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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핵심협약 비준…‘노동존중 사회’ 필수조건

정부·민주당,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기사입력2019-06-03 13:01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1991년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했을 때 의무사항이었던 핵심협약, 정부가 오는 9월 정기국회 비준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비준키로 한 핵심협약에는 노동자의 기본권인 ‘결사의 자유’ 보장이 포함돼 있다. 이는 세계의 모든 노동자가 노동3권을 누리는 것으로서 ILO 협약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협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노동존중 사회’로 가기 위한 이정표로 결사의 자유가 포함된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했다. 이에따라 정부는 올해 6월10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 100주년 총회에 맞춰 협약을 비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ILO 총회 이전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서는 핵심협약에 반하는 노동관계법 개정이 선행돼야한다. 그러나 ILO 총회가 코앞이고 국회가 거의 폐업상태인 지금, 노동관계법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비준일정을 이행하지 못했음을 국민에게 솔직히 사과하고, 불이행에 따른 경위와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순서다. 먼저 핵심협약 비준일정을 지키지 못한 직접적인 이유는 국회가 노동관계법을 개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국회 보이콧으로 국회를 공전시킨 자유한국당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물론 집권여당 또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및 조합원, ILO긴급공동행동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ILO핵심협약비준 촉구 공동행동의 날'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러나 ILO 핵심협약 비준이란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사정 협상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합의를 통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했다. 경사노위는 지난해 7월부터 노사관계제도·관행위원회를 발족,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노사정 대표들은 그간 40여 차례나 회의를 열었지만 아무런 합의안도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사노위는 협약비준을 위한 국민적 합의기구가 아니라, 당사자 간 대화기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사노위에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경사노위에 노동계의 주요 축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불참하게 된 이유를 정부는 충분히 알고 있다. 민주노총이 참여를 거부한 주된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 노동관련 개혁안 거의 전부가 좌초됐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空約)’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다. 지금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더라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률이 다소 하락하더라도, 그리고 영세상공업에 다소의 피해가 가더라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분배를 개선하는 한편 최저임금 인상으로 피해를 입는 경제주체들에게 정책대안으로 성장 유인책을 쓰거나 재정지원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줄곧 요구했던 ‘최저임금 현실화’ 정책을 포기하고, 속도조절론으로 선회한 것은 치명적인 정책 실패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최저임금 현실화’ 정책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전적인 권한에 속한다. 정부가 9월 정기국회 비준을 약속한 만큼, 정부는 노사·여야 간 입장차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세우는 등 ‘비준 로드맵’을 짜야한다. 특히 ILO 핵심협약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행의 의무조항인 만큼, EU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도 9월 정기국회 비준이 마지노선이다. 만약 비준이 늦어지면 대선공약 불이행이란 비난과 함께 국제적으로 FTA 노동조건을 위반한 국가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

비준 로드맵을 마련하기 앞서, 정부는 ILO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에 반해 공권력을 남용한 처분이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먼저 이를 시정해야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외노조 관련 행정처분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0월 해직교원을 조합원으로 두었다는 이유를 들어, 전교조가 이른바 ‘법률상’ 노조가 아니라며 노조의 지위를 직권 취소했다. 이는 교육부가 직권을 남용한 처분으로서, 지금도 소송중이지만 ILO 핵심협약에 전면 위배됨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전교조의 법적지위를 회복시키는 처분은 정부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앞서 핵심협약을 이행하는 일이다. 또 9월 정기국회에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순간 해고자에게도 노조활동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만큼 이른바 ‘법외노조’라는 딱지는 자동소멸된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교육부가 먼저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해 전교조의 법률상 지위를 회복시켜야한다.

노동자의 기본권인 결사의 자유를 포함한 ILO 핵심협약의 비준은 이제 정부와 국회로 넘어 갔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 앞서 노사간 합의가 먼저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지만, 굳이 정부와 국회가 이에 연연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런 사정은 지난 경사노위에서 노사 대치상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컨대, 지금 노사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경영계는 ‘파업시 대체근로 투입’, ‘부당노동행위 사용자 처벌조항 폐지’ 등 노동계가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들고 나왔다. 반면 노동계를 대표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을 노사합의로 진행해야 하느냐’며 원론적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ILO 핵심협약 비준이 지금까지 늦춰지고, 경사노위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고용노동부의 무사안일한 행정이다. ILO 핵심협약을 먼저 비준하고 입법절차를 추진하자는 노동계의 요구,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한다는 경사노위 공익위원 요구가 있었음에도, 고용노동부가 복지부동으로 일관했음을 이해당사자 모두가 안다. 

이번 경사노위의 실패와 ILO 핵심협약 비준 지연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고용노동부를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ILO 총회에 임박해 비준동의안 제출이라는 돌파구를 선택한 배경에는,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회피하고, 결국 정부가 비준의 통과를 좌우한다는 정치우위론을 인정한 셈이다. 또한 최저임금 속도조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등으로 ‘노동존중 사회’가 빛바랜 상황에서, 그나마 노동계의 ‘선비준 후입법’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ILO 핵심협약 비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가 적극 나서 줄 것을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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