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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이면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행복 출발점…옳고 그름, 서로 합의하는 것 

기사입력2019-11-26 11:12
신동완 객원 기자 (think0610@hotmail.com) 다른기사보기
신동완 작가(카페행복연구소 소장)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서로 생각과 믿음이 다르고 감정반응도 다르기 때문에, 관계가 좋아야 하는 부부마저도 어느 정도 살다보면 원수처럼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우리사회 보수와 진보도 하나의 문제를 두고 서로 반대의 주장을 하면서, 상대를 제거해야 할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옳은 것이 밝혀지고 옳지 않은 쪽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면, 문제는 해결되고 갈등이 없어져 화합할 수 있다. 

세상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정답, 비밀, 공짜가 그것들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성적 사고로 철학을 하면서 생각의 깊이를 더해왔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스피노자, 칸트, 니체 등 불세출의 철학자들을 배출했음에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밝혀줄 기준을 세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종교에서는 옳고 그른 것이 명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같은 종교 안에서조차 종파와 지도자, 믿는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다.

옳은 것은 없는 것인가? 올바른 삶을 살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옳고 그름은 서로 합의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 합의하지 않으면, 옳고 그름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렇다면 옳은 것은 없는 것인가? 올바른 삶을 살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옳고 그름은 서로 합의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 합의하지 않으면, 옳고 그름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수학의 진리마저 합의에서 출발한다. 합의된 전제나 공리를 연역하는 학문이 수학이다. 여기서 정의나 공리 자체를 증명할 길은 없다. 우연히 합의해 사용하기 시작한 10진수를, 12진수나 20진수로 바꾸면 지금의 수학은 다시 설정돼야 한다. 

노예제가 옳았던 시대가 있었다. 일부다처제가 옳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합의로 그것들은 옳지 않게 됐다.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내 생각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고, 내 뜻을 친구나 동료가 동의해 주지 않아도 그르지 않다는 얘기다. 

선의의 뜻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나와 다른 남이 이상하지 않고, 합의해 나갈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분노도 많이 줄어들 수 있다.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이면 편안해진다. 나와 다른 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더 많이 편안해진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신동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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