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직노동자, “고객용 화장실 쓰면 난리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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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산업뉴스 판매직노동자, “고객용 화장실 쓰면 난리 나요” 화려한 백화점·면세점 매장 뒤에는 서비스노동자 고통이 녹아있다

기사입력2018-10-17 17:02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최상미 엘카코리아노동조합 부위원장은 2001년부터 면세점 매장에서 근무했다. 최 부위원장은 최근 매장에 의자가 들어왔다며, 17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근 매장 중에서 가장 먼저 판매직원용 의자를 배치한 사례지만, 의자는 하나였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많게는 5명이 되기도 하는데, 의자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며 임신과 출산을 했지만, 임신기간 중에도 하루종일 서서 일했다. 배가 뭉치고 아파도, 비상구계단에 담요를 깔고 앉아 잠시 쉬는게 전부였다. 장시간 반복 서서 일을 해 뱃속의 아이가 유산되거나, 태아가 밑으로 쳐지지 않도록 수술한 사례도 많았다고 최 부위원장은 말했다. 여성노동자가 95%이상인 면세점은 저출산국가에서 여성을 지켜주지 않는 대표적인 직장이었다.

김수정 한국시세이도노동조합 사무국장은 2005년부터 백화점 매장에서 근무했다. 연중 냉난방이 가동되는 매장에서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근무하다보니, 건조한 공기와 먼지로 인해 안구건조증과 호흡기질환은 만성이 됐다. 서서 근무해온 십수년간 이력에 발가락은 휘고, 흉한 굳은살이 생겨 맨발을 드러내기 부끄럽다고 했다. 백화점 매장직원은 고객용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멀리 떨어진 직원화장실을 가려면 매장을 비워야 하는 부담 탓이다. 건조한 공기에 고객응대를 위해 하루종일 말을 해야하지만, 화장실 가는게 두려워 물도 잘 마시지 않는다. 소변을 오래 참아 생긴 방광염으로 약을 먹고 있음에도, 여전히 화장실 가는 일은 자유롭지 않다는게 김 사무국장의 말이다.

백화점·면세점 화려함 이면에 비참한 근무환경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과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17일 공동주최한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806명 연구결과 발표와 현장 노동자 증언대회’에 나온 서비스노동자들은 판매직의 비참한 근무환경을 증언했다.

이날 발제를 한 김승섭 고려대학교 교수는 “(오늘) 이야기들은 18세기 산업혁명시대 이야기가 아닌 21세기 값비싼 명품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는 판매노동자들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판매하는 백화점·면세점 매장의 이면에는 판매노동자의 고통이 녹아있다고 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역학연구실 팀은 올해 1월부터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를 조사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과 공동으로 기획하고 심층인터뷰와 설문조사로 진행한 연구였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27개 화장품브랜드와 면세점의 41개 화장품 및 부티크 판매노동자 2806명이 연구에 참여했다.

“고객용 화장실 쓰면 난리 나요”

김 교수에 따르면 2016년기준 한국의 매장판매 종사자는 47만7000여명이다. 판매노동자의 고충은 ▲화장실 ▲의자 ▲휴게실 ▲갑질 등의 키워드로 나타난다.

모 백화점의 근무수칙에는 ‘고객시설물(ES,EV, 고객용 화장실, 고객용 휴게실, 주차장) 사용금지’ 조항이 있다. <자료=김승섭 고려대학교 교수>

백화점·면세점 판매노동자는 고객용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 김 교수팀의 조사결과 고객용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경험한 비율은 응답자의 88%였다. 실제 모 백화점 근무수칙에는 ‘고객시설물(ES,EV, 고객용화장실, 고객용휴게실, 주차장) 사용금지’ 조항이 있다. 참석자들은 “고객용화장실 쓰면 난리나요”라고 증언했다.

별도로 마련된 직원화장실을 사용해야하지만, 직원화장실은 건물에 하나만 있거나 근무매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조사결과를 보면, 근무 중 화장실에 갈 필요가 있으나 화장실을 가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59.8%). 이러한 이유로 방광염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전체의 20.6%였다. 같은 나이대 여성노동자가 지난 1년동안 방광염으로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비율(6.5%)의 3.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화장실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근무환경 탓에 지난 6개월 내 생리대 교체를 못했던 경험을 가진 노동자가 39.9%에 달했다. 생리대 교체를 제때 하지못해 피부질환, 염증 등을 경험한 노동자도 17.2%에 이르렀다. 근무 중에 화장실에 가야하는 상황이 생길까봐, 목이 마른데도 물을 안마신 경험을 했다는 응답자도 절반 가까이 됐다(42.2%).

장시간 서서 근무, 휴게실도 열악…유산,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 질병 유발

판매노동자에게 앉을 수 있는 권리도 허락되지 않았다. 판매노동자가 일하는 곳에 의자가 없거나, 의자가 있어도 근무 중 앉을 수 없다는 응답은 64.9%였다. 이로인해 하지정맥류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15.3%, 족저근막염을 경험한 응답자가 7.9%였다. 같은 나이대 여성노동자가 지난 1년동안 하지정맥류로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경우가 0.6%, 족저근막염으로 진단 또는 치료를 받은 경우가 0.5%다. 판매노동자의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 발생빈도가 같은 나이대 여성노동자에 비해 각각 25.5배, 15.8배 높다는 말이다. 판매노동자의 무지외반증으로 진단 또는 치료받은 비율도 일반 여성노동자보다 60여배 많다. 서서 일하는 특성으로 면세점·백화점 노동을 시작한 2명 중 1명의 노동자(49.8%)는 동료 노동자의 유산을 목격했다.

서서 ‘대기자세’ 하라는 백화점, 면세점, 대형마트, 본사 때문에, 그리고 의자가 없어서 앉을 수가 없는 판매 노동자들 <자료=김승섭 고려대학교 교수>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용자 혹은 사업자가 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을 보장하고 휴게시설 등을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판매노동자가 휴게시설 또는 휴게시간을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조사결과 판매노동자가 지난 한달동안 휴게실을 사용한 경험은 전체 응답자의 41.9%였다. 휴게실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로는 휴게실 의자가 부족해서(65.7%), 휴게실 면적이 좁아서(47.5%), 휴게실이 멀어서(26.3%),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아서(4.8%) 등이었다. 이들은 휴게실 대신 게이트 근처, 카페, 직원식당, 비상계단 등에서 휴식을 취했다.

고객 갑질…회사가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정신적 고통 심각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고객의 갑질 또한 판매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했다. 고객의 굴욕감을 주는 욕설이나 폭행, 판매와 상관없는 사적 관심이나 성적인 언행으로 고통받았다. 토론회에서 백화점에 근무한다는 한 노동자는 고객의 민원제기에 대해, 회사가 전후사정을 살피지 않고 민원 잠재우기에 급급하다며 한 사례를 소개했다. 매장에서 여러 제품을 테스트하고 한 제품을 선택해 구매한 고객이, 그 제품을 사용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환을 요구했다. 판매직원은 교환해 줄 수 없다고 하자, 고객은 해당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했지만, 민원제기에 따른 책임은 판매직원의 몫이었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사용자 혹은 사업자가 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을 보장하고 휴게시설 등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판매 노동자들에게는 이 휴게시설 또는 휴게시간을 이용하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자료=김승섭 고려대학교 교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1개월 내 언어폭력, 원치 않는 성적관심, 위협 또는 굴욕적 행동을 경험했다는 판매노동자가 절반이 넘었다(54.1%). 면세점·백화점 판매노동자가 고객으로부터 폭력 경험에 대비한 가이드라인 존재 여부와 실제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4.6%는 가이드라인 존재여부조차 모른다고 답했다.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응답은 12.1%,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도움이 안된다는 응답도 32.1%였다.

김 교수는 “갑질이 발생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고, 내가 속한 회사는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피폐하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1주일동안 우울증상을 느꼈다는 응답자가 35.2%에 달했고, 10명중 1명(9.7%)은 지난 한해동안 자살을 생각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김승섭 교수는 발제를 마무리하며 “기업이나 정부에 비해 노동자가 가진 자원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을의 입장인 판매노동자가 나서 자신들의 비참한 근무환경 이야기를 데이터로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용기를 내 증언을 하고 자발적으로 참여를 한 판매노동자들이 또다시 좌절을 경험하지 않도록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작은 변화라도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