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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말만 믿었다가, 직원 월급 밀리고 부도위기

물량 준다며 단가 후려치기…빼도 박도 못한 전속적 하도급거래 애환 

기사입력2018-12-05 12:42
김종보 객원 기자 (jongbokim518@gmail.com) 다른기사보기

법률사무소 휴먼 김종보 변호사
홍길동(가명) 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기름밥을 먹었다. 기계로 부품 만드는데는 도가 텄다. 일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작은 공장을 차렸다. 아는 인맥을 통해 물량을 받았다. 납기를 맞추려고 휴일도 없이 공장에서 일했다. 성실히 일한 덕분에 업계에서도 평판이 점점 좋아졌다. 수주가 늘어나면서 설비와 직원을 늘렸다. 함께 고생하는 직원들에게는 빚을 내서라도 월급을 밀리지 않고 줬다. 그래야 이직을 막을 수 있다. 원부자재 구매 비용도 늦은 적이 없었다. 원부자재 공급처와는 신용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투자는 하지 않았다. 괜히 손해를 보면 회사가 어려워진다. 회사가 조금씩 커지면서 사장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초심을 잃지 말자며 다짐했다. 국내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도 경쟁하는 중소 공장들도 많아졌기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기술개발은 쉽지 않지만 품질은 자신 있었다.

 

원청회사에서 전속거래를 하자고 했다. 오랜 시간 거래를 해온 주요 고객인데다, 어차피 주요 금형은 원청회사 소유였다. 다른 고객 잡느라 영업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물량을 부족하지 않게 몰아준다고 하니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하는 부담은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원청회사는 잘 나가는 회사였다. 다른 고객들과의 관계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 회사들은 자기 회사 말고도 다른 회사와 거래하면 될 것이었다. 홍길동 사장은 전속거래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경기가 좋으니, 물량이 넘쳐났다. 원청이 주는 물량을 소화하기도 힘들었다. 매출이 높아지면서 영업이익도 늘었다. 직원들에게 보너스라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 소원이던 검정색 고급 세단을 한 대 뽑았다. 온갖 고생을 한 아내에게 다이아 목걸이도 하나 걸어주었다. 서울로 유학보낸 자식들에게 용돈도 두둑이 보냈다. 홍길동 사장은 기분이 좋았다.

 

원청은 어음으로 결제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현금결제였는데 어음으로 결제하면 할인을 해야 한다. 현금으로 결제해달라고 할까 망설였지만, 괜히 불편해지고 싶지 않아 관뒀다. 할인을 좀 해도 나쁘지 않은 이익률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거래해야 하니 그 정도는 감수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원들 보너스는 반으로 줄여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원청이 추가 발주를 했다. 도저히 납기를 못맞출 것 같았다. 원청에게 양해를 구하려고 했지만, 원청은 난색을 표시했다. 어쩔 수 없이 웃돈을 주고 외주를 줘야 했다.

 

정산을 하는 날이었다. 홍길동 사장은 그 동안 공급한 물량과 대금을 잘 정리해서 대금지급을 청구했다. 원청은 단가를 10% 할인해달라고 했다. 당초 계약된 금액이 있는데, 10%를 할인하면 손해가 난다. 그러자 원청은 내년도 물량을 더 많이 주겠다고 했다. 5%만 할인해도 본전인데, 10%는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이번에는 8%를 할인하고, 내년도에는 더 많은 물량을 받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사업을 시작한지 20년만에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아야 했다.

 

원청회사와 전속거래 계약을 한 홍길동 사장은 ‘많은 물량을 발주하겠다’는 원청의 말만 믿고 단가도 할인하고 대출을 받아 시설도 늘렸다. 하지만 원청은 약속한 만큼 물량을 발주하지 않았다. 심지어 원청은,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단가를 낮추라고 요구했고, 대금결제 때에는 일방적으로 단가를 인하한 다음에 대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원청은 내년도에 물량이 많아질 경우를 대비해서 시설을 늘리는게 좋겠다고 했다. 홍길동 사장은 올해 손해 본 것을 내년에는 만회하고 싶었다. 규모를 키워 다른 업체들보다 우위에 서야 단가를 인하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아 공장을 증축하고 시설을 늘렸다. 이자 부담이 커졌지만, 내년에 매출이 늘어나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동안 이자 한 번 안 밀리고 낸 덕을 보았다. 주거래은행 김 팀장에게 술 한 잔 샀다. 술에 취한 김 팀장은 홍 사장님, 앞으로는 추가 대출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위에서 여신한도 낮추라고 압력을 줬는데, 제가 홍 사장님 성실함 하나 믿고 버텼어요. 다음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했다. 김 팀장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원청은 약속한 만큼 물량을 발주하지 않았다. 경기가 안좋아지면서 원청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홍길동 사장은 애가 탔다. 이자는 꼬박꼬박 나가고, 고정비는 줄일 수가 없는데, 매출은 줄어들고 있었다. 몇몇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월급을 나눠 지급했다. 몇몇 직원들에게는 퇴직금과 3개월치 임금을 주면서 퇴직을 요청했다. 누구는 반발했지만, 누구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음을 직감했는지 군말 없이 떠났다. 그날 밤 홍 사장은 소주를 들이키며 울었다.

 

원청에게 물량 좀 달라고 사정을 했다. 원청은 물량을 늘리는 대신 단가를 낮추자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단가를 인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 장부를 보여줘가며 사정을 했지만, 원청은 자기들도 어렵다며 안된다고만 되풀이했다. 심지어 대금결제 때에는 일방적으로 단가를 인하한 다음에 대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송을 걸까 생각해봤지만, 그러면 그나마 주던 물량도 끊어버릴 것 같았다.

 

설비 일부를 중고로 팔아버리려고 했으나, 퇴직금 줄 돈도 말라버린 가운데 중고기계 가격은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만약 다시 물량이 늘어나 기계를 설치해야 한다면 손해만 볼 것이었다. 직원들을 내보내려니 이만큼 호흡을 맞춰 온 사람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나 싶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젊었을 때만큼 직원들을 키워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기가 막히게 기계를 다루면서 족집게처럼 불량품을 걸러내는 생산팀 최고 책임자 박 주임을 내보내면 회사는 존속할 수가 없고, 그 노하우는 전승되지도 않은채 사라질 판이다.

 

홍길동 사장은 예전 거래처에 다시 연락해 보았다. 대부분 다른 중소기업과 전속적 거래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거래처를 뚫을 틈도 없었다. 수출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중국업체와 가격경쟁이 안됐다.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수출 시스템을 알기도 어려웠다.

 

은행은 채무상환을 독촉하기 시작한지 오래였고, 공장에 설정된 근저당권은 언제 실행될지 모를 상태가 됐다. 거래처를 다변화했어야 했다고 때늦은 후회를 해봤자 소용없었다. 딴 짓 안하고 그저 성실히 일만 했던 인생이었는데 회사는 부도 위기에 몰려갔다. 마음이 타들어가도 해결될 기미가 안보였다. 성공한 인생인 줄 알았는데,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 같다.

 

공정위는 지난 1129‘2018년 하도급거래 서면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전속거래·PB상품 시장 중점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공식적으로 전속적 하도급 거래의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겠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지만, 이 땅의 수많은 홍길동 사장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뭘 해보려고 해도 이젠 너무 지치고 힘들다. 정부가 나서서 좀 해결해주면 좋겠건만, 정부는 시장경제질서에서 사업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한다. 그토록 살아남으려 애썼는데, 또다시 알아서 살아남으라 하니 삶의 의지가 꺾이는 것 같다. 그래도 가족과 직원들을 생각하며 버텨본다. 하지만 언젠가 한계가 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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