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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韓日 갈등 해소, WTO 제소가 유일한 해법 아냐

금수조치를 풀기 위한 일본과의 협상전략도 함께 고민해야  

기사입력2019-07-08 12:14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세계의 경제대국, 지금까지 자신들이 강요했고 솔선수범해 지켜온 자유무역원칙을 깨서는 안된다. 국가 내지 국가군의 연간 총 생산물 규모를 기준으로 보면, 경제대국은 크게 미국·유로지역·중국·일본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의 국내총생산(GDP)은 2018년 달러 기준으로 미국 20.5조, 유로지역 18.7조, 중국 13.4조 그리고 일본 5.0조 수준이다(한국은행 해외경제 포커스, 2019.4.26.). 일본은 자유무역원칙을 깨고 한국(1.6조달러)에 대한 수출규제(7·1 규제)를 선포한지 사흘만인 지난 7월4일, 對한 수출규제를 강행했다.   

한국정부는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언론과 경제계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성토한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보복조치가 아니며, 국제규칙(rule)에 준하는 ‘수출관리’ 개정이라고 강변한다. 일본의 7·1 규제는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정부는 TV·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아미드, 반도체 제조·세정에 사용되는 리지스트와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관한 ‘포괄적’ 수출허가제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일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제도운용을 엄격히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포괄적 수출허가제에 한국을 제외한다는 의미는 위 3개 품목들에 대한 수출절차를 간소화하는 우대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수출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90일 정도 걸리는 일본당국의 심사·허가 절차를 거쳐야하기에 사실상 수출금지 조치에 해당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성윤모(오른쪽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홍 부총리,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학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사진=뉴시스>
이번 금수조치 대상인 3개 품목은 일본이 전세계 생산량의 70~90%를 차지하는 독과점품목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아닌 다른 수출대체국을 찾기도 어려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기업의 생산에 차질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경제산업성은 對한 금수조치를 추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군사분야로 전용될 수 있는 첨단재료 등에 대한 수출허가 신청이 면제되는 ‘화이트(우대)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해 다음달 1일부터 운용하기로 했다. 화이트국가는 미국 등 27개국으로 한국은 2004년에 지정됐다. 새로운 시행령에 따라 ‘군사분야로 전용될 수 있는 첨단재료’도 위 3개 품목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수출할 때 건별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한일교역은 이제 보호무역 사슬에 갇혀 더욱 경직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 간 외교문제를 무역규제에 연계한 일본의 이번 보호조치는 분명 자유무역원칙에 어긋난다.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자유무역을 강조한 일본같은 경제대국이 정상간 맺은 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유무역원칙을 반한 행동을 취할 일은 아니다. 경제산업성이 내세운 ‘한일 간 신뢰관계 훼손’이란 명분조차도 강제징용 배상소송 각하 등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한국정부에 대한 항의 표명임은 분명하다. 이점은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스스로 양국 간 신뢰관계를 언급한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2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가 “국가와 국가의 신뢰관계로 해 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면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맞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아베정부는 대법원 판결 직후 사실상 보복조치를 검토하고 있음을 스스로 공언해왔음을 고려하면, 이번 금수조치가 한국을 대상으로 한 경제보복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7·1 수출규제를 두고 양국 간 여론을 보면 강조하는 역점이 서로 다르다. 한국은 대체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라고 보는데 비해, 일본의 여론은 자유무역에 배치되는 조치라고 비판한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번 수출규제에 대해 “지금까지 일본의 노력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설에서도 “국제정치의 도구로 통상정책을 이용하려는 발상이라는 의심이 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중국이 사용하는 수법”이라고 경제대국들의 비행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따라서 이번 일본의 조치는 “한국기업이 대형고객인 일본기업에도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 긴 안목에서 볼 때 불이익이 많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또 요미우리는 “일본이 자유무역의 위선을 드러냈다”고 비판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즈 기사를 소개했다(경향신문, 7.3).

문재인 정부도 일본 여론과 나아가 국제 여론에 힘입어 일본정부를 상대로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정 국가들 간 분쟁에서는 교역의 자유를 훼손하게 된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문제가 핵심이다. 일본은 분명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과거 한일협정 즉 한일기본조약(1965.6.22)을 들어 배상판결이 부당하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한일협정을 통해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 문제도 일괄 타결됐다고 주장함으로써 강제징용 배상판결 역시 무효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한일협정이 강제징용과 같은 불법부당한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까지 면죄부를 준 건 아니라고 반박할 것이다. 이 점은 위안부 배상소송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논지들이다.

WTO 제소와는 별개로 한일간 분쟁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7·1 수출규제가 갑작스러운 보복조치가 아니라 충분히 계산된 대응조치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래 보복이든 대응이든 일본이 경제규제를 가할 것이란 걸 문재인 정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 전후 외무부장관이든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든 누구든 일본정부와 접촉 대화하고 해결하려는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7·1 금수조치가 난 후에야 부랴부랴 외무부는 “연구해 보겠다”, 기획재정부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식의 무사안일주의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비난도 나온다. 이제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보복이라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오판과 정치의 부재(84일 국회파행)로 기업과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을 만회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한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국가 차원에서 정부의 WTO 제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에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이른바 경제 ‘실사구시’ 정책은, 일본의 금수조치로 드러난 산업 취약부분을 장·단기적으로 검토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10일로 예정된 대통령과 그룹 총수들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정부는 지금까지 경제위기 대응능력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연후에 단기대책으로 일본과의 화해와 협상으로 금수조치를 풀어야하고, 장기적으로는 3개 품목 등을 대체할 자체 생산능력을 갖추는 계획을 수립해야한다. 이제부터라도 대통령부터 적극 나서 일본총리와 만나 상호간 국수주의적 병폐를 시정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이것이 우리가 21세기 경제강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는 실사구시 국제관계임을 명심해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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