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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엎어져도, 함께 겪어낸 이들을 잊지 않도록

Life is pain.ting…레지던시 풍경 #14. 13월 

기사입력2019-01-31 09:48

미뤄왔거나, 늘 생각은 하고 있지만 좀처럼 지킬 수 없던 것들을 때 마침 새해가 된 에 시작하려는 이들이 많다. 올해는 무엇을 꼭 하겠다든가, 끊겠다든가, 바꾸겠다든가 하는 것들. 각종 SNS를 통해 타임라인에서 보여지는 새해 인사나 지난해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많은 글들 속에서 그들의 새해 플랜들을 엿볼 수 있었다.

 

1월 전시 소식을 알려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나를 포함 많은 작가들은 지난 12, 1월에 몰려 있는 공모전에 관련된 서류를 쓰고 정보를 주고받느라 컴퓨터 앞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로 링크를 걸어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를 염두한 (모든 공모에 다 떨어지는 사태) 계획은 어찌 되는지 염려 섞인 안부를 주고 받는 말과 말 사이에는 정해지지 않은 작업공간에 대한 불안함이 웅크리고 있다. 더러 몇 작가들이나 미술 관계자들이 주관하는 조촐한 모임에 초대받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 불안감이 덜미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걸.

 

정말이지 지옥 같다고 생각했다. 2018년은 도대체 내게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만큼 통증이 심했다. 벅벅 찢어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감정이 쉬지 않고 들던 연초에는 응급실에 두 번을 실려 갔다. 6개월 동안 쉬지 않고 준비했던 전시가 더러운 이유로 엎어졌을 때는 갑자기 칼에 베인 것처럼 그 자리에서 쓰러지기라도 할 듯 오래오래 움직이지 못했다.

 

발설하고 싶지도 않았다. 말 많은 이곳에서 소위 카더라통신들이 판을 칠거고 가짜 뉴스들 사이에서 한 인간이 무너지는데에 혈안이 되고,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도 복구시키는 데는 누구도 관심 없다는 불신이 내 안에는 가득했다.

 

정의를 외치고 작가들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을 입은 인간들이 혐오스럽고, 징글징글 했다. 그 민낯에 진절머리가 났다. 이제는 예술이 작업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며 알량한 권력이라도 획득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인 양, 작업실 밖에서 권력자들과의 친분을 위한, 그들과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관계망 비즈니스가 기본이라는 걸 조언이랍시고 떠들던 소모적인 언어들에 대한 염증(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자기혐오 후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으로 끝난다는 게 지긋지긋 했다.

 

메시지로 도착한 사진에는 입주신청서 서류가 띄워져 있는 노트북과 그 옆에는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사실 내 앞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사진제공=김윤아 작가>

 

그 책임을 밖으로 돌리고 욕하고 침을 뱉고 싶었다. 그 감정들과 매일 함께 숨 쉬고 산다는 게 끝내 나를 부숴버릴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나는 정작 나를 버티게 해 준 소소하지만 결코 가볍지도 않은 고마운 동료들과 지인들을 완전히 잊었다.

 

지난 123112시 무렵 메시지로 사진 한 장이 툭, 도착했다. 사진에는 입주신청서 서류가 띄워져 있는 노트북과 그 옆에는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사실 내 앞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나도 사진 한 장을 찍어 답장을 하고 느닷없이 호기심이 생겨 몇몇 동료에게 아무말 없이 사진을 보냈는데 돌아오는 건 내 눈 앞 상황과 꼭 같은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그 중 지방에 레지던시 면접 때문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 휴게소에 들려 먹는 김밥과 라면 사진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노트북과 맥주나 커피 등이 놓여진 책상 앞 풍경이었고, 그 어떤 문장을 주고받지도 않았지만 더 보태야 할 것도 없었다. 그저 12시가 지나는 시각 13월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었다. 메시지 창에서 사진을 주고받는 동안 하루 종일 좀처럼 칸을 채우지 못하고 있던 답답한 지원서 창을 닫고, 주방으로 가서 물을 올려 파스타 면을 삶았다.

 

사실 지난 달 붙을 거라고 예상했던(문턱이 좀 낮다고 판단한) 레지던시에서 떨어지고(늘상 붙고 떨어지는 게 익숙해질만 해도) 상심이 컸고, 막막해지다 보니 화도 나고. 그래 이왕 떨어질 거면 차라리 정작 가고 싶었던 해외 레지던시에 지원하고 떨어지는 게 낫겠다 싶어 눈여겨 보던 곳에 서류를 내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전부 다시 만져야 했기에 속도가 한없이 느려지고 지치기도 했던 터였다(이곳으로 부터는 한달 뒤 합격 메일을 받았다).

 

지난 번 사다놓고 채 먹지 못해 냉동실에 얼려 놓은 방울토마토를 꺼내어 해동시키고 버터에 마늘도 볶다가 소스를 넣어 휘휘 저었다. 지난 달 피자를 시켜먹을 때 딸려온 뜯지 않은 피클도 새것 하나가 냉장고에 있길래 꺼냈고 유통기한이 조금 지났지만 아직 상태가 양호할 것으로 보이는 식빵도 하나 토스트기에 넣었다. 파스타가 완성될 무렵 전시 때 선물 받은 와인도 한병 따서 놓으니 꽤 괜찮아 보이는 식탁이 완성됐다.

 

내년엔 설령 엎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지탱하는데 힘이 된 것들을 잊지 않을 정도는 성장해 있으리라 생각하며 피식 웃게 만든 사진을 보냈던 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13월을 같이 겪어줘서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툭툭. 매년 한 달 지각하는 새해이지만 그래. 와라. welcom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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