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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에게 현실은…영화 속 ‘1991, 봄’

지금 이 순간, 험하고 위험한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다 죽어간다 

기사입력2018-11-16 17:24
김준모 객원 기자 (gubtree@hanmail.net) 다른기사보기

“재작년 촛불시위 이후에 최순실이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이 된 최순실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민주당을 당시 새누리당과 합해버린 상황.”

 

‘1991, 봄’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의 감독은 시사토론 라디오프로그램에서 1991년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1987년 민주화투쟁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전두환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고, 민심이 만들어낸 여소야대 국회를 뒤집어버린 3당야합으로 탄생한 거대여당 민자당이 공안정국을 주도하던 정세. 오래전 1991년 상황을 요즘에 빗대어, 촛불시위 이후 최순실이 대통령이 되고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합당했다는 설명은 꽤 그럴듯하게 들리더군요.

 

1991년 봄, 경찰이 스무살 대학생을 쇠파이프로 때려죽인 1991년 4월26일에서 5월25일까지, 한달동안 1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공권력에 의한 죽음과, 공권력에 의한 죽음이 분명해 보이는 의문사, 그리고 분신이 이어지던 봄이었습니다.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항거하는 죽음이 이어지던 그때를, 언론은 ‘분신정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목숨을 잃은 이들 중에는 이 영화의 주인공 강기훈의 동료도 있었습니다.

 

강기훈은 분신한 동료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누가 봐도 다른 필체를 두고 전문가라는 이들은 같은 필체라 했고, 언론에서는 단순한 사실을 복잡한 진실공방으로 만들었으며, 그 사이 분신정국은 잦아들어 정국은 안정됐습니다. 그해 6월, 31년만에 부활한 지방선거 광역의원선거에서 민자당은 압승을 했고, 그 다음해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2015년 5월24일, 1991년 봄으로부터 24년이 흐른 후 대법원은 강기훈의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원래 무죄였던 강기훈이 법적으로 무죄가 되기 위해 재심청구와 재심개시에 불복한 검찰의 항고, 대법원의 재심결정, 고등법원 무죄선고에 또다시 검찰의 상고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했습니다. 그 세월동안 강기훈은 말기 암 환자가 됐고, 강기훈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이들은 국회의원도 되고, 대법관도 되고, 대통령 비서실장도 됐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시위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에 대한 언론보도는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시위속에서 하루걸러 하루꼴로 아까운 목숨들이 죽어나가던 1991년 봄은 다시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아다니던 시위 대신에 촛불을 든 평화집회가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난만큼 세상이 변한 것도 같습니다.

 

시위 중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아까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몸에 불이 붙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이 불에 타 죽습니다. 하루를 버틴 이들이 다음날도 살아내기 위해 지친 몸을 눕히는 곳, 고시원에서 불이나 순식간에 일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은 험하고 위험한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다 죽어갑니다.

 

세상을 향해 외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안타까운 일들은 사라졌지만,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지는 이들은 늘어갑니다. 빚에 쪼들린 이들이, 아픈 몸을 치료하지 못하는 이들이, 장애인 자녀와 견디다 지친 이들이,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은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밀린 월세를 걱정하고, 장례비용을 남기고 떠나는 이들도 있습니다. 차가운 바다에 아기와 함께 몸을 던진 엄마의 사연은 파도에 쓸려 먼 바다로 흩어지기도 합니다.

 

다행히 재작년 촛불시위 이후에 최순실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최순실은 전 대통령 박근혜와 함께 감옥에 갇혔지요. 다행히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합당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촛불대통령을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고, 얼마 전 지방선거에서도 여당이 압승해 구여권은 몰락하다시피 했지요. 다행히 2017년은 1987년과 달랐고, ‘1991, 봄’은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1987년 민주화의 성과가 이제야 꽃을 피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참혹했던 1991년 봄을 까마득히 잊을 수 있을만큼, 1987년의 주역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지금은 활짝 핀 봄날입니다. 따뜻한 봄날이 분명한데 가난한 이들은 죽어갑니다. 가뭄이 오면 말라 죽고, 홍수가 나면 빠져 죽고, 불이 나면 타죽으며, 가난한 이들은 가장 먼저 죽습니다. 경기가 안 좋으면 당연히, 경기가 좋아도 경기부양을 위해 가난한 이들은 계속 가난합니다. 세상에는 봄이 와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봄은 오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영화 ‘1991, 봄’에서 강기훈은, 한때는 극악무도한 분신배후였다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강기훈은, 이제 그저 시시한 삶을 살아보겠다며 클래식 기타를 연주합니다. 말기 암 환자 강기훈은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세상은 그를 망가뜨리려했지만, 그는 망가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습니다.

 

요란한 세상도 이제 좀 시시해지면 좋겠습니다.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고, 모든 사업장이 최저임금을 지키게 하고, 아픈 사람은 병원에 가게하고, 남아도는 집들을 집없는 이들에게 빌려주는, 그런 시시한 일들을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휘황찬란한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이 소리없이 죽어가는 비참한 일을 멈추는 그런 시시한 노력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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