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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강요한 경제질서 바꿔야만 국민이 산다

계층간 극단적 소득불균형, 재벌·자본의 천국…여전히 IMF 체제다 

기사입력2018-12-06 13:59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다른기사보기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IMF체제를 끝낸 게 맞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2001년 8월 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상환했고, 정부와 언론은 한 목소리로 IMF체제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끝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덕인지 외환위기 당시 폭발했던 국민의 분노와 IMF체제 극복을 위해 겪었던 서민의 고통은 잊힌 반면 그 자리를 자긍심이 대신했다. ‘금 모으기’로 국난을 극복한 위대한 국민이라는 찬사는 지금까지도 유용한 국민화합 메시지였던 셈이다. 그래선지 ‘금은 왜 모았지’, ‘어디에 쓰였지?’라는 의문을 제대로 애기해 볼 기회조차 없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시사회 종료 후 언론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다. 최국희(왼쪽부터) 감독, 배우 조우진, 허준호, 김혜수, 유아인.<사진=뉴시스>
21년 전, 1997년 불쑥 찾아온 외환위기는 국민의 삶 전체를 바꿨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없어지고, ‘장사를 하면 밥은 굶지 않는다’는 통설도 사라졌다, 비정규직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럼에도 외환위기는 위정자들과 기업인들의 무능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사태’ 정도로만 인식됐을뿐, IMF체제를 가져온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금 모으기’ 신화에 가려졌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왜, 외환위기 해법이 IMF 구제금융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속 재정국 차관(조우진)이 한 말, “나라를 한 방에 바꿀 수 있는 기회”라는 대사가 그 답을 줬다.

 

영화 속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김혜수)은 “잘못하면 벌 받는 것은 맞는데, 여기(IMF)는 잘못하면 죽여 버리는 곳”이라며 구제금융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재정국 차관은 위기는 기회라며 IMF 요구 수용을 강요했다. 손쉬운 해고와 저임금 구조를 유지할 수 있고, 국민들은 먹고사는 문제 이외에는 어떤 곳에도 눈 돌릴 수 없는 사회구조가 재정국 차관이 원했던 세상이었다. 당시 정치·경제 권력의 요구와 일치했고, 한국정부는 외환위기 돌파구로서 IMF 구제금융을 선택했다. 외환위기를 빌미로 국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최악의 선택지를 고른 셈이다.

 

1997년, IMF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한국정부에 시장개방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등 경제주권을 침해하는 정책이행을 강요했다. IMF의 요구는 국가의 경제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었음에도, 당시 정부는 어쩔 수 없다며 국민들의 이해와 양보를 요구했다. 그러나 비상시기에 수용한 IMF의 무리한 요구는 구제금융이 끝났다는 2001년은 물론,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강력한 경제질서로 자리잡고 있다. 1997년 IMF의 요구가 정치·경제 권력의 필요에 따라 정교해지고 변형됐을 뿐이란 점에서, IMF체제가 끝난다는건 진실이라고 볼 수 없다.

 

IMF 구제금융의 어두운 그림자는 아직 걷혀지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손쉬운 해고와 저임금 구조의 큰 틀은 요지부동이다. 영화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의 우려처럼 비정규직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실업 역시 일상화됐다. 외환위기가 기업의 잘못된 관행과 체질을 바꾸기는커녕, 정경유착과 재벌총수일가의 지배체제만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2008년의 고환율 정책과 키코 사태, 이명박근혜 정권의 정경유착과 전 대통령 박근혜 탄핵도 역사적으로 보면 외환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후과와 무관치 않다.

 

영화는 위기는 반복된다는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그 위기가 다시 우리 앞에 와 있다. 도저히 국민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가계부채는 ‘국민부도’와 ‘가계부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IMF가 강요했던 잘못된 경제질서를 바꿔야만 국민이 살고, 나라의 번영도 가능한 일이다. 소득불균형이 끝없이 커지는 세상, 재벌과 자본만 살판나는 세상을 두고 IMF 체제를 조기에 끝냈다고 자랑하는건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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