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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왜 자살을 많이 하지?”…“아마 고립감 때문일 수도”

도시에서의 삶의 고립감과 견디기 힘든 공허함…열린 문 

기사입력2019-12-08 15:00

아시아인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던 아이슬란드 동쪽 끝 마을에서는, 동네슈퍼라도 가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꼬맹이들이 내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고개가 자전거가 향하는 반대 방향으로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곤 했다. 주로 금발이나 밝은 갈색 머리들 속에서 내 머리는 눈에 띄는 유일한 검은 머리였다(비수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아시아인 관광객조차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레지던시 바로 앞에는 일 년에 약 3개월가량만 오픈하는 카약(작은 배를 타고 강가를 한바퀴 돌고 오는 코스다) 가게가 있었는데, 6월부터 운영하는 곳이라 레지던시 기간이 거의 끝나 갈 무렵에나 그 가게가 오픈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바로 코앞에 위치해 있으면서 두 달 내내 닫혀 있는 가게와, 그 앞 강가에 한두 대 묶여 있는 카약만 보고 있었던 나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 모두, 이 아름답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동네에서 가게 오픈 날을 은근히 기다려 왔었다. 시계를 보지 않으면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백야가 시작될 무렵 늦은 오후에 레지던시 문을 열고 키가 매우 큰 남자가 벌컥 들어섰다.

 

[레지던시가 위치한 세이디스피요두르 마을은 모두 문을 잠가 놓지 않는다. 처음 받은 입주 안내문에도 이 곳은 문을 잠가 놓지 않는다. 개의치 않기를 바란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레지던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노크도 없이 들어선 일들이 많았다. 백야가 시작되고 나서는 새벽 산책을 나서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레지던시에서 함께 생활하던 작가들도 저마다 작업하는 시간이 둘쭉날쭉이 되고 있었다.]

 

딱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기묘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던 남자는 (고통스러워 보이는 동시에 엄청난 활기가 넘쳤다) 내가 앉아 있던 책상 앞으로 다가와 두서없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그를 보자, 그가 에 취해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의 소동에 저마다 주방에서, 마당에서 뭔가를 하고 있던 작가들이 스튜디오에 모여 들었다. 내게 누구냐는 질문을 눈빛으로 보내는 작가들에게 그가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 손짓으로 약에 취해 있다고 사인을 보냈다.

 

알고 보니 그는 카약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의 동생이었고, 다음 주에 오픈하기 위해 오늘 도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같이 카약가게로 가서 모닥불 앞에서 술 한 잔 하자는 그의 권유도 있었지만, 나 역시 궁금했던 터라 우리 모두는 카약가게로 향했다. 연 푸른빛 두툼한 점퍼를 입고 비니를 눌러쓴 채 밖에서 모닥불을 지피고 있던 남자가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섰다.

 

Heima Art Residency<출처=www.commonfield.org/network/1287/heima-art-residency>

 

레지던시 건물에서 나오는 걸 모를 리 없던(레지던시 입구에서 카약가게까지 채 열 걸음이 안되고, 그 사이는 자갈들로 깔려져 있는 구조다) 남자는, 비니를 벗어 손에 쥔 채로 너희들이 이번에 온 작가들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하며 호쾌한 웃음을 보였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백야가 시작되면 밤에도 마치 흐린 날의 오후 정도 느낌인데, 해가 없기 때문에 그림자가 지지 않고, 명도 차가 거의 없이 훤하게 보이기 때문이었는지 모자를 벗어 보이는 그의 머리칼이 처음엔 백발인줄 착각할 만큼 은빛에 가까운 금발이었다. 눈은 연한 민트컬러 정도인데 그마저도 너무 투명해서 하얗게 뚫린 구멍 같다고도 생각했었다.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 안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 사이 그의 동생은 형이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서 기타를 좀 튕기다가(제법 잘 치는 편이었다) 느닷, 바지를 벗어 아래를 흔들기도 했고, 누군가를 끊임없이 욕하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은 약 열 평 정도의 크기였는데, 벽에는 작은 조각부터, 큰 동물 뿔이나, 혹은 뼈처럼 보이는 것들이 매달려서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작은 조각들은 주로 물고기들의 꼬리를 조각해서 노끈으로 묶어 놓은 것들인데 그 개수가 대충 어림잡아 보아도 수천개는 족히 넘어 보였다. 그 중 하나를 잡아 엄지손가락으로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기대하지 않았던 섬세함에 흠칫 놀라고 있을 때 백금발의 그가 대뜸 물었다.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 일본? 중국? 한국?”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그가 와우. 코리아하더니 바로 이어서 물었다. “한국이 자살률 1위 국가 아냐?” 그게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적잖게 당황스러웠으나 서둘러 대답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정확하진 않아도 3위 안에는 드는 걸로 알고 있어라고 말했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아직까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 하얀 구멍 같은 눈이 그의 사무실 벽 어딘가를 몇 초 응시하다가 말했다.

 

난 여기서 3개월만 살고 나머진 나가서 살아. 성수기가 시작될 때 즈음부터 3개월만 벌면 나머지는 어디가서든 살 수 있거든. 그렇게 떠돌다가 돌아오면 매년 친구의 자살 소식을 여기서 들어. 정말이야. 매년.” 그가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세이디스피요두르는 인구 수가 워낙 적은 탓에 거주민들에게 집을 반값에 준다. 그 이점 때문인지 거주하는 많은 이들이 이 곳을 일년에 몇달 씩 지내는 썸머하우스 개념처럼 생각한다. 그 기간을 제외한 때에는 다른 나라 혹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몇 가지 생각들이 빠르게 머리를 스쳐갔지만, 입 밖으로 걸릴 만한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그보다, 일 년에 3개월만 일하고 나머지는 떠돌면서 살고 있다는 그 삶이 더 궁금했다. 사무실 벽에는 많은 사진들도 함께 걸려 있었는데 시선을 사로잡은 사진은 그가 검은 새와 함께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이었다. 검은 새는 그의 어깨 위에 있기도 했고, 주로는 그의 팔뚝에 앉아 있었고, 사진 밑에는 연도가 적혀 있었는데 대략 십년 정도의 기록인 듯 했다.

 

내 시선이 그의 사진에 머물자 그는 그 새가 자기 친구라고 소개했다. 매년 몽골에서 만나는 새인데 아직 인화하지 않은 사진이 몇 개 더 있다고 하면서 웃었다. 그가 사는 방식과, 왜 그런 방식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묻지 않아도 친절하게도 그는 계속 이어서 얘기했다. 한 때 꿈꿨던 삶의 방식이기도 했고,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신선해서 푹 빠져 듣던 와중에 그가 다시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자살을 많이 하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마도 고립감 때문일 수도.” 그러자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도시에서의 삶이 주는 고립감은 또 다르겠지. 하지만 이곳은 다른 이유가 있어. 공허함이야. 나도 그걸 견디지 못해서 이대로 살다가는 다른 내 친구들처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떠돌기 시작한 거거든.”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일 수도 있었으나, 그는 그런 이야기들을 아주 편하게 얘기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서 조금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편하게, 상식적으로, 배려 깊고 슬프지 않게, 마치 우리 모두가 응당 해야만 하고, 했어야만 하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흘러가 본 적이 있었던가. 그와의 대화는 외려 유쾌한 쪽에 가까웠다.

 

나는 두 명의 친구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 날의 장례식장으로 내 기억은 내달리고 말았다. 이틀 밤을 꼬박 새고 들어선 장례식장 휴게실은 기다란 의자가 세 줄로 놓여 있었고, 입구 왼쪽 구석에 커피 자판기와 음료 자판기가 한 대씩 있었다. 커피 한잔을 뽑아 한 쪽 구석에 자릴 잡고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상한 기척에 눈을 떴을 때, 짧은 단발의 중년 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 전부터 내게 뭘 말했던 것 같았다.

 

누가 돌아가셨어요?” “친구요.” 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그녀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잘려진 철사줄 같은 단발머리가 이상하게 거슬렸다. “생전에 교회는 다녔죠?” 바로 이어진 단발의 질문이었다. “아뇨.” 빠르게 대답하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괴로움에 그대로 바닥에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에그지옥가시겠네.” 양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말했다. 어느새 차갑게 식은 종이 커피잔을 잡은 손이 가늘게 떨렸던 기억이 스쳤다.

 

그의 동생이 며칠 후면 병원에 입원할 거라는 이야길 하는 그의 얼굴은 평온하다 못해 나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타준 커피를 완전히 비우고 자릴 털기 위해 일어서는데 그가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매년 예술가들을 만나. 근데 도대체 예술이라는 게 뭐니?”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니 삶은 진짜 예술이다.” 그는 그 말에 크게 웃고는 밖으로 나가 그야말로 미친 놈처럼 기타를 튕겨대며 뛰어다니는 동생을 향해 걸어갔다.

 

열 걸음도 채 되지 않는 작업실로 들어서는데 처음 그렇게도 이상하고 낯설던, 열쇠도, 지문도 필요 없이 이 열린 문이 더 이상 어색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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