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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외부와 단절된 초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전시공간’

전시공간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전시 중에 일어난 차량 절도 사건㊤ 

기사입력2019-03-14 09:15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2003, 이탈리아 북서부 토리노(Torino) 근교에 있는 미술작품 전시장에서 허름한 체육복을 입은 한 젊은 청년이 차량 절도를 시도했다. 그는 전시장에 들어와 자동차 문을 억지로 열려고 했고, 문의 창틈으로 옷걸이를 쑤셔 넣으려고 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자동차 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전시장에 있던 모든 관객은 이 광경을 경악하며 바라봤다. 전시장은 삽시간에 범죄현장이 됐고, 전시에 초대받은 이들은 차량 절도 범죄의 목격자가 됐다. 과연 누가 그 많은 관람객이 있는 현장에서 이런 차량 절도 범죄를 저질렀을까?

 

다들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 차량 절도는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의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반전이 하나 있다. 바로 차량 절도 사건에 자동차가 없다는 사실. 자동차가 없는데 어떻게 차량 절도 사건이 일어났을까?

 

자동차 없는 차량 절도 사건=2003년에 자동차 없는 차량 절도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존경받는 이탈리아 컬렉터가 새롭게 설립한 재단회관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당일, 이 깨끗한 회관에는 토리노 미술계의 유명 인사들로 가득했다. 이 새로운 재단에서 미술계 유명인사 대부분을 이 회관의 전시에 초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고급 예술문화를 배경 삼아 작품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그들만의 사교의 장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파란 운동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나타나 차량 절도를 시도한 것이다. 그것도 자동차가 없는 전시공간에서. 하지만 분명 차량 절도사건이었다. 전시공간에 초대된 말끔한 정장 차림의 미술계 유명인사들은 이 상황을 상당히 당황해했다. 그들만의 안전한 사교의 장이 범죄현장이 됐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급문화로 채워진 신성한 전시공간에서 도시 뒷골목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범죄가 버젓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로빈 로드, ‘Car Theft’, 2003, 비디오, 5분25초, 미니애폴리스 워커 센터 소장<출처=www.christies.com>

 

이 차량 절도 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작가인 로빈 로드(Robin Rhode, 1976~)였다. 그날 그는 갑자기 전시장에 나타나 새롭게 단장한 새하얀 벽에 목탄으로 자동차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 그린 후에는 그 자동차를 훔치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벽에 그려진 자동차는 전혀 사실적이지 않았지만, 자동차인 것은 분명했다. 작가는 그 자동차를 훔치겠다고 구슬땀을 흘렸다. 자동차는 로빈 로드의 행위로 얼룩덜룩해지고 형상이 일그러졌다.

 

사실, 로드가 그린 자동차는 진짜 자동차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자동차가 아닌가? 그렇다고도 말할 수 없다. 로드의 차량 절도 사건은 실제 차량 절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차량 절도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가? 전혀 아니라고도 말하기 힘들다. 이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차량 절도(Car Theft)’(2003)로 알려진 이 퍼포먼스에 초대받은 많은 사람이 당황했던 것은 전시공간은 신성하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외부의 현실을 완벽히 차단하고 초현실적으로 존재하던 전시공간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범죄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범죄가 존재하는 현실을 전시공간으로 끌어들여 고급 예술문화를 배경으로 안전하게 구축한 상류층 사교의 장을 위협했다. 이 재단회관은 말끔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한 초현실적 공간이지만, 사실 이 회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산파올로의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있다. 이 산파올로 노동자 거주지역에서는 진짜 차량 절도 범죄가 한밤중에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그리고 차량 절도를 실행한 로빈 로드의 고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 타운(Cape Town)이나 그가 대학을 다닌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도 차량 절도 범죄는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러한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지만, 전시가 진행된 회관은 외부 현실과 단절된 채 초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시공간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 위에 세워진 곳이다. 건설 노동자의 손길과 땀방울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그렇기에 전시공간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로빈 로드의 우스꽝스러운 차량 절도 퍼포먼스는 전시공간의 현실성을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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