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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결권, ‘배달의 민족’ 맞춤입법 중단해야

‘제2벤처붐’, 혁신 유인할 공정한 생태계 조성이 선행돼야한다 

기사입력2019-09-07 12:0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배달의 민족’ 원했던 차등의결권 도입한다”, 9월5일자 중앙일보 경제면 기사제목이다. 하루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차등의결권제 도입방안을 마련해 연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차등의결권제 도입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듯,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 차등의결권 주식발행을 허용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명분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제활력을 도모하기 위한 ‘제2벤처붐’ 확산이다. 하지만 차등의결권제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속마음을 중앙일보가 꿰뚫어 봤다. 10억달러이상 기업가치를 갖는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한 ‘배달의 민족’ 맞춤형 입법이 차등의결권제 도입이다. 차등의결권제란 창업주 또는 경영권 보호 등을 위해  ‘1주 1표’의 보통주 이외 ‘1주 10표’ 등의 다수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허용하는 제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경영권 희석 우려 없는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해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실제 김봉진 배달의 민족 대표는 지난 4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처럼 창업자에게 1주당 1표 이상을 주는 제도가 있다면, 보유주식을 팔아도 경영권 약화 걱정을 안해도 된다”며 “그러면 기부뿐 아니라 후발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펀드 조성, 사회적기업 등 가치 있는 일을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역시 6일 ‘제2벤처붐 확산 전략’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벤처기업계에서 여러 차례 요구해온 것으로 비상장 벤처의 특수성을 감안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김봉진 대표의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차등의결권제가 없어서, 배달의 민족이 ‘기부’, ‘후발 스타트업 지원’ 등 가치있는 일을 제한적으로 했다. 스타트업 선두주자로서 후발주자를 돕고 싶은 김봉진 대표의 진정성은 알겠다. 그래도 사회적 기부와 후발 스타트업 지원은 배발의 민족 존립목적과는 동떨어진 영역이다. ‘1주 1표’라는 주식시장의 근본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차등의결권제를 도입해야하는 최소한 근거조차 안된다는 얘기다. 

차등의결권제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대략의 얼개는 나왔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엄격한 요건’을 내걸었다. 시민사회 반발과 도입명분 등을 감안하면 재벌기업 계열사는 적용대상에서 제외될 게 분명하다. 결국 김봉진 대표의 ‘민원’을 정부가 수용하면, 배달의 민족과 유사한 비상장 유니콘기업들은 로또 이상의 대박을 터트릴 기회를 잡는다. 쿠팡, 블루홀, 엘로모바일, 엘앤피코스메틱, 위메프, 지피클럽, 토스, 야놀자 등이 수혜대상이다. 

이들 유니콘기업 창업자 또는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는 것과 제2벤처붐 확산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특히 이들 유니콘기업 중 일부 기업은 갑질논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이들 기업 창업주 또는 대주주에게 경영권 안정을 보장하면, 옛 버릇이 도져 벤처생태계의 정글화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유니콘기업들에게 차등의결권을 주면, 이들은 투자유치를 통한 혁신보다는 재벌기업 행태를 답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니콘기업 수준이 아닌 중소벤처를 대상으로 한 투자활성화가 목적이라면, 차등의결권제가 아닌 다른 정책수단을 찾아야한다. 중소벤처기업부 2018년 벤처기업 정밀실태 조사에 따르면 벤처기업의 5.8%만이 벤처캐피탈에서 투자를 유치했고, 2.6%만이 엔젤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100개 벤처기업 중 8개 기업만이 자본시장으로부터 투자금을 조달했다. 자본시장에서 외면 받은 나머지 92개 벤처기업이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없음은 쉽게 짐작 가능하다. 투자리스크가 높지만 국가경제를 끌고 갈 수 있다면, 중소벤처에 대한 지원은 공공의 몫이어도 이상할 게 없다. 

차등의결권제가 갖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논란을 여기서 새삼 재론하지 않겠다. 다만 한국의 벤처생태계는 영세중소기업 중심으로 생존조차도 버거운 상황이란 점은 지적해야겠다. 차등의결권제를 통해 창업주 또는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해야할 만큼 성숙한 시장이 아니다. 투자유치 활성화와 제2벤처붐을 위해서는 자본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혁신을 유인할 수 있는 공정한 생태계가 전제돼야한다. 공정경제 하에서만 중소벤처가 대기업에게 수탈당하지 않고 혁신의 성과물을 가져갈 수 있고, 또다른 혁신을 추구할 동인도 생긴다.  

아직까지는 문재인 정부의 선의를 신뢰하고 싶다. 하지만 차등의결권제 도입으로 중소벤처 투자 활성화·제2벤처붐을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구상, 정책 수단과 목표가 애초부터 잘못됐다.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차등의결권제 도입은 결과적으로 배달의 민족 맞춤형 입법이 될 운명이다. 그런 면에서 “‘배달의 민족’ 원했던 차등의결권 도입한다”는 중앙일보 기사 제목은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짚었다. 차등의결권제 도입 방침은 당장 철회돼야한다. 제2벤처붐을 위해 정부는 가장 원칙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공정경제 실현을 위해 더욱 매진해야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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