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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예술의 심장’ 독창성의 씨앗을 말려 죽이지 말라

Life is pain.ting…레지던시 풍경 #13. 검열 

기사입력2019-01-06 15:00

12월의 작업실은 유난히 적막했다. 다음 해의 레지던시 공모가 대부분 12월에 뜨기 때문에 서류작성으로 인해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고, 아마도 연말이면 각종 송년회부터 신년회,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인해 들뜨는 거리 풍경은 쉬이 고립감이 감도는 작업실 공간을 바다 위 부표처럼 만들어 버리는 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긴, 괜히 붕 뜬 연말 풍경으로 인해 더 고독한 인간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각종 영화나 소설에서도 작은 쪽 창 넘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조명이나 장신구들이 오버랩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모 레지던시 1차에 붙었다고 연락을 했던,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불안했고 동시에 활기에 차 있었다. 많이 기대하고 있던 레지던시였고, 지금 딱히 거주할 수 있는 작업실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기에 내년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몇 주 뒤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 혹시 몰라 전화를 하기 전, 웹 사이트를 먼저 접속하고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으나 그녀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려던 손가락은 주저했고, 망설이다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전에도 언급했듯 지원서는 판에 박힌 듯 요구하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지역연계 프로그램 따위의 것들인데 작가들이 지역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해당 지역의 특성이나 역사를 조사하고 그에 걸맞는 형태의 프로젝트를 적어서 내는 것이다. 싫든 좋든, 몸을 구겨 넣어서라도 작성을 해야 했다.

 

원래 지역 리서치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 나가는 작가라면 모를까, 다른 수많은 형태의 작업을 구사하는 작가들에게 짜깁기식 서류를 작성하는 일은 곤욕이다. 왜 서류작성에는 작가가 해오는 작업들을 승화, 발전시키기 위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라든가, 그것을 위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요구할 사항들은 없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진제공=김윤아 작가>

 

더구나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한 모든 공모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인간 관계망을 피해 갈 수도 없는 일이다. 누가 어디 심사를 했는지 보통 2차 면접심사는 밝혀질 수밖에 없는 일이나, 1차 서류 심사위원 명단은 공개하는 곳이 없다. 이렇다 보니 예술계 카르텔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작가들조차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으려 애쓰고 자신의 캐릭터를 최대한 정제시키려 하기도 한다.

 

캐릭터를 정제시킨다는 건 자기 성찰의 시간과는 다른 이야기다. 수년 전부터 기관에서는 작가들에게 지역연계 프로그램을 요구하고 마치 무슨 바이러스 마냥 번져 이제는 대부분 기관의 공모서류에는 지역연계 프로그램 파일이 들어 있다.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야 다음 해 기금이 수월해지는 시스템이라 작가들에게 그러한 프로그램을 요구하게 된다고들 내부적으로 말하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것이 작가들의 작업방향과 성과에 무슨 그리 큰 도움이 되겠나 싶다.

 

어쨌거나 양질의 작업을 하고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오래 걸리더라도 나와야 결국 그 지역에도, 기관에도 그것만큼 좋은 성과가 있겠느냐 말이다.

 

종일 노트북 앞에서 갈피를 못 잡고 서성이다 보니 어느새 창밖이 컴컴했다. 가깝게 지내는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저런 이야길 주고받다가 답답한 마음에 덜컥, 맥락없는 말들을 쏟는 중 그가 쓴 노트를 보내주었다.

 

한참 전에 따놓은 김빠진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읽어 내려간 그의 노트에 청량감이 확 돌았다. 작지만 큰 위안이기도 했다.

 

예술이 그나마 아직까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와 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독창성이다.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그것만의 고유성과 매력이다. 그것이 소위 예술의 심장이다. 그것이 없다면 순수예술의 존재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을 창조하는 당사자 예술가가 일반대중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상식적인 사실이다.

 

또한 자신 스스로가 보편적 삶에 안주해서는 절대 안된다. 새로운 것, 미지의 탐구는 육체적 정신적 안주 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을 뿐더러 그 안주 밖의 불확실성에 스스로 던질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그 자세는 예술가의 직업적 윤리관이다. 세상 또한 예술가에게 보편적 사회성과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서도 안된다.

 

예술가는 만능이 아니다. 좋은 남편·아버지, 경제적 능력 그리고 성격 좋고 존경받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그런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사기꾼이다.

 

독창성의 씨앗을 말려 죽이지 말라. 보수적인 사회일수록 예술가의 그 영역을 침범할 것이며 동시에 방치할 것이다. 특히 스스로 짓눌려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것은 가장 커다란 비극이다.

 

예술가의 길은 정말 고독하고 힘든 길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다. 그 특권마저 스스로 떨이로 넘기면 안된다. 고독과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얻은 유일한 자유영역이다. 그 특권마저 없다면 예술가라는 존재는 이 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존재의미가 있는 것인가?”(2018. 디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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