 더 증폭시키는 작업 때문에 그도 아니라면 단지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가을 냄새가 풀풀 날리는 한낮 계절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작업으로 이어진 어떤 경험들이나 사건들, 또는 사진처럼 박힌 짧지만 강렬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는데 서로들 이미 대강 알고 있던 일들이었으나 화자가 늘 제3자가 되어 주인공을(본인을) 말하는 시점이었다면 이번에는 철저히 화자가 주인공인 시점이었다. 해서 보다 면밀히 그 때의 사건보단 감정이나 생각들이 주요한 내용이 되었다.

 

비극적 경험이 유일한 예술의 원천이다라고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가 한 말에 반감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 딱히 부정할 수도 없는 말이긴 했다. 부정하기엔 스스로가 이미 수없이 건조시켜 쪼그라들어 씨앗처럼 작고 단단해진 일들을 삼키지 못한 채 다시 물을 붓고 싹을 틔우는 짓거리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전히 남아있는 의문거리들을 분해하거나 분석하거나 혹은 감정 자체로 부딪히거나 부서지거나 때론 부숴버리면서.

 

오래 전부터 분단 문제를 다루는 설치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갑자기(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공장 노동자들에 관한 다큐를 제작했던 모 작가는 가장 밀접한 관계였던 아버지가 작고하시고 나서 의문으로 남았던 그의 삶 안으로 들어가 보고자 하면서 지금의 작업들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모 작가 역시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이가 본의 아니게 고독사 하게 되면서 무연고 사망자들을 다루는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 가장 무난한 삶을 살아온 그녀는 시스템 안에 스스로를 녹여 오면서 버리거나 가질 수 없던 무엇에 관한 갈망이나 갈증이 작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했다.

 

새까맣게 매달려 있던 몸통을 잃은 날개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어졌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거미라도 있을 줄 알았건만, 그 강자 역시 사라지고 말라붙은 껍데기만 작게 오무린 채 말라 죽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사진제공=김윤아 작가>

 

오랫동안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고생해온 한 중견 작가는 순간을 살고 사라지는 감정들에 기대어 살다가 즉흥성을 띠는 작업들에 골몰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경험한 모텔 카운터 아르바이트나, 각종 식당 서빙, 고액 과외 경험들이 지금의 작업에 꾸준히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그 당시엔 사건들이 시간과 맞물려 등을 쉴 새 없이 떠미는 바람에 어딘가로 밀려와 버렸지만 지나고 나서, 도대체 그때 나를 등 떠밀었던 시간들과 사건들이 씨앗처럼 남아 늘 까끌거리는 상태로 목구멍에 남아있었다. 그것들이 처음엔 변두리에 자리 잡다가 건조되기 시작하면서 차츰 작업의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인간 내면의 메시지가 특정한 상황이나 인물을 대상으로 한 직접성을 띠지 않았을 때, 이것을 만나는 공감의 무게가 놀랍도록 뜨거울 수 있음에 주목했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맥락성은 결코 자세하고 구체적인 설명 속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해(understand)이지 공감(empathy)의 영역으로 확대되지 못한다. 현대미술은 논리적 조형성과 철학적 의미에 크게 의존하며 작품을 통해 본질적 정서를 교류하는 작가와 관객의 소통의 기회에서 크게 멀어져 왔다. 나는 관객과의 소통이 설득의 과정 없이 가슴 속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화학 작용과 같기를 희망하고 있다.(2015 작가노트)

 

개인전 준비로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혹은 특유의 게으름 때문이었는지 거의 한 일주일은 스튜디오에서 누워만 있거나 하릴없이 스튜디오 구석구석을 서성거리다가 그 불안함과 한심함에 느닷 몸서리가 처지곤 했다. 그런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한걸음 정도 작업에 다가설 수 있었다.

 

한동안 습관처럼 바라만 보았지 정작 바라 본 게 아니었던 작업실 창문을 바라보다 문득 거미줄 세상 속의 일들이 궁금해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새까맣게 매달려 있던 몸통을 잃은 날개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 사이 쏟아 붓던 빗줄기 때문이었을까. 검게 변한 수많은 날개들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 바닥의 창틀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먹이가 되어버린 녀석들은 그렇다 쳐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 거미라도 있을 줄 알았건만, 그 강자 역시 사라지고 말라붙은 껍데기만 흡사 불에 그슬린 실오라기처럼 작게 오무린 채 말라 죽어 자신이 친 거미줄에 가까스로 매달려 간혹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두툼하고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았을 뿐인데도 나를 건드리기라도 할 것처럼 위협적이던, 대바늘처럼 굵던 다리조차 텅 빈 껍데기만 되어 오후의 노란 볕이 껍데기 안으로 스며들어 투명하게 반짝였다.

 

지난 여름 내내 그토록 열심히 먹이를 잡아들이고 구멍 난 집을 보수하던 그 강한 거미 녀석이 이렇게 황망하게 죽어버렸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위아래를 샅샅이 훑어 봤으나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몸을 돌렸다.

 

거의 열흘 가까이 바라만 보고 미뤄두기만 하던 작업을 다시 손에 잡았다. 손끝에 닿는 붓끝이 어찌나 젖은 꽃잎같던지.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top

객원전문 기자칼럼

 
  • 기업법률
  • 상생법률
  • 공정경제
  • 법률산책
  • 생활세무
  • 상가법
  • 인사급여
  • 4대보험
  • 노동정책
  • 판례리뷰
  • 이제IP
  • 무역실무
  • 알쓸신법
  • 부동산
  • 금융경제
  • 세상이야기
  • 가족여행
  • 예술만세
  • 작가노트
  • 현대미술
  • 시민경제
  • 무역물류
  • 이웃사람
  • 가맹거래
  • 미국문화
  • 중국상인
  • easy부동산
  • 신경제
  • 다른 세상
  • 정치경제학
  • 번지는 행복
  • 민생희망
  • 지적재산권
  • 개인회생
  • 공동체
  • 빌딩이야기
  • 노동법
  • 스마트공장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